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nny G / Going Home
https://youtu.be/z4codSS50eQ?si=GGSI8xCHkz7SJBbV
Kenny G / Going Home
미국 시애틀 출신 케니 지 Kenny G는 소프라노 색소폰 음악으로 경력을 쌓다가 <Songbird>가 1987년 빌보드 싱글차트 5위를 하면서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그는 1980년대 후반 한국에서도 돌풍을 일으켰다. 부드럽고 감미로운 색소폰 연주와 금발의 구불구불한 헤어스타일을 포함한 매력적인 외모덕에 여성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는 1989년 발표한 <Going Home>과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사랑을 위하여 Dying Young>1989의 주제곡이 동시에 히트하면서 인기의 정점에 선다.
케니 지의 인기는 퓨전 재즈음악의 세계적인 열풍과 더불어 1990년대 초반 한국에 불어닥친 재즈 인기의 도화선이 되었지만 동시에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케니 지가 이슈의 중심에 선 이유는 그가 재즈 뮤지션들과 재즈애호가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재즈 뮤지션들은 단지 색소폰을 분다는 이유로 케니 자를 재즈의 범주에 넣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당시 음악계에 큰 이슈로 떠 올랐다. 왜냐하면 재즈 뮤지션들 입장에서는 음악적으로 인정하기 쉽지 않은 케니 지가 큰돈을 벌며 인기를 얻는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재즈 뮤지션들은 케니 지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할 처지에 있었다. 왜냐하면 케니 지 덕에 재즈는 빅밴드 시대 이후 전례 없는 인기를 누렸기 때문이다. 만약 케니 지의 인기가 아니었으면 일반인들은 재즈에 관심을 두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 왜 수많은 재즈 뮤지션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음을 그들은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재즈 뮤지션들은 '케니 지 효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케니 지의 인기도 사그라지자 결국 재즈는 다시 원래의 마이너 장르로 돌아가버리고 말았다. 1990년 대 초반 한국에 재즈 열풍이 잠시 일었다가 바로 꺼져버린 상황을 상상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출처 : 박 성건의 1페이지 팝 콘서트 365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