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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장가계] 장가계 가는 길 / 2019.8.28 본문
https://youtu.be/Jvo20q3yYKE?si=0sY_mbctcfq9uce_
장가계 가는 길
날이 후텁지근하여도 이미 계절은 가을이다. 가을은 머리 희끗한 초로의 세 친구들에게 걸맞은 계절이 아닌가 싶다. 그간 살아오며 일군 삶의 흔적들을 갈무리하고, 다가오는 노년을 굴절 없이 평안하게 지내야 할 숙제들을 안고, 살아온 날보다 굽이굽이 살아갈 날들이 더 애틋할 수밖에 없기에 그런생각이 드나보다..
명호와 승희네 부부와 함께 지난 일 년여를 함께 아우르며 뜻을 맞춰 명승으로 이름난 장가계로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예훈이 녀석이 막판에 불참한다 하여 서운한 마음도 있지만 여행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
지난 5월 홍콩 여행에 이어 두 번째의 중국 여행이다. 이른 아침 인천공항에서 올라탄 비행기의 창밖에는 서만도와 동만도 두 무인도를 둘러싸며 유영하듯 너울거리는 풀등의 몽환적인 모습들이 아름답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으로 오래전부터 바다를 뒤집어 모래를 파내고, 파낸 고랑으로 풀등의 모래들이 침하되고 있는 중이다. 이러다 이작도의 풀등처럼 점차 이 두 섬을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모래섬들도 스러지겠다. 개발이 빚어내는 상실의 애잔함을 느끼게 하는 여행의 시작이다. 세 시간여의 비행 끝에 무한(武韓) 공항에 도착했다. 예보에는 비가 온다 했는데 전날 저녁에 내린 비가 그치고 맑은 하늘이 산뜻하게 일행을 맞이한다.
공항에서 함께 여행을 하게 될 일행 4명과 만났다. 울진에서 지역신문사를 경영하는 내외분과 칠순이 넘은 아주머니 두 분이 여행의 동반자라 서로 인사를 하고 공항으로 마중 나온 조선족 가이드 강호 씨를 따라 전용버스에 올라타면서 장가계를 향한 무려 9시간의 첫 여정이 시작을 고하였다. 4박 5일간 일행과 함께 할 버스인데 좌석이 널찍하고 에어컨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쾌적하게 흐르고 있었다.
창밖에는 붉은 지붕 회색빛 2층 건물들과 동네 이장네쯤 되는 듯한 건물마다 간체로 씐 '증산 수출 건설'과 같은 구호들이 종종 스쳐 지나고 녹색의 평원과 누런 들판 그리고 나긋하니 흔들며 춤추는 연잎들의 몸짓들 사이사이 펼쳐지는 양어장 물웅덩이들의 익숙함이 보인다. 웅덩이마다 운치를 더하며 적확하게 제자리에 놓여 있는 듯 붉은 지붕 한 채, 먹이용 분수대와 물 언저리마다 걸쳐있는 거룻배 한 척씩, 그리고 쉼 없이 뽀글대는 잉어들의 숨 쉬는 흔적들과 산란되는 물빛이 반짝이는데 빛바랜 삼륜 자동차의 녹슨 태가 남루하게 다가온다.
4시간가량 고속도로를 달려 여행의 첫 목적지인 형주고성(荊州古城)에 도착했다. 이곳은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를 다졌던 곳이며 이곳저곳이 고대 전쟁터인 곳이라지만 잔잔히 흐르는 장강(揚子江) 변에 홀로 서 있는 고성의 모습에서 지금은 한적한 역사 문화유적지로 자리매김을 한곳으로 보이며, 간간이 강물을 거스르는 유람선들을 내려다보는 목덜미에 내리쬐는 햇살이 따가울 뿐이다.
다시 장가계를 향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사방이 벌판이다. 산이 보이지 않는 일률적인 지평선에서 이따끔 보이는 강줄기와 붉은 지붕과 회색 벽 2-3층 집들이 스쳐 지나는 마을 풍경들이 비슷하다. 고속도로를 벗어나는 지점에서 다시 한 번 안전벨트를 매라며 주의를 준다. 버스가 호남 고속 경찰대에 정차하였다 기사는 파출소에 들러 점검표를 제출하고 막간에 건들거리는 젊은 경찰이 차에 올라 순찰점검을 하고 내려간다. 오래전 군접경지역을 지나다 보면 검문소마다 헌병들이 올라타 한 바퀴 돌며 거동수상자를 파악하는 형국에 다름 아니다. 지금의 사회주의 국가에서 벌어지고 과거의 독재국가에서 벌어졌던 일상적 단면들이다. .
어느덧 컴컴하여 창밖의 풍경은 보이지 않고 실내 등도 꺼 놓은 차 안은 차분하며 차르르 타이어 소리만 귓전을 간질인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고 고속도로를 벗어나려는데 뜬금없이 톨게이트에서 버스가 후진을 한다. 상황을 보니, 게이트 부스에 직원이 없다. 한국에서는 절대 보기 힘든 여정의 막판에 보여 준 중국에서의 재미진 풍경이었다.
2019.8.28 그루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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