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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이중환의 택리지와 오기영의 정치도 본문

내생각들

이중환의 택리지와 오기영의 정치도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1. 28. 19:11

이중환의 택리지와 오기영의 정치도 

* 62년 전이나 지금이나 정치하는 사람들의 행태는 같은가 보다.. 나는 노 무현 전 대통령을 지극히 싫어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지만 그분에 대하여 뭐라 하지도 않고 뭐라 하기도 싫다. 글쓴이의 주장처럼 다만 역사가 말해 주리라 믿는다. 그러나 돌아가신 분을 욕되게 이용하는 간사스러운 정치인들은 정말 싫다. 그 못된 대가리를 몽둥이로 두들기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 자들이 이 글들을 봐야 한다

- 이 중환의 " 택리지 " 중 " 인심(⼈⼼) " 조(條)에서 -

무릇 사대부가 있는 곳에 인심이 모두 괴패 하여서.... 붕당(朋黨)을 세워 패거리를 만들고 이권(利權)을 벌여 백성들을 침노하며, 이미 제 행실을 단속치 못하매 남이 자기를 의논할까 싫어하여 다 저 혼자 한쪽에서 젠 체하기를 좋아한다. 조정에서는 노론, 소론, 남인, 세 색(⾊)의 원수가 날로 깊어 심지어 역명(逆命)을 덮어 씌우며....

사대부의 인품의 높낮음이 다만 자기 '색' 중에만 행세되고 다른 '색'에는 통용되지 않아, 갑색(甲⾊) 사람이 을색에게 배척을 당하면 갑색에서는 그를 더욱 존중히 여기며, 을 색도 마찬가지다. 또 그와 반대로 극악의 죄가 있더라도 그가 일단 다른 '색'의 공격을 받으면 시비. 곡직을 무론하고 떼를 지어 일어나 붙들어서 도리어 허물없는 사람을 만들며, 비록 훌륭한 행실이나 덕이 있어도 같은 '색'이 아니면 먼저 옳지 못한 점을 찾아낸다.... (중략)

정작 정치. 법령. 시책을 할 때에는 오직 이기(利⼰)만을 도모하고 참으로 나라를 근심하며 공공(公共)에 봉사하는 사람은 적다. 재상은 중용을 어질다 하고, 삼사(三司) - 고려 초에 국가의 전곡의 출납과 회계를 맡아보던 기관- 는 청검(淸儉)함을 바보라 하여, 끝내는 모두 차츰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다.

대저 천지가 생긴 이후 천하 만국 중에 인심이 괴패 하고 타락하여 제 본성을 잃은 것이 지금 세상 같은 적이 없으니, 붕당의 병통이 이대로 나가 고침이 없다면, 과연 어떤 세상이 될 것인가. 슬픈 일이다.

정 치 도 (政治道) -해방 경성의 기개와 풍자 중에서 -
글쓴이 : 東⽥ 오 기영

사람이 죽음에 당하여 모든 애증과 시비를 초월하는 것은 지극히 아름다운 인정이다. 이 인정은 이미 하나의 윤리요 도덕으로서 생전에 피차 어떠한 원한이나 애증을 가졌던 사이라도 이것을 다 풀어 버리고 다만 그 죽음을 아끼는 것이며 그렇지 못한 사람은 결국 옹졸한 인간임을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로부터 간과[⼲⼽:방패와 창]와 총화[銃⽕:총과 불]를 나누던 적군이라 할 지라도 일단 그 죽음을 볼 때에는 그 혼에 위로의 뜻을 표하며 후하게 장[葬] 하는 것은 엄숙한 전쟁도 [戰爭道] 요 , 피차에 정치이념이 달라서 격렬히 싸우던 정적이라 할지라도 한편이 죽으면 한편은 애도의 정을 표하고 생전의 적대적이던 모든 조건보다 같이 국사를 걸머졌던 우의를 표하는 것이 당연한 정치도였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든지 하나의 예의요 죽은 그 사람의 생전의 시비가 그대로 말살되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정치인에 있어서 그 생전의 공과는 크면 클수록 그 민족의 역사와 함께 영구히 소멸될 수 없는 것이다.

예컨대 저 멸망 직전의 고구려를 위하여 위국 진충[爲國盡忠]의 뜻은 좋았을까 몰라도 연개소문의 아들들의 골육상쟁의 죄악을 용인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다만 일가[⼀家] 일문[⼀⾨]의 장내[墻內:담장 안]의 형제 상쟁이 아니라 조국의 운명을
멸망 에로 빠뜨리는 주인[主因]을 지었기 때문이다.

또 김 유신의 신라통일의 대업은 물론 훌륭하다 하겠으나. 당나라 군사를 불러들여 동족을 친 죄악은 씻을 수 없는 죄악으로서 천년을 넘은 오늘에 있어서도 그대로 죄악인 것이다.

정 몽주가 고려왕조를 위하여 이 성계의 철퇴에 피를 흘리고 죽은 그것은 장렬하되 실상 정 몽주의 원나라를 고려보다 더 위하던 사대사상은 오늘에 있어서도 탄핵되어 마땅하다. 하지마는 이 순신의 일시의 곤욕은 당시 조선시대의 부패를 설명하는 재료는 될지언정 그의 애국의 충성에는 흠될 것이 없었고, 아무리 이조가 홍 경래를 역적으로 친다 하여도 공정한 사

필 [史筆]은 그를 하나의 혁명가로 [許]하는 것이다. 그런지라 한 정치인이 죽을 때에 일단 그 생전에 대한 그의 시비와 공과는 가라앉는다 하더라도 후일의 사필은 그 시비를 가리고 공과를 갈라놓을 것이요 그냥 묵살될리는 없다. 비록 당시에 호사스러운 죽음이었거나 초라한 죽음이었거나 그것은 그 당시의 영욕일 뿐이요 후일의 사필은 이런 것에 구애함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한 정치가가 죽었다. * 그래서 그를 위하여 좌우가 다 같이 통석하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예의일 것이다. 그러나 이 것이 그 생전의 시비 공과를 초월했을 때에 아름다운 예의일 것이지 죽은 이의 입에 말이 없음을 다행히 여겨 저마다 제 소리로 고인을 떠 받드는 것은 여기 정치적 의도가 섞였음을 간파할 때에 예의와는 거리가 멀고 요술과는 근사하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것이 무슨 소리냐고? 그러면 아주 까서 말하거니와 적귀[⾚⿁]라고까지 하고 여적[呂敵]이라고까지 하던 이들이 그를 갑자기 "우리 편의 애국자"라고 성명[聲明] 하는 것은 무엇이며 기회주의자라고 공공연히 경멸하고 심지어는 "인민의 적"으로까지 몰아칠 듯하던 이들이 갑자기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라는 시호를 보내고 상제보다 더 서러워하는 복상제가 나타나는 것은 무어냐 말이다.

그가 죽었다고 하여서 그 죽음을 삼팔선으로 하고 갑자기 그의 정치 이념이 달라졌을 까닭은 없다. 허다면 생전에 그를 욕하던 것이 옳았다 할진대 사후의 칭송이 우스운 일이요 사후의 통석이 옳다 할진대 생전의 경멸이 부당하였던 것일 것이다.

그는 호 협하고 너그러운 이었던 분이라 생전의 자신에 대한 포폄[褒貶]에 개의하지 않았듯이 사후의 비례적인 과공도 웃고 볼는지 모르나 후일의 사필은 그의 정치적 공과를 논하는 국시[局時]에 그에 대한 시비를 표변하는 이들의 이들의 시비도 가릴 것이다. [신천지] 제2권 8호 - 1947년

 

* 여 운형 (1886-1947)의 죽음을 말함 좌우합작을 추진하면서 미소공동위원회의 성공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펼치던 그는
1947년 7월 19일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한 지근이라는 우익 청년에게 암살당했다.

오기영: 1909 황해도 배천 출생 보기자 역임 이후 경성전기 주식회사 근무하며 조선일보에 팔면봉을 쓰고 잡지 신천지 외에 다수의 매체에 글을 기고 1949경 고향인 북으로 가서 활동  , 사슬이 풀린 뒤 외

2009.07.09 0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