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보라! 동해에 떠 오르는 태양

김현관- 그루터기 2023. 1. 15. 00:21

보라! 동해에 떠 오르는 태양..

 창문을 열자 깊고 나즉한 파도소리가 새벽을 꺠운다. 졸린 눈과 귀가 빠릿하니 총총이며 온 신경이 곤두선다.동해에서 일출을 바라보는 것은 생전 처음이다.회색빛 하늘과 짙게 드리운 구름속에 길게 뻗은 세 겹의 붉은 기운이 보인다.아직 눈앞의 조그만 섬 죽도는 검게 잠들어 있다.이제부터 깊고 푸르른 저 바닷속에서 주황빛 태양이 나를 향해 조금씩 비상하리라 생각하 니 가슴이 두근거린다.오늘 해뜨는 시간 05시 48분!5시부터 일어나 장중한 붉은 태양이 솟아 오르며 바다와 태양이 분리되고 이어 떠오르는 태양의 그림자가 바닷빛을 붉고 길게 물들이면서 내게 다가오는 장관이 연출되기를 기다린다.그리고,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풍경들을 둘러본다..10분..20분..시간은 쉼 없이 흐르고 있다.붉은 기운이 차츰 환해진다. 검은 빛 적막이 서서히 코발트 블루의 빛으로 공간을 물들이고 물정 모르는 조그만 조각배 하나 천진해변 쪽으로 미끄러지고 있다.이윽고 검푸른 빛이 서서히 옅어지는데 태양이 안 보인다.이미 세상은 환하다.이상하다... 시계는 6시를 넘기고 있었다.결국 그렇게 기대하던 일출은 보지 못하게 되었다.아쉬운 마음을 안고 아내와 함께 숙소를 나와 천진해변쪽으로 멀리 바라다 보이는 빨강등대엘 가보려 하였으나 식사시간전까지 돌아 올만한 거리가 아닌듯 하여 반대편의 봉포항으로 걸음을 옮겼다.

방파제 한 켠에는 일찌감치 스킨-스쿠버 강습을 받는 청춘들의 호흡기 소리가 새액새액 경쾌하게 울린다.이어 속시원히 내지르는 구령소리가 물빛을 가르고,까망 잠수복에 떨어지는 맑은 물빛이 일출을 보지 못해 가라앉은 마음을 바람결에 날려 보낸다.봉포항은 예상보다 작고 한적한 규모였다.여기저기 낚시배를 대여한다는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꾼을 기다리며 졸고 있는 배밑에는 커다랗고 붉은 불가사리 두 어마리가 잠을 깨어 꿈틀거린다.어정어정 방파제와 포구를 돌아 다니는 한가한 여유를 즐기는 것도 샘이 나는지 옅은 먹구름이 어선들의 뱃전 위로 다가오더니 보슬비가 한 두 방울씩 내리기 시작한다.아침을 챙겨먹고 구름을 담뿍 안은 바다를 바라본다.파도소리는 힘찬데 흐린날씨 덕분에 마음은 차분하다.스멀스멀 어깻죽지가 쑤셔온다.물놀이 후유증인가 보다.물속에 머문 시간도 짧았는데 운동부족의 현상이 여실히 배어 나온다.이제 펜션을 비울 시간이다.일단 근처의 명소 두 어군데를 들러 보고 돌아갈 예정이다.아까 봐 두었던 빨강 등대부터 가 봐야지…잘 있거라 봉포여..

 해수욕장을 벗어나 먼저 도착할 수 있는 곳이 “청간정”이다."고성군"에서 지정한  8경중의 하나인"청간정"은 동해안 일출 명소중의 하나인데 설악산에서 흘러 내리는 "청간천"과 절벽아래 넘실거리는 파도와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시 한귀를 지어 낼수 있는 사방 경치 좋은 곳에 원두막 형식의 아담한 누정으로 세워져 있다.樓에 올라 사방을 둘러 보니 오른쪽으로는 우리가 떠나온 "봉포해수욕장"과 "천지해변"이 정겹게 보이고,왼편으로는 아내와 가보고자 하는 빨강등대가 보인다. 차를 타고 한참을 왔는데도 아직 저 편이니, 걸어서 가 보고자 하는 어리버리한 거리감에 스스로 고개가 갸웃해진다. .樓의 뒷 편 설악산을 바라보자 은은한 구름에 한쪽 끝이  설핏설핏 가려지며  “울산바위”의 웅장함이 눈에 가득차 온다.

 이틀동안 멀리서 바라보며 그리던 아야진항의 빨강등대가 품안에 있다. 막상 도착해 보니 청간정에서 한 마장이 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아야진은 원래 대야진이라고 하였는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大'字를 사용하지 못하게 해서 아야진으로 바뀌었다는 유래가 있다. 어디가나 일본의 만행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모습을 볼때마다 시대의 불행함에 가슴이 저린다.항구의 안쪽방파제 에는 하얀등대가, 바깥쪽 방파제에는 빨강등대가 어선들에게 생명을 불빛을 비추고 있다.조그만 해수욕장도 앙증맞고,항구의 정취도 정겨운 이 곳에서  마지막으로 동해의 숨결을 들이쉬고 미시령을 향해 떠났다.

 미시령을 넘어 고성에 들어서다 보면 오른편 설악산 중턱에 거대한 암석병풍으로 이루어진 "울산바위"와 마주치게 된다.이 바위를 보는 순간 설악산의 웅대한 기상과 조화로운 절경에 감탄을 하며 저절로 카메라에 손이 가는데 망원렌즈도 없이 움직이는 차안에서 "울산바위"를 마음에 들게 담기는 힘들다.봉포엘 가며 오며 셔터를 눌러 봐도 신통치 않아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는데 그런 아비의 모습이 딱해 보였는지 아들애가 "미시령옛길"로 가자면서 방향을 돌렸다.옛길에서 바라보는 미시령의 자태는 그대로 한 폭의 수려한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굽이굽이 스쳐지나며 내려다 보이는 계곡과 단애의 절벽들이 빚어내는 아슬아슬함,그리고 멀리 건너편 산자락에 울산바위의 절경이 계속 설핏설핏 자태를 드러내면서 시야를 황홀하게 한다. 누구든 미시령을 넘을 기회가 있다면 왕복길에 한 번은 "미시령옛길"로 방향을 틀어 아름다움을 감상하길 권한다.수십구비의 산모롱이를 도는 동안에 멋진 자태를 드러낸 바위의 정경은 너무 아름답지만 좁은 길이라 차를 쉬이 세울수 없어 아쉽게도 정면의  정경은 눈과 가슴으로만 담을 수 밖에  없었는데.다행히 미시령 정상부 조금 못 미치는 곳에 조그만 공터가 있어 잠시 쉬어 가며 마침내 거대한 위용을 드러 낸 "울산바위" 측면의 절경이나마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울산바위의 정경을 감상하며 구빗길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미시령"의 정상에 도달하였다.이제 "미시령" 을 떠나 보내면서 우리들의 이번 여행은 추억으로 남게 된다.아쉬움을 담아  "미시령" 정상에서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이별하려는데 어디선가 조용하게 시작되는 노래 하나가 떠 오른다." 보라 ! 동해에 떠 오르는 태양, 누구의 머리위에 이글거리나..""내 나라 내 겨레"라는 이 노래는 전체적인 맥락이 겨레의 웅비을 일으키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고래사냥"과 함께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던 노래다. 이 노래가 불현듯 생각이 나는 것은 우리 세대에게 동해만이 줄 수 있는상징성이 각별했기 때문일 것이다.젊은 시절! 끝없는 수평선에 높은 이상을 담던 동해!오늘! 인생4막의 시점에서 그 지치지 않는 파도의 열정을 가슴에 품어새로운 희망의 꿈을 꾸며 살리라 스스로 다짐한다.. 2012. 8.19.  - 그루터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