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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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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

석모도에서 보낸 1박 2일 (첫째 날)

김현관- 그루터기 2023. 1. 15. 00:30
 

 

 

석모도에서 보낸 1박 2일 (첫째 날) 

  샘터와의 인연으로 방주펜션에 도착하다.

샘터 잡지사에서 엮어 준 인연을 따라 찾아간 석모도 길이다.
모르는 곳에 대한 기대와 조금씩 알아가며 느낄 수 있는 조그만 행복들이 여행의 맛이라면, 1박 2일 동안 석모도라는 낯선 공간에서 스친 소소한 인연들과의 만남은 자연스레 내 삶에 통통 튀는 자양분이 되리라 믿는다.

폭염이 쏟아지는 한 여름이라서 일부러 느지막이 외포리 선착장에 도착했는데 바로 눈앞에서 떠나는 페리가 야속하기만 하다.텅 빈 여객선 대합실은 고고하기만 하고, 괭이갈매기들이 객들의 심려를 아는지 어둑해지는 하늘에 한가로운 날갯짓을 한다.

이윽고 으쓱하니 어깨짓을 하며 석모도를 향하는 뱃전에서 포구에 하나 둘 켜지는 불빛도 바라보고, 금세 다가서는 석모도의 정경도 눈에 담으며 펜션에 전화를 하였더니 주인께서 한달음에 달려와 우리를 맞는다. 서글서글한 이 분! 오늘 하루 동안 서울도 다녀오고, 인천까지 바람처럼 다녀와서는 지금껏 힘들어 쓰러진 트랙터를 고치다 왔다면서 호탕하게 너털웃음을 짓는다. 차창밖으로 느릿하니 스쳐 지나는 점점 섬들이 이제 둥지를 틀며 꼬박이는데 장관이라던 석모도의 낙조는 흐린 구름 속에 숨어 옅은 자취만이 그 자태를 짐작케 한다.

펜션에 도착하여 잠시 농원 구경을 하고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정갈한 반찬들은 모두 이곳 방주 농원에서 재배한 상추와 곰취, 표고 등 청정채소들과 앞바다에서 채취한 나문재나물과 말린 새우등의 해물들로 만들었다. 재료의 귀함과 정성 담은 아주머니의 손맛이 어울려 하나하나 깊고 그윽한 맛이 우러나온 터라 그 별미에 취하고, 조그만 행복감에 젖어가며 한 점 남김없이 입과 배를 호강시켰다.

식사 후! 나직이 들리는 파도소리를 벗삼아 너른 농원의 이곳저곳을 산책하는데 스무 간 가량 떨어진 거리에서 밤중인데도 가뭄에 지친 나무와 화초에 정성스레 물을 주고 있는 유 선생님과 마주쳐 "이 가뭄이 길어 힘드시겠어요?" 위로의 말을 건넸더니, 정말 큰일이란다. 바로 이 분께서 농원의 대표되는 분(유 윤성님)이고, 샘터 편집인이 동생분이라서 샘터 독자들에게 펜션 이용권을 제공하신다고 당신 소개를 하는데 우리 부부가 이곳에서 하루를 유할 기회를 마련해 준 고마운 인연과의 만남이었다.

통성명을 하고 밤에 물을 충분히 주어야 화초와 나무들이 104년만의 이 가뭄을 헤쳐 나간다며 찬찬히 설명을 해 주신다, 일주일에 삼 일 간을 이곳에서 지내는데 요즘 가뭄때문에 서울도 돌아가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단다. "어서 비가 와야지"라는 중얼거림이 이내 양심의 창이 되어  내 가슴을 쿠욱 찌르며 지나간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나서는 숙소앞에 나란히 심어 놓은 캐나다에서 데리고 왔다는 카가 훤칠하니 잘 생긴 킹-오크(왕참 나무)와 고양이가 무척 좋아하는 캣-민트에 대하여 설명하는데, 방금 전의 가뭄에 대한 근심스러운 표정이 사라지고, 차츰 초롱해지는 눈망울과 찰져지는 말소리에서 자연과 수목 화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분임을 알 수 있었다.

유 선생과 헤어져 숙소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창 밖을 내다 보니 세상은 하나 둘 잠들어 간다. 창밖으로 조용히 들리는 바다의 규칙적인 울림에서 베르트 캠페르트 악단이 연주한 Strangers In The Night의 감미로운 음률이 떠 오른다. 아름다운 화초들의 조그만 손바닥에 담긴 향기가 잔잔이 농원 전체를 휘돌아 흐르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느릿하니 깜빡이던 별들이 어느새 가슴에 스며들어 우리를 평화로운 잠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2012 . 6. 28  - 그루터기 -

https://youtu.be/S-PBFM1rRv0?si=cFXo9PbatH9AeH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