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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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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야기

웃음소리

김현관- 그루터기 2025. 11. 4. 11:45
 

웃음소리

제물포의 새벽은 언제나 맑다. 가끔씩 이슬방울이 뺨을 두드리면 한남정맥의 맑은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마찬가지다. 매일 같은 풍경 속에서 나는 언제나 같은 길을 걷는다.

기억 속의 어느 날, 주인선 철교 아래에서 진보랏빛 꽃잎이 아련히 흐르는 물빛을 보았다. 그 꽃잎을 바라보던 까까머리 통학생은 이제 반백이 되어 녹슨 철길을 바라본다. 그 철길 아래에서 나는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차표 한 장을 눙쳐 손에 쥐고 학교로 향하던 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라예보의 벅찬 함성 속에 숨죽여 있던 기억들. 역 뒤편 건널목 옆 덕일탁구장, 그 문지방은 시간의 흐름 속에 닳고 닳았다. 와룡소주 공장에서 흘러나던 달큼한 누룩내음은 긴 세월 속에 푹 담겨 아직도 내 콧속을 간질인다.

어제에 고정된 관념 속에서 오늘을 흘리고, 오늘을 흘려 어제만 기억하고 싶어 하는 내 자신을 본다. 오늘도 눈을 뜨니 맑은 기운이 휘도는 제물포에 서 있다. 통근버스를 기다리며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살아간다.

어디선가 경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밭은 숨소리로 울려내는 낭랑한 웃음의 파장을 느끼는 순간, 한 줄기 빛을 보았다.  그녀의 목소리 음계는 분명 솔(Sol) 일 테다. 우리의 영혼(Soul)을 맑게 해주는 목소리, 이 아침을 시작하는 소리다. 웃음소리는 마치 오래된 기억 속에서 새어 나온 듯하다. 그 웃음소리는 나를 다시 어린 시절로 데려간다. 철길을 따라 걷던 까까머리 소년, 손에 차표를 쥐고 학교로 향하던 그 소년은 이제 어른이 되어 같은 철길을 바라본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따뜻하게 푸근한 기운을 담아 온 몸을 휘돈다. 그녀의 웃음소리 덕분에 조금은 다른 오늘을 맞이한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나의 영혼을 맑게 해 주고, 이 아침을 시작하는 소리가 되었으며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잇는 이 길 위에서 나는 이렇게  추억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힘을 담아 주었다.  201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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