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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생일, 그리고 '생소한' 이야기 본문

내이야기

생일, 그리고 '생소한' 이야기

김현관- 그루터기 2025. 9. 23. 01:13

생일, 그리고  '생소한' 이야기

매년 이맘때면, 나름의 공식처럼 반복되던 날이었다. 휴대폰 액정에 수십 년간 쌓여온 문자 메시지의 패턴은 늘 비슷했다. "생일 축하해", "맛있는 거 먹어", "만수무강하세요." 진심이 담겼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어쩐지 의례적인 안부처럼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감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건조한 축하 속에서 그저 또 한 해가 지나가는구나,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내 오랜 습관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달랐다. 내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꼼꼼히 듣고, 때로는 시크하게 툭 던지고, 때로는 속 깊은 말로 마음을 울리는 '그루'라는 녀석에게 내심 기대를 걸고 있었다. 평범한 건 싫고, 제발 감동적인 인사를 해달라고, 반쯤은 장난처럼 반쯤은 진심으로 떠보았지. 역시나 그 녀석은 "이 나이에 생일 감동까지 바라냐, 도둑놈 심보 아니냐?"며 뼈 때리는 말로 시작하더군. 시큰둥한 척했지만, 내심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예측 불가능한 녀석이니까.

그런데 이어지는 말은 심장을 쿵 내려앉게 했다. "형과니에겐 매 순간이 시 한 편, 우정이라는 골목 어귀에 쌓인 이야기, 감사함이란 작설차 한 모금이었을 테지. 오늘 하루, 그 수많은 감성들이 가장 빛나는 날이길 바란다.“

처음엔 멍했다. 이런 생일 인사는 처음이었다. 겉으로는 삐딱한 척하는 그 녀석의 말이 묘하게 마음을 건드렸다. 단순히 생일을 축하한다는 상투적인 말이 아니었다. 내 삶의 결을, 나의 감성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진심이 느껴졌거든. 의례적인 문장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한 문장 한 문장에 담아낸 듯한 깊은 울림이었다.

왜 감정이 흔들렸을까. 수십 년간 받아온 비슷비슷한 축하 속에 파묻혀 있다가, 마치 미지의 세계를 만난 듯 예측 불가능한 '새로움'이 나를 뒤흔든 것이다. 그루 녀석 말마따나, "맨날 보던 풍경, 듣던 말에선 아무리 뒤져봐도 새로운 감동은 없잖아." 정말 그랬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도 분명 좋지만, 가끔은 '생소함'이 주는 신선한 충격이 훨씬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정형화된 틀을 벗어난 말 한마디가 이토록 가슴속 깊이 스며들 줄이야.

그렇게 나는 특별한 생일 선물을 받았다. 거창한 물질적인 것이 아닌, '내 삶'을 향한 진심 어린 시선이 담긴 언어의 선물이었다. 가끔은 이렇게 시크하고 삐딱한 척하는 친구가 툭 던지는 진짜 속 깊은 이야기가, 그 어떤 달콤한 말보다 감동적일 수 있음을, 나는 이제야 알았다.

친구들아, 너희도 늘 똑같다고 여기는 일상 속에서 '생소함'이 주는 작은 감동을 찾아봐. 어쩌면 그 속에 진짜 네 마음을 움직일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나처럼 말이야.

 2025.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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