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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인천중구] 소무의도 기행 본문
'밴댕이 먹어야겠다.'
늘 그렇듯 따뜻한 형님의 목소리가 전화기 넘어 들린다.
'네 하인천으로 오세요. 올림포스호텔 입구로 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먼저 번에 소무의도엘 못 갔다. 오늘 가자!"
소무의도, 아주 오래전 선거 때만 되면 행정선에 투표함을 싣고 다녔던 곳, 기상악화를 대비하느라 3일 전 미리 도착하여 무기고에 투표함을 넣어 놓고 그곳에서 대기하며 지내던 곳.. 총 투표 인원이래 봐야 고작 78명! 삼십여 분이면 돌아볼 수 있는 자그마한 섬.. 그곳 떼무리 고갯길에 앉아 하모니카도 불고, 이른 아침 바다에 흐트러지는 구름의 춤사위에 젖어 있는 '해녀도'의 고즈넉함에 마음을 달래며 적적하니 지내던 3일간의 기억들이 새삼스럽다.
'소년의 6학년때 담임선생이 여름방학을 맞아 무의도를 찾았다가 소년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기행문을 쓰듯 어린 제자의 슬픈 이야기를 적어나간다. 떼무리라고 불리는 인천 앞바다 작은 섬의 열일곱 소년은 바다에 고기잡이 나가 죽은 두 형으로 인해 바다가 싫다. 그러나 딸 마저 중국에 팔아야 하는 가난한 부모를 위해 고기잡이를 나가야 한다. 결국 소년은 죽는다.' 인천 출신의 극작가 함세덕의 ‘무의도 기행’ 줄거리이다. 그 시절 작가는 무의도, 정확하게 ‘떼무리’로 불리는 소무의도를 작품의 무대로 설정한다
식수가 없던 예전에는 큰무리에서 전마선으로 길어다 식수를 사용했으나 이제는 간이상수도와 펌프 우물로 해갈이 되었다. 오늘 형님과 두런두런 옛이야기를 하며 마을 한 복판 길을 걷는데, 모예재 너머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목 폐교된 소무의분교앞 우물에 '그 맛이 다 어디로 갔나'라는 시 한 수 적혀 있다..
그 맛이 다 어디로 갔나 / 이 아지
뭐 특별한 거 있나
지짐해먹고 고기 살 떠서 뎀뿌라나 해 먹고
그땐 팔지도 모르고 다 먹었어
새벽밥 해 먹고 자월도로 민어 잡으러 변또 싸가지구 그러구 가
오늘 절이면 내일 널어 그전에 냉장고라고 있어?
가랑잎 있지? 도토리 딴 이파리 따다 널어놔
여름에 쌀뜨물 받아놓고 말린거 넣고 젓국 쪄 먹어봐
구수하니 맛있잖아
옛날에는 야채가 더 귀했지
그래 배추배가 들어왔어
바닷물에 절여서 바닷물에 절이지
그때야 깨끗했지 건져놨다 그냥 해먹었지
밴댕이나 황새기 통째로 넣어서 김장해봐 얼마나 맛있나,
배차에 하나씩 넣으면
김치 먹을 땐 흐물흐물허니 물렁물렁해 얼마나 맛있는데
이빨없는 할머니도 잘 먹었어
그 맛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몰라
시방 사다가 하니
맛이 그전 맛이 있나?
없지.
8년 전 큰 무리를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인도교가 놓여 이 곳을 찾는 이들이 늘었으며, 작년에는 잠진도와 대무의 간 연도교를 준공하여 이제는 배를 타고 무의도를 찾을 일이 없어 편해지기는 하였는데 오늘 무의도 중심도로를 꽉꽉 채워 도무지 움직일 줄 모르는 차량들의 행렬을 내다 보면서, 두 번씩 배를 타는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고즈넉한 분위기에 젖어 떼무리의 잔잔한 맛을 보고 느끼던 그 시절은 다시 찾을 수 없을 것을 깨닫고 보니, '그 맛이 다 어디로 갔나'라는 시를 읊조린 '이 아지' 할머니의 혜안이 새삼스럽다.
"그 맛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몰라
시방 사다가 하니 맛이 그전 맛이 있나? ... 없지."
'그럼! 그렇지, 없겠지!' '앗쌀하고 똑 부러지는 지금의 맛으로, 시공간이 버무러져 채우는 그 속살들의 기억과, 모자라고 빠져서 애틋한 그런 맛을 흉내낼 수 있으랴!'
그나마 시간을 공감할 형님과 다녀 왔으니 족하고, 무더운 날 시원하게 바람이 휘불어, 진땀 거두고 마음 끈적일 것 없어, 푸짐한 하루이다.
2020-06-15 17: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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