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받은 알약의 설명서가 나에게 말 걸 때
선물 받은 알약의 설명서가 나에게 말 걸 때
잡지사 공모전에 냈던 글이 뽑혀 상을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대단한 상은 아니고, 소정의 상품이라 했다. 택배로 도착한 상자를 열어보니, 눈 건강에 좋다는 루테인과 지아잔틴 성분의 알약이었다. 뭐 이런 걸 다 주나 싶어 대충 포장지를 뜯어 알약 통만 꺼내놓고, 나머지 설명서는 버리려 했다.
그런데 버리려던 찰나, 설명서에 쓰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보통 이런 건강기능식품은 '이런 분께 권합니다' 같은 문구로 시작하여 그냥 무심히 읽기 시작했는데... 웬걸, 다섯 개의 예시 중 네 개가 딱 나를 가리키고 있는 게 아닌가.
첫째, '평소 눈이 침침하고 답답하신 분'. 흠... 그래, 아침에 일어나면 확실히 예전 같지 않지. 둘째, '눈부심이 심해 야외활동이 불편하신 분'. 이것도 맞다. 햇빛 쨍한 날엔 인상부터 찌푸려진다니까. 셋째, '장시간 컴퓨터, 스마트폰 사용, TV 시청을 하시는 분'. 이건 뭐... 일상이 곧 이거 아닌가. 글 쓰고, 정보 찾고, 쉬는 시간엔 폰 들여다보고... 넷째, '노화로 인해 눈의 성분 공급이 필요하신 분'. 하하... 노화라니. 인정하기 싫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
마지막 항목은 '합성향료가 들어있지 않은 제품을 원하시는 분'이었는데, 이건 뭐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좋은 점이니 나에게만 특별한 건 아니었다. 결국, 설명서가 나에게 대놓고 "네 눈 상태가 딱 이렇잖아!" 하고 말하는 것 같아 순간 멍할밖에.
아니, 진작에 이런 걸 좀 사 먹으며 눈 건강이라도 챙겼어야 했는데, 이리 스스로에게 무심했나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하기사 어디 눈 건강 하나만 문제겠나 싶기도 하고. 심장도 그렇고, 당뇨도 그렇고... 이젠 병명 하나 없는 친구 만나기가 더 어렵다. 모이면 다들 어디가 쑤시고 아프다는 얘기뿐이지. 누구는 머리가 그렇다, 누구는 어깨, 무릎, 발... 아주 전신 통증 박람회가 따로 없다니까.
그래, 우리 이제 나이가 들긴 들었구나. 예전엔 아프면 좀 쉬거나 병원 가서 고치면 그만인 줄 알았는데, 이젠 '고쳐 쓴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어디가 고장 나면 고치기보다, 더 나빠지지 않게 '관리'하며 사는 나이가 된 거지. 내년이면 칠순이라니, 적은 나이는 아니잖은가.
그래도 어쩌겠나. 책이라도 읽고, 컴퓨터 자판이라도 두들기며 남은 시간을 재미있게 보내려면, 우선 몸뚱이부터 좀 챙겨야지. 눈도 마찬가지고. 비록 잡지사 상품으로 받은 알약 설명서 덕분에 뒤늦게 깨달은 거지만, 이것도 다 때가 있어서 온 거겠지 싶다.
그런데 이걸 냉큼 집어먹기 전에, 보름 뒤에 병원 가는 날 담당 의사 선생님께 꼭 물어봐야겠다. "선생님, 제가 이걸 선물로 받았는데... 제 몸 상태에 먹어도 괜찮을까요?" 하고 말이다. 이제는 뭘 하나 먹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하면 안 되는 나이니까.
살다 보니 이렇게, 예상치 못한 선물 속 설명서 하나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될 때도 있구나 싶다. 씁쓸하면서도, 이제라도 챙겨야겠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개운해지기도 한다. 그래, 이제부터라도 좀 더 나를 챙기며 살아봐야지.. 2025.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