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의 경양식
아내와의 경양식
아내가, 일하러 나가는 김에 점심이나 함께 하자고 했다. 며칠 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만복당으로 보이는 곳에서 쫄면과 돈가스를 먹는 장면을 본 터라, 문득 옛 생각이 나 돈가스가 먹고 싶어졌다. 우리는 동인천에 있는 오래된 경양식집으로 향했다. 몇 해 전 TV에 소개되며 유명해졌다고 하더니, 자리가 귀하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다행히 이른 시간이어서 분수대 바로 옆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아내와 마주 앉아 돈가스를 기다리며, 예전 우리가 즐겨 찾던 경양식집들이 떠올랐다. 요즘은 경양식집 자체가 거의 사라졌고, 외식 문화도 많이 바뀌어 굳이 이런 곳을 찾을 일도 드물다. 하지만 우리 세대에게 ‘경양식’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한 시절의 추억이다. 어디선가 그 이름만 들어도 마음 한켠이 간질간질해지는 정겨움이 있다.
곧 나온 돈가스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다소 소박했다. 그래도 분위기에 마음을 두니, 모든 것이 너그러워졌다. 맛은 제법 괜찮았고, 바로 옆 분수대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와 70년대의 팝 knock three times 의 간지러움이 식사에 감성을 더했다. 무엇보다 가격이 부담 없어서 아내의 깐깐한 경제관념에도 들었고, 덕분에 우리 둘 다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런 점심이면 충분하다.
요즘은 분식집이나 일본식 돈가스집이 경양식집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어, 전국적으로 이런 가게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몇몇 곳들은, 그 집만의 맛과 오래된 풍경, 그리고 주인장의 손맛으로 추억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곳들이, 낡은 테이블과 벽지, 손때 묻은 의자와 함께 오래오래 곁에 머물러 주면 좋겠다. 우리처럼 문득 그리움이 되어 찾아오는 이들에게, 변하지 않은 시간 한 자락을 내어줄 수 있도록 말이다. 2025.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