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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인천 강화] 돼지 방구에 바람개비 돌아가는 곳.. 본문

여행이야기

[인천 강화] 돼지 방구에 바람개비 돌아가는 곳..

김현관- 그루터기 2023. 2. 5. 01:18

 돼지 방구에 바람개비 돌아가는 곳..

강화 가는 길 

 대룡시장

아내가 밥도 먹을 겸 바람 쐬러 가잖다. 큰애 장가보내느라, 이사하느라, 응신을 못한 데다가 덜컥 일자리가 생기는 바람에 우리만의 시간이 너무 없었다. 퇴직하고 이삼 년 철 따라 남의 나라에도 몇 군데 다니고 요기조기 근방에  콧김도 쐬러 다녔는데 올해는 무엇보다 코로나가 나대는 바람에 돌아다닐 짬을 내지 못하던 중 생일맞이 나들이 제의에 고마운 마음으로 선뜻 따라나섰다. 

근래의 상황을 감안해 무엇보다 인파가 적을만한 곳을 따져 행선지를 강화로 정했다. 강화대교를 건너자니 마침 점심때라 군청앞에 냉면을 잘하는 수라 면옥엘 찾아들렀다. 담담한 육수의 따스한 맛이 회를 동하고 이윽고 차려 내온 비빔냉면의 맛을 보자니 적당한 칼칼함과 면의 찰진 맛이 어우지러고 고명 또한 제맛이라서 입맛을 흡족하게 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작년에 관광객들이 많아 그냥 돌아 나왔던 교동도의 대룡시장엘 들렀다. 추분의 햇살은 쨍하였으나 상가의 너풀거리는 채양이 그림자를 드리워 빛가림을  해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은 덕에 수월하니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이 곳 대룡시장은 황해도 연백군에서 피난 온 실향민들이 고향에 있는 시장인 '연백장'을 그대로 본 따서 만든 골목시장이라던데 골목 곳곳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벽화들과 조형물, 오래된 간판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모습에서 실향민의 고향을 그리는 애틋함을 공감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평일이라 객들의 흔적이 거의 없고, 더불어 가게들도 휴일에만 여는지  문을 닫아 걸은 곳이 제법 눈에 보였지만 닫은 곳은 창안을 힐끔거리며, 열린 곳은 상인들과 이바구해 가면서 시장 전체를 통으로 전세 낸 듯 유유자적 돌아다니다가 말린 톳 한통과 파장을 내고 돌아가던 할머니에게 강화의 특산물 중 하나인 노랑고구마 한 상자를 떨이로 구입하고 푸짐한 덤을 얻어 시장을 떠났다. 



조양 방직 카페 (신문리 미술관) 

교동대교를 지나는 길, 검문소 앞을 지나는데 점호를 취하려는지, 전역 기념사진을 찍으려는지 검문초소 앞에  
해병대원들이 늠름하면서도 밝은 표정으로 모여있다.장정들을 보며 지나자니 괜스레 마음이 뿌듯하고  애틋하다. 부디 몸 건강하게 탈없이 전역하길 바라며 총총히 다음 목적지인 '조양 방직 카페'로 향하였다. 

모처럼 강화엘  들렀으면 친구 호섭이가 운영하는 '다리 쉼 카페'에 들러 이야기도 하며 회포를 풀어야 마땅하지만 근래 독특한 환경의 카페로 회자되고 있는 '조양 방직 카페'에 대하여 아내 동문들 사이에도 얘깃거리가 되고 있는지라 아내가 들러 보고자 하는 은근한 바람을 알고, 나 역시 한 번쯤 구경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 스스럼없이 카페엘 들어섰다. 

방직공장을 하던 곳이니 당연히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으나 규모와는 또다른 이색적인 공간을 예술적으로 활용한 감각적인 소품 배치의 섬세함을 둘러보며 카페와 실용 미술관으로의 혼용이 이곳의 존재가치일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였다. 입구부터 눈에 띄게 걸어놓은 '이 곳은 주문자들의 공간'이라는 현실적인 공지로 인해 자의적 해석을 수긍할 밖에.. 

해가 뉘였지고 있는 늦은 오후! 차츰 길어지는 빛을 받은 건물들의 뺨에 홍조가 들고 있다. 제한된 공간을 벗어나 공장 앞마당 이곳저곳에서 뛰어다니는 회전목마들의 모습들에서 고삐 풀린 자유로움이 보인다. 생경스런 포클레인의 앞이빨 위에 다소곳 피어나 바알간 빛으로 물들어 가는 하양 망초들의 하늘거림에서 가을의 정취가 흐드러진다. 한편에는 희랍 신녀들의 나신과, 그윽하니 나신상을 바라보는 귀부인의 귀걸이에도 느릿느릿 빨간 가을이 늘어지고 있다.  

목인박물관 안내판옆 벤치에는 60촉짜리 알 전등 빛과 노곤한 햇빛이 함께 노니는데 돼지 방구에 바람개비 돌아가는 비이성적인 그림 아래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객들을 그러모으고 있다.  

녹슨 스크류를 돌려 보려고 아내의 머리맡에서 불편한 모습으로 방귀를 뿜어내는 돼지 한 마리의 헛짓거리가  마치 '델리카트슨 사람들'중에 살육자인 스크루와 대상자인 돼지를 연상케 하는 것이 이즈음의 세태를 풍자하는 듯하다. 애씀에 대한 결과가 있어야 세상 살아가는 맛이 있을 텐데.. 

떠날 시간이 되었다. 방직공장이었던 너른 공간의 안팎에 어울리게 시각적인 작품들과 조각상들과 그림과 생활 방편들의 요모조모를 채우고 다듬고 기르고 깎아 예술적 감각을 덧댄 수고로움을 한치라도 이해한다면  이 곳을 찾는 분들은 주문자들의 공간이라는 쥔장의 의중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맛난 커피 한잔의 여유로움을 느껴 볼만한 곳이라 하겠다.   2020 .9월말경 


# 조양방직은 원래 강화 섬유산업을 이끌던 방직공장이다. 1990년대에 문을 닫고 오래도록 방치된 건물은 1년 남짓 보수공사를 거쳐 조양 방직 카페로 다시 태어났다. 보수공사를 했지만 회색빛 시멘트 건물 외관은 그래로 살렸고, 방직기계가 있던 기다란 작업대는 자연스럽게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테이블이 됐다. (강화군청 홈페이지) 

 

대룡시장

 

조양방직카페

 

강화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