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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새로운 둥지 앞에서 본문
새로운 둥지 앞에서
눈을 감고 오지 않는 잠을 청해 본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에 대한 허허로움에 후회가 몰려오고 있다. 또 다른 길을 생각해보아야만 하는 지금의 처지가 스스로 안쓰러움을 불러오고 있어서인지 눈꺼풀은 덮였어도 정신은 또렸해진다. 혹시라도 나를 선택할 사람들에게 답해야 할 문구들을 텅 빈 천장에 이리저리 꿰어 맞히다 보니 점점 눈망울은 커져가고 머릿속은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해져만 간다. 한참을 그렇게 뒤척이다 집 밖으로 나와 밤하늘을 쳐다보니 오늘따라 늘 한 두 개의 일등성만이 초라하게 깜빡이던 하늘의 모습이 아니라 이즈음의 도심에서 볼 수 없는 꽤 많은 별들이 총총히 빛나고 있다. 한동안 못 보던 "카시오페아" 별자리가 눈에 띈다. 아는 별자리를 찾아보며 느끼던 가슴속의 아련한 감정도 스러졌는지 이제는 무덤덤하다.
그간 습관적으로 느끼며 써오던 내 생각들은, 홀연히 빛나는 별들 앞에서 그저 무의미함만 주고, 마른 가슴속에 대한 성찰만 한아름 지게 되었다. 내면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진실의 입이, 가식적인 삶의 세월을 모아 진실을 포장한 지금의 껍데기뿐의 나를, 세상에 발가벗겨 세우라고 포효하고 있다. 진실의 입은 점점 커져가고 그 입을 막는 가식의 손도 따라 커져간다.
오래전 읽었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나, 쳐 박혀 있는 책더미에서 다시 꺼내 들어 "죽음"이라는 단원을 찾아보았다. 루-게릭 병으로 자신의 죽음을 목전에 둔 모리선생은 "죽음과 직면하게 되면, 결국 핵심에 초점을 맞추게 되며, 죽게 되리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매사가 아주 다르게 보인다"며, 어떻게 죽어야 좋을지를 제자에게 가르친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배우게 된다면서.
아직도 내게는 모리선생의 죽음에 대한 견해를 깨닫지 못할 만큼 삶의 튼실함이 없나 보다 그래서 이 나이가 되도록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며 겉으로만 강한 척, 세상을 아는 듯이 태연하게 허허 웃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지금의 나는 톡 치면 흐트러지는 둥지 속에서 밖으로 나오기 두려워하는 조그만 새처럼, 세상의 조그만 소용돌이에도 허우적거리고 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책무에 대한 소홀함뿐만 아니라, 그 의식의 끄트머리에 펼쳐진 또 다른 길과 맞닥뜨릴 자신감마저도 상실한 채, 어찌할지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고 있다. 그저 현실에 안주하며 나이 들어가는 것도 괜찮을 거라는 나약함과 용렬함을 가슴 깊이 숨기면서 지난 십 년 동안의 질곡의 세월이 어느덧 나란 존재를 이렇듯 약하게 만들었다. 돌이켜 봐도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힘든 일도 거친일도 일단 부딪치며 헤쳐나가던 패기도 상실하고, 문제를 피해나갈 생각만 깊어지면서 행동의 표현도 완곡하게 변했다
하지만 곤히 잠자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니 처녀 적 하얗던 피부가 어느새부터인가 거칠함을 보인다. 그간 변해가는 아내의 피부를 일부러 외면하며 표현을 삼갔다. 귀하고 환한 집에서 늘 웃음을 지으며 살아왔는데,못난 남편덕에 지난 몇 년동안 안해본 돈벌이도 하며 어려운 생활을 하느라 너무 애쓰고 있다. 천성이 낙천적이라 힘든 생활속에서도 늘상 쾌활한 웃음으로 다독여주는 마음씀씀이가 내 마음을 다잡아 주며 하늘 같은 큰 힘을 주었다. 자면서도 미소를 짓는 아내가 너무도 사랑스러워 입맞춤을 하니 금세 옆으로 돌아 눕는다. 이런 사랑스러운 아내의 환한 얼굴에 늘 웃음을 주고 , 큰 욕심 없는 아내에게 편안한 마음을 주며 나이 들어가고 싶은데.. 그렇게 평안하게 살려면 나만 마음 잡으면 되는데 그게 왜 이리 힘들게 느껴지는지.
어느새 동창이 부옇게 밝아온다. 지금의 고요하고 심신이 편안한 삶의 터전을 벗어나야 하는데 대한 아쉬움이 너무도 강하고 거친 세상을 나가야 하는 몸뚱이의 허함이 걸리긴 하지만 아내의 잠든 평온한 미소를 보며 결국 나는 다시 한번 삶의 변화를 겪어보라는 마음속의 외침을 듣는다. 내겐 아직 나를 선택하고자 하는 곳에게 간택되어야 하는 커다란 장벽이 남아 있으나, 기다리는 그동안 잃어버린 옛 감성을 되찾기 위한 준비도 필요하고, 새로움과 경쟁해야 하는 남자로서의 단단한 각오도 필요하다 , 또 그간의 세상살이에서 느끼며 배운 세상을 보는 안목도 갈무리하면서 나를 찾아보아야 된다. 새로운 전쟁터를 찾아 떠나면서, 몇 년 동안 잃어버리며 살던 예전의 나를 세상과 아내에게 보여 주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해 본다...
2009.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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