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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동화은행 주권 그 낡은 종잇조각으로 되돌아 보는 내 삶의 단편. 본문
동화은행 주권 그 낡은 종잇조각으로 되돌아보는 내 삶의 단편.
건넌방 한구석, 먼지 쌓인 박스 속에서 잊고 지내던 보물을 찾았다. 빛바랜 동화은행 통장. 그리고 그 속에 잠들어 있던 28주짜리 주권 한 장. 문득 지난 세월의 파고가 눈앞을 스치며 지나간다.
황해도 해주가 고향이신 장인어른 덕분에 시작된 이야기였다. "민족은행"이라 불리던 동화은행의 주식을 식구 수대로 살 수 있었던 1989년 그때. 아무도 주식에 관심이 없다며 손사래를 칠 때, 나는 가족을 위하는 마음으로 근 300주를 샀다. 주당 5천 원짜리 주식이 두 배 가까이 치솟았을 때, 나는 거의 모든 주식을 처분하고 이 28주짜리 한 장만 기념으로 남겨두었다. 얼마 뒤 그 은행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걸 생각하면, 그때의 선택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땐 내게 그런 통찰력이 있었나 보다..
또 한 번의 기회는 신혼 무렵 살던 동네에서 찾아왔다. 대우중공업에 다니던 이웃들이 보너스로 받은 우리 사주를 헐값에 파는 것을 보았다. 모두가 외면할 때 나는 200주를 샀고, 그것이 4배가량 올랐을 때 역시 미련 없이 팔고 나왔다. 지금 대우중공업의 마지막을 떠올리면, 그 또한 기가 막힌 선택이었다.
하지만 잘한 선택은 딱 거기까지였다. 이후 사업을 시작했지만 능력이 없어 손을 털고 나오던 그 시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람을 믿어 보증을 잘못 섰다가 혹독한 세월을 보냈다. 어쩌면 나는 경제관념이 별로 없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돈보다는 사람과의 어울림이 좋았고,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더 많았다. 그런 내가 지금껏 버텨올 수 있었던 건 오롯이 아내 덕분이다. 지금까지도 그녀는 내 삶의 가장 큰 복이자 든든한 버팀목이다.
폭풍 같던 시절이 지나고, 내년이면 벌써 칠순이다. 이제는 남은 삶을 차츰 정리해 가며 사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되었다. 그런 와중에 오늘 우연히 발견한 이 낡은 주권 한 장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내 삶의 굽이굽이, 희망과 좌절, 그리고 선택의 순간들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이 작은 종잇조각 속에 내 젊은 날의 꿈과 함께 파란만장했던 우리 시대의 흔적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니.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후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랑과 감사함이 더 크게 밀려온다. 2025.11.13.

# 동화은행..
1989년에 동화은행이 처음 문을 열었던 때를 생각하면, 여론의 반대가 꽤 있었지만 결국 정부의 강행으로 시작되었다. 특히 6.25 전쟁으로 월남했던 실향민 1세대가 중심이 되어 출자에 참여했고, 그래서인지 '민족은행'이라는 꽤나 특별한 이름을 달았다. 그때는 금융 자율화 바람이 불던 시기라 뭔가 새롭고 큰 변화를 가져올 줄 알았다.
하지만 '번영'이라는 말은 무색하게, 채 꽃을 피우기도 전에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뇌물 사건이니 뭐니 시끄럽더니만, 만성 적자로 늘 휘청였고. 기대했던 금융 혁명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결국, 1997년 IMF 외환 위기라는 거대한 파도가 덮치면서 동화은행은 대동은행, 동남은행, 충청은행, 경기은행 등과 함께
'1차 퇴출 은행'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얼마나 많은 은행원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렸던지, 그때의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무능한 경영진뿐 아니라 설립을 강행했던 정부 모두에게 그 책임이 돌아갔고, 결국 구 신한은행에 인수되면서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한 시대의 씁쓸한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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