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

오래된 미래를 향한 첫걸음

김현관- 그루터기 2025. 6. 20. 01:43

오래된 미래를 향한 첫걸음

오늘 동인천 ‘시와 예술’ 서점에서 열린 길 위의 인문학 "오래된 미래를 만드는 작고 위대한 개인의 역사" 첫 강의를 들었다. 2년 전 장인어른의 이야기로 ‘기억의 기록’이라는 사진집을 만들었던 경험이 떠올랐다. 그때 사진 아카이브 작업의 매력을 느꼈기에, 이번에는 나 자신의, 그리고 우리 가족의 역사를 직접 기록으로 남겨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강의를 찾았다.

강의를 들으며 앞으로의 작업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사진 아카이브의 주제를 무엇으로 삼아야 할까. 처음에는 나 자신의 이야기만으로 글을 꾸려볼까 생각했다. 살아온 날들이 적지 않으니 사진 자료는 풍부할 것이고, 내 경험이니 이야깃거리 또한 무궁무진할 터였다. 하지만 방대한 양의 사진을 10번의 강의 안에 모두 정리하고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시작하기도 전에 엄두가 나지 않는 부분이었다.

다른 생각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작업을 해보는 것이었다. 두 분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분명 가슴 뭉클한 순간들이 많을 것이고, 그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분들의 이야기가 갖는 무게감은 클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고민이 있었다. 옛날 분들이라 남겨진 사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사진 자료가 부족하면 스토리를 풍성하게 풀어내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마음 한구석을 차지했다.

이렇게 두 가지 방향 앞에서 망설이고 있을 때, 문득 다른 가능성이 떠올랐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이었다. 부모님 세대와 나의 세대를 함께 엮어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찾던 길이 아닐까 싶었다. 부모님의 삶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고, 나의 이야기가 다시 아이들 세대에게 이어지는 것. 백 년 가까운 시간의 흐름을 ‘나’라는 연결고리로 묶어내는 작업.

물론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부모님 세대부터 내 아이들까지, 근 백 년의 시간을 고작 스무 장 남짓한 사진으로 풀어낸다는 것이 말처럼 쉬울 리 없다. 사진 한 장이 백 마디 말을 대신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진이 부족한 부분은 글과 기억으로 채워 넣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단계별로 차근차근해나간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니. 너무 완벽하려 욕심내기보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깃든 ‘이야기 조각’들을 먼저 찾아내는 것. 그리고 그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가면서 큰 그림을 완성하는 것. 그것이 앞으로의 방향이 될 것이다.

이번 사진 아카이브 작업은 단순히 사진을 정리하는 행위를 넘어설 것 같다. 부모님 세대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며 그분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나의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며 지금의 나를 발견하고, 또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남겨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귀한 시간이 될 것이다. 사진과 글을 통해 세대와 세대가 만나고, 기억과 기억이 이어지는, 그런 의미 있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

앞으로 10번의 강의 동안,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이 작업을 해나갈 생각이다. 사진 속에서 잊고 있던 기억들을 끄집어내고, 그 기억들에 나만의 감성을 불어넣어 살아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백 년의 서사를 스무 장 사진에 담는다는 것이 여전히 아득하게 느껴지지만, 그 과정 자체가 나에게 큰 의미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안다.

이제 방향은 명확해졌다. 부모님과 나의 이야기, 그리고 그 안에 스며든 시간과 감정들을 사진과 글로 엮어내는 것. 쉽지 않겠지만, 이 작업을 통해 나 자신과 우리 가족의 역사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첫 강의를 들으며 시작된 이 여정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벌써부터 기대되고 설레는 마음이다. 차근차근, 한 걸음씩 나아가 볼 생각이다. 2025.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