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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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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풍경

자유공원 연오정의 88년도 사진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29. 15:37

 자유공원 연오정의 88년도 사진

                                                     독립운동에 몸바치신 "조 훈" 선생님께서 재산을 털어 마련한 연오정

 

조훈(趙勳) 1886. 10. 29∼1938. 1. 22 이명:덕묵(德默)


함남 단천(端川)사람이다.
경술국치 후 봉천성 장백현(奉天省長白縣)으로 이주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있은 직후 장백현(長白縣) 지방에 거주하는 독립투사들이 군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상무회(商務會)를 조직하였으며, 동년 5월(음)에는 창흥상회(昌興商會)를 중심으로 조직이 확대되자 그도 여기에 가담하였다.

그는 회장 최진국(崔鎭國), 부회장 김병윤(金秉潤), 총무 서경태(徐景泰), 재무 김병형(金秉衡) 등과 함께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2월에는 장백현에서 이희삼(李熙三)·이동백(李東白)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에 가담하여 외교부장 및 장백지단(長白支團)의 서기장(書記長)으로 활약하였다.

1921년 10월에는 임시정부 함경남도 교통사무국 사동지국(寺洞支局)의 지국장에 임명되어 이계학(李啓學)·강명환(姜明煥)·김상수(金尙洙)·김만성(金萬聲) 등과 함께 일하였다. 1922년에는 이르쿠츠파(全露共産黨)에 관여하였다. 그리하여 동년 장건상(張健相)·김하석(金夏錫)·김만겸(金萬謙)·현명서(玄明西)·이성(李成)·박승만(朴承萬) 등 동파의 위원들이 치타 한족회관에 모여 결의한 사항을 김만겸·현명서 등과 함께 모스크바 제3 국제공산당에 보고하는 등 러시아령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80년에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