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파우스트인가?
나는 파우스트인가?
고전을 읽다 보면 사람 이야기를 하는지 동물들의 왕국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동물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당나라 시인 두보 (712~770년)는 <음주팔선가>에서 '경음마식이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고래처럼 마시고 말처럼 먹는다 는 뜻이다. 우리가 술꾼들을 술고래라고 부르고 엄청나게 먹고 조깅에 미쳐 뛰는 미국인을 ""말처럼 먹고 뛰네"라고 놀리는 것도 여기에 연유한다. 또, 모든 주당들의 꿈이 인천 앞바다가 맥주로 변하는 것이라는 농담도 사실은 <논어>에 나오는 해량이라는 어구에서 비롯되었다.
두보는 <음주말선기) '두보 편'에서두보편' 이렇게 읊었다.
"이백은 술 한 말을 마시고 시 백 편을 짓고 李白一詩百員
장안 거리 주막에서 취해 잠에 떨어지고 安市上酒家
천자가 오라고 보낸 배에 오르지 못하고 天子呼来不上船
스스로 이르기를 술꾼 중의 신선이라고 한다. 自稱臣是酒中仙”
이처럼 고래와 말이 술대접에 공짜 밥도 마음껏 먹는 호강을 누릴 때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동물이 있으니 바로 뱀이다. 아담과 이브에 게 선악과를 먹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든 장본인도 뱀이요, 우리나라 전설에 새끼 새를 잡아먹으려는 것을 쏘자 사냥꾼에게 여자로 변신해서 접근하는 것도 뱀이다. 흔히 뱀은 악마의 화신으로 통하는데 그 이유는 뱀이 악마라는 것이 아니라 허물을 벗어 변신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뱀의 습성을 감추고 인간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치는 악마에 비유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우리는 악마의 유혹을 어떻게 뿌리쳐야 할까? 괴테는 그 답을 하느님에게서 찾고 구원이라는 해답을 준다. 괴테는 프랑스 황제 나폴 레옹에게 아침을 떨었지만, 결국 인생 말년에 이런 유혹이 바보스러운 짓이었고 자신의 죄를 용서해 줄 대상으로 하느님을 찾았다.. 그런데 하느님은 가만히 앉아서 죄를 용서해 달라는 사람을 그냥 구원하는 무능한 재판관은 아니었다.
자신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철학과 신념, 특히 불의에 대항하는 단호함이 없으면 그저 그런 인간이 된다. 어차피 인간은 태어나면서 악마의 유혹을 받고 그것과 싸우면서 성장한다. 괴테는 "우리는 자연 속에서 살고 있지만, 자연에 대해 모른다"고 말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 Angkor Wat 사원이 세계 문화유산으로 인정받는 데에는 유구한 건축물의 역사나 화려한 양식 때문이라기보다는 수많은 세월을 오롯이 견뎌낸 생명력 때문이다.
파우스트는 그 잘난 자식을 가지고 만인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악마와 손을 잡았다. 그러면서 자신은 남을 위해 희생하는 예수와 같은 존재라고 여겼다. 하지만 문제는 파우스트의 지혜에서 나온 여러가지 제안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배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농민들이 파우스트의 황무지를 옥토로 개간했지만 그들이 세금에 시달린다면, 노예나 다름없는 것이다. 사랑해서 아이까지 낳은 여자지만 그 아이가 죽고 나서야 사랑이 아니라고 떠나는 것을 보면, 파우스트는 여자를 위하는 마음도 전혀 없는 이기주의자이다. 한마디로 세상을 혼자 살아가는 고독한 방랑객이다.
자신이 방황하는 파우스트인지 아닌지를 아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자신이 얼마나 자유로운 사람인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내가 원하는 일을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지, 내 주변에 있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랑하는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아낄 수 있는지 말이다. 이처럼 자유는 솔직한 자신의 내면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이 꼭 찾아야 할 목표이고 내가 지금 악마의 유혹에 빠졌는지 알게 해주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내가 아닌 남을 위해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이다. 파우스트는 이런 면에서 빵점에 가깝다. 사랑하는 여자는 물론 남에게 잘해준다고 노력해도 번번이 실패하는 것은 남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영양실조에 걸린 정신때문이다. 이 빈 틈을 메우고 들어온 것이 바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