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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노인의 기억력이 안좋은 이유 본문
어머니가 심장질환으로 응급실-중환자실을 거쳐 입원하셨을 때의 일이다. 평소에는 주로 아버지가 아프다 아프다 엄살을 피우시고 어머니가 지겨워하며(웃음) 들어주는 관계였는데, 어머니가 병원에 가니 아버지는 약한 소리 하나 하지 않으시고 매일매일을 병원으로 출퇴근을 하셨다. 연차 내고, 퇴근하고 거의 매일 가다시피 한 병원, 병원에서 아버지와 나오면서 순댓국을 먹고 걷는 길에 손을 잡았는데, 참으로 앙상하고 눅눅했다.
마음이 짠해졌다. 내일 어머니를 위해 챙겨와야 하는 물품들을 읊조리며, 깜빡깜빡 자꾸 잊어버린다며 비통해하는 아버지에게, 급하게 위로 멘트를 날렸다.
- 아빠, 노인이 되면 왜 자꾸 깜빡깜빡하는지 알아?
- 왠데?
- 사람이 죽을 때가 가까워지면, 남은 시간동안 진짜로 중요하고 소중한 것만 기억하라고, 쓸데없는 걸 잊게끔 신이 그렇게 만든 거래. 그니까 아빠는 마누라랑 딸내미만 안 잊어버리면 돼.
-.. 그래.
그런데 말해놓고 나니,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콧날이 시큰해졌다.
노년기는 신체적 능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하루가 다르게 '예전과 같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는 좌절감을 겪게 되는 시기이다. 마음과 달리 몸이 움직이지 않고, 내가 통제할 수 있었고, 그렇게 했다고 여겨왔던 너무나도 쉬운 일들도 버거워지면서 무력감이 엄습한다.
게다가 몸은 삐그덕 대고 여기저기가 어찌나 아프고 걸리는 병은 또 왜 이리 많은지. 난 '죽어가고 있구나' 싶어 덜컥 겁도 난다. 사회적으로 은퇴를 하고, '경제적으로 생산적이지 않은 사회 구성원'에 편입되면서, '이제 더 이상 쓸모가 없다'는 비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곁에서 누가 딱히 뭐라 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내 가치는 이제 여기까지-'라는 식으로 폄하하며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말을 달고 사는 노인들이 꽤 많다.
생명이 시간이 지나면서 성장하고 늙고 죽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지만, 마음은 나이 든다고 쇠락하는 것이 아닌지라, 그 갭이 참으로 힘겹게 다가온다.
그래서, 노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신체상황과 사회적, 가정 내에서의 위치(주로 쓸모, 로 스스로 비하하는)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이를 대하는 마음의 힘을 키우는 일이다. 노인은 '나에겐 미래가 없다'라고 생각하기 쉬우므로, 죽음밖에 남지 않았다 생각하는 미래보다는 과거를 돌아보는 것에 집착한다. 그래서 노인들은 '옛날이야기'를 많이 하고 했던 말을 또 한다.
그들은 과거를 되돌아보고, 자신의 삶의 스토리를 재구성할 수 있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심리치료는, 당면한 어떤 현상의 제거나 문제 해결 자체보다는, 삶 전반을 되돌아보며 '나의 삶은 이러했고, 충분히 의미 있었다'로 정리하는 것에 포커스를 두게 된다. 노년기의 삶의 과제가 '통합'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삶을 돌아보고, 맺힌 것은 풀어내고, 그럼에도 충분히 아름다웠고, 살만했고, 잘 살아냈다로 마무리하며,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통합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아버지를 위로하려고 둘러댄, 노인의 기억력이 안 좋은 이유는, 어쩌면 노인 대상 심리치료에서 늘 마음에 두어야 하는 영적 명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고, 정말 내 삶을 돌아봤을 때 소중한 것들을 꺼내어 재편집하고, 내 삶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마무리 과정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세상은 죽어가는 이에게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누구나 늙을 것이고, 죽을 것이다. 하지만 겪기 전까지는, 그걸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가족으로부터도 소외받아 외로울 노인들에게,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삶을 아름다웠다고 기억할 수 있도록 작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 드렸으면 한다.
연로하신, 그리고 연로해지실 부모를 두고 있는 자식들이 말이다
# 글쓴이를 모르겠다.
2014년에 글이 마음에 들어 다음 블로그에 올려 놓았던 글이지만 지금껏 잠자고 있던 글, 티스토리로 블로그 글을 옮기는 작업 중인데 내 이야기 외에는 거의 작업을 하지 않고 있지만 2023년 지금의 내 마음을 참 잘 표현했네. 종종 꺼내 보려 이렇게 방을 마련해 보았다.
이제 할아버지 소리가 익숙해지는 내가 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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