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가 흐르는 다자이후의 카레가게 (茶話:sawa)
재즈가 흐르는 다자이후의 카레가게 (茶話:sawa)
텐만구 뒤편, 작고 조용한 출입구를 빠져나오면 조그만 소방서 옆에 커리를 먹고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집, 이름부터 정감 가는 (茶話:sawa)라는 간판이 보인다. 그나마 작고 수수한 간판마저 없다면 그저 평범한 가정집으로 착각하고 지나치기 십상인 골목길. 그러나 한국인들 사이에 오래 기다려야 맛볼 수 있는 맛난 카레집으로 입소문이 난 덕에, 텐만구 구경을 대충 마치고 이른 시간에 맞춰 가게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입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갈색 꽃과 빨간 열매가 하느작 맺힌 들꽃 항아리였다. 투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그 조화가 문 앞에서부터 이 집의 따뜻한 분위기를 암시했다. 미닫이 문을 열자 앙증맞은 현관이 보이고, 바그다드 카페의 ‘Calling You’가 흘러나온다. Jevetta Steele(제베타 스틸)의 목소리와 함께 재즈가 반갑게 여행자를 맞아주었다. 식당에. 재즈라니, 그리고 이토록 완벽하게 어울리는 선곡이라니. 일본에 재즈를 사랑하는 이들이 많다는 말이 실감난다.
실내는 ㄴ자 형태로 스탠딩 좌석이 놓여 있고, 그 둘레로 다양한 화분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크고. 작은 화분 속에는 싱그럽게 피어난 들꽃, 작고 여린 풀잎, 이름 모를 초록 식물들이 자리하고 있어 식당이라기보단 작은 온실에 들어선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특히 메인 공간으로 들어서자 마주한 커다란 백합이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고고하게 피어오른 백합은 고풍스러운 작은 장식장 위에 놓여 방 전체를 환히 밝히고 있었고, 그 우아함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모녀로 보이는 두 분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 주고,, 테이블 위에는 작은 화분 속의 생기 넘치는 카네이션이 따뜻하게 웃고 있었다. 방 한 구석에는 오래된 전축과 그 옆에 기대어 있는 빅터 레코드판, 그리고 주변을 감싸는 화초들까지. 이곳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식물과 음악이 함께 숨 쉬는 쉼터였다.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는 특유의 미소와 간드러진 말투로 주문을 받아주었고, 그 애교에 홀린 아내는 매실차를 추가 주문하면서도 한껏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윽고 카레가 나왔다. 볶은밥은 적당한 찰기와 고소한 풍미가 살아 있어 카레와 잘 어울렸고, 작은아이가 두 종류의 소스를 주문한 덕분에 여러 맛을 맛볼 수 있었다. 나의 입맛엔 조금 짭조름했지만, 제대로 맛을 느낀 아내는 밥을 추가로 주문할 정도였다.
특별하진 않았지만, 공간을 가득 채운 재즈의 음률과 꽃내음, 그리고 포만감 속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은 무엇보다 구수하고 만족스러웠다. 옆. 테이블에는 보령에서 온 네 명의 총각이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다음 여행지로 떠나며 이 집의 맛을 극찬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도 다시 길을 나설 시간이다. 계산을 마치고 돌아서는 우리에게 따뜻하게 인사하는 두 모녀의 등 뒤로, 엘라 핏제랄드의 찰진 목소리와 함께 백합향기, 그리고 들꽃 향기가 잔잔히 배어든 재즈가 여운처럼 흐르고 있었다.
2024.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