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모도에서 보낸 1박2일 (보문사)
https://youtu.be/84lwJWRYjR4?si=jZfqOy4KwGK4XObg
석모도에서 보낸 1박2일 (보문사)
그리고 보문사에서
아직 정오가 되기도 전에 따가운 태양빛에 온몸이 홧홧하여 온몸이 나른해진다.우리를 배웅하겠다고 나선 아우대신 보문사 입구까지 데려다 준 방주농원의 형님유선생과 명함을 건네며 아쉬운 인사를 하였다.. 하루저녁 나무와 꽃에 대한 많은 교육을 받은터라 이제 선생님으로 모셔야 할 분이다.이렇게 짧은 여행길에 또 하나의 인연을 만나고 그렇게 헤어졌다.
올 여름은 낮 시간은 너무 뜨겁고 저녁엔 선선한 전형적인 아열대기후를 보여 준다.인간의 탐욕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며 일어난 업보라 할 수 있다. 업보란 자신이 행한 행위에 따라 받게 되는 운명이라 하는데 이는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을 저만 잘 살겠다고 더럽힌 벌을 받는 것이라 하겠으니 우리의 후손은 무슨 잘못인가? 이제라도 정신들 차려야지..
큰 길에서 천천히 얕은 언덕을 오르자 저만큼 일주문이 보이고 차에서 내리는 우리를 향해 입구에서부터 좌판을 벌이고 있는 아낙들의 손짓이 바쁘다.왼편으로는 아담한 주차장에 포구로 떠나는 마을버스가 가라랑거리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우선 차시간을 알아보러 들어간 대기소를 겸한 가게안에 난데없이 큼직한 바위가 가게공간의 반을 차지하고 바위를 가로질러 걸쳐놓은 고무줄밑에는 천원짜리지폐 몇 장이 낚싯밥처럼 바람에 팔랑이고 있다.가게안에 바위가 놓여 있는 특이한 경우이니 치성을 들이라는 뜻 일텐데,가만히 바라보면서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진다.
그 새 아내는 좌판의 아낙에게 덜미를 잡혀 어제 농원에서 맛있게 먹었던 “나문재”라는 해조류를흥정하고서 헤벌쭉한다.솜씨 좋은 아낙이 개시 손님이라며, 원래 가격에 두 배나 되는 나물을 안겨 준데다 볶은 땅콩과 “뽀로수열매”까지 수북하니 덤으로 얹어 준 탓이다.
일주문에서 법당을 오르는 무섭게 가파른 길은 숨이 턱에 찰 만큼 고행길이다..경내로 들어서기 전의 가파른 길가에는 오래된 거목들이 햇빛을 가려 시원한 바람을 품어 절을 찾는이들의 수고를 덜어주었다.하지만 가뭄의 손길은 이 곳도 비켜가질 않았다..“범종각” 아래에 있는 약수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어 경사길을 오르는 객들에게는 한 모금의 물도 내어주지 못하고 들고양이만 고인 물에 목을 축이고 있었다.
바로 위쪽 “감로다원”에서는 대중들의 그런 갈증을 채울 기회를 주고자 시워한 팥빙수를 팔고 있지만 넌지시 들여다 본 다원 안에는 아무런 기척도 느낄 수 없었고 경내를 구경 하면서도 몇차례 흘낏댔지만 고요함만 다원을 맴돌고 있을뿐이었다.나는 아내가 농원에서 얼려 온 쌉쌀하니 시원한 커피와 프랑스 생수 에비앙보다 맛좋다는 방주농원의 달콤한 물로 갈증난 입술을 채울 수 있었다.
경내에 들어서면 대부분의 절에서 조석예불과 법의식에 치고 두드리는 운판과 목어 그리고 법고를보관하는 “법음루”가 있는데 “법음루” 맞은편에 오래전 이곳을 찾았을 때는 없던 “오백나한상”이“33관음보탑”을 둘러싸고 새로운 형상으로 석모도앞 바다같은 세상을 주시하고 있다.더 이상의 윤회를 하지 않는다는 완전한 존재인 나한! 그 오백존재의 서로 다른 형상들이 내게는 마치 인형처럼 보이는 불경스런 마음이 들어 정말 야단이다.
지금 보문사에서는 부처님 좌대와 3천옥불단등을 조성보수하기 위한 대작불사가 한창이라 경내 곳곳에 차일을 치고 불사를 권하는 현수막이 너울거리고 있어 차분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외려 감로다원에 이르는 길가에 대중스님들이 無를 기원하며 하나하나 쌓아올린 조그만 돌탑들의 풍경이 부처님을 향한 청정신심을 느끼게 하였다.
또한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는 “극락보전“앞에는 우리나라의 서른세곳 관음성지 중 제 1호가 이곳 보문사라는 한국관광공사의 표지가 낯설게 서 있고 제 1호의 관음성지의 위상에 걸 맞게 극락왕생을 비는 불자들의 불사로 너울거리는 수많은 등이 햇빛에 하얗게 질려 있다.경내 곳곳에 티나게 걸려 있는 불사를 기원하는 표식들이 잔잔한 마음으로 절을 찾은 마음에 먼지를 일으킨다.부디 이 마음은 작금의 조계종 내에서 벌어진 작태들에 대한 반감의 소산일뿐 아무쪼록 자기수양이 덜 된 탓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뜨거운 태양이 어지러운 “서해제일 관음성지 나한기도도량 낙가산 보문사“의 일주문을 나섰다.
경내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맡겨놓은 “나문재”를 찾으면서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나문재”를 파는 아낙의 옆자리에 앉아있는 할머니께서 지금껏 개시를 못했으니 검정콩 한 됫박이라도 개시를 해 달라는 애처로운 부탁을 뿌리치지 못한 아내덕분이었다.
아무렴 두시가 넘은 시간까지 개시를 못했을까마는 결국 저 쪽의 뻔한 상술에 넘어가 검정콩 두어 됫박을 춤에 걸치면서도 시내보다 엄청 싼 값이라 싱글거리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덤으로 얻은 볶은 땅콩과 뽀로수열매까지 동여맨 묵직한 콩보따리를 들고 갈 걱정대신 식구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려는 아내의 만족스런 미소를 들고가자 마음 먹으니 한결 보따리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돌아오는 페리주변으로 새우깡을 먹으려는 괭이갈매기들이 휩싸여 장관을 이룬다. 10분여의 짧은 거리지만 거센 바닷바람을 거슬러 유유히 비행편대를 이루며 날면서도 먹이를 구하고자 한시도 먹이감에서 눈을 떼지 않는 갈매기들의 모습이 경건해 보이기까지 한다.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갈매기를 보면서 과연 나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려는 노력을 하였는지, 먹이를 향한 갈매기의 집념처럼 내게 주어진 기회의 끈을 확실히 잡으며 살고 있는지,바다에 떨어진 먹이를 먹을 정도의 겸손한 자세를 가슴에 품고 살아 가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비록 1박 2일이지만 가뭄으로 아픔을 겪는 이웃의 마음을 피부로 이해할 수 있었고,수목화초에 대해 배움을 준 유선생님과의 인연을 구하였으며, 잠시 잊으며 내 알바 아니라 살아가던 세상을 되돌아 보는 눈을 뜨게 되었다.그리고 갈매기에게서 내 살아가는 마음을 다잡게 하는 교훈을 얻은것과 아내가 타인을 배려하는 현장에 함께 있어 행복했고,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챙겨볼 수 있어서 귀한 여행이 되었다.
2012. 6. 26 - 그루터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