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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본문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초등학교 4학년때 "불나비"라는 노래를 잘 부르던 녀석이 있었습니다.장기자랑이 시작되면 누구라 할 것 없이 그 애를 지명하며"불나비"를 부르라 할 정도였으니 나름대로 일가를 이루고 있던 셈이지요.당시 우리집에는 제 몸통보다 더 큰 배터리를 고무줄로 업고 있는 낡은 검정 트랜지스터가 있었는데 약 닳는다고 철저히 채널권을 통제하던 어머니때문에 가요를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결국 초등학교 시절 유일하게 알던 노래는 어머니께서 즐겨 듣느라 귀동냥으로 얻어 듣던 연속극 "마적"의 주제가 한 곡인데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가사와 곡 전체가 또렷하니 기억이 나네요 "황야를 달리는 사나이 하나 오늘은 북간도 내일은 모 ~옹고" 이렇게 시작 되는데 아마도 일제시대의 독립군들의 이야기를 각색한 연속극인것 같습니다. 내용은 전혀 모르고 노래만 기억이 나네요.혹 내 나이 또래면 이 노래를 아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지요.
중학교엘 들어 가서는 그래도 동요가 아닌 가요와 교과서에서 배운 외국민요나 고전음악을 들으며 음악에 귀를 틔우는 가운데 2학년때에는 한창 유행하던 포켓가요집을 사들고 다닐 정도까지는 되었지요.그때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이라는 "박 건" 씨의 부드러우면서도 고음처리가 멋진 목소리와 노래 도입부의 매력적인 휘파람소리에 빠져 시도 때도 없이 "루루 루루루루루" 휘파람을 부르며 다니던 기억이 삼삼합니다.
노래 한 곡으로 박 건씨의 팬이 된 것이지요.마로니에가 밤나무종류라는 것도 그 나무가 동숭동 서울대앞에 있다는 것도 그 때 알게 되었습니다.하지만 그도 잠시 중3부터 고등학교에 이르면서 팝송과 칸초네의 성악으로 노래취향이 바뀌어,자연스레 박 건씨도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도 서서히 잊어갔지요..
그런데 오늘 우연히 케이블 T.V에서 박 건씨 특집을 보게 되었습니다.라디오로 만났던 떠거머리 중학생과 이십대의 멋진 청년가수가 사십여년 세월이 흘러 머리 희끗한 중년과 노인이 되어 T.V 를 앞에 두고 시청자와 게스트로 다시 상봉한 셈입니다.대답중에 흘러 나오는 젊은 청년가수 박 건씨의 노래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휘파람을 따라 부르고 있었습니다.그리고 중학 시절의 철부지 모습과 휘파람을 부르던 소란스런 교실의 풍경까지 한꺼번에 떠오르며 잠시나마 옛 추억속에 잠길 수 있었습니다.
이어 당시 무명이던 "나 훈아"씨와의 에피소드도 듣고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이라는 노래 제목이 "마로니에"였으면 좋을뻔 했다는 박 건씨의 속마음도 알게 되고, 함께 참석한 친구 코미디언 방일수씨와의 첫만남 당시의 인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정경과 함께 동숭동 마로니에 나무를 찾으며 지난 추억을 되새기는 박 건씨의 모습을 짜안하니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못들을 것을 듣고 말았네요. 그렇게 흘러간 옛날 멋진 모습과 추억을 그리는 것으로 족했는데 함께 그 추억속에 동화되어 갔는데, 왜 새삼스레 거친 목소리로 그 노래를 불렀을까요.아름다운 목소리는 추억으로 남겨 놓고 간직했으면 참 좋았을텐데..굳이 긴 세월의 흐름을 팬에게 상기 시켜 주었는지 참 안타까웠습니다.케이블 T.V의 한계일수도 있고,노인의 고집일 수도 있겠지만 한 때 좋아했던 우상의 무너짐을 바라 보는 나의 마음이 정말 아팠습니다.
젊은은 영원할 수 없고, 목소리도 영원할 수 없지요.아름다운 노래를 기력이 쇠한 소리로 듣노라니 애뜻함이 다가 옵디다.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지만,어쩌겠어요! 그래도 그를 기려야겠지요.그래요! 그는 가수니까요.그는 가수로서 자신의 모습을 지금까지 꿋꿋하니 간직하고 있으니까요.아직 건재함을 보여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요. 그런 그의 마음을 이해해야겠지요.비록 세월이 그를 스러지게 했어도 옛 영화속에서 살아가는 그의 현재 모습도 보다듬어야 그것이 팬으로서의 도리일겁니다..
그의 마로니에 잎이 지는 날!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 버렸을지언정, 덧없이 사라진 아련한 목소리일지언정 팬으로서의 나는 다시 마로니에 잎이 피기를 기다리며 그의 낭랑하고 아름다운 휘파람 소리를 기억해야겠어요.
언젠가는 그 사람 이름을 잊을지라도.
2013.7.18 - 그루터기 -
https://youtu.be/pmQXKfJyiGs?si=4bISTn76rBABA6VL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노래 / 박건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눈물 속에 봄비가 흘러 내리듯
임자 잃은 술잔에 어리는 그 얼굴
아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 버렸네
그 길에 마로니에 잎이 지던 날
루루루 루루루루 루루루 루루루루루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아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 버렸네
그 길에 마로니에 잎이 지던 날
루루 루루 루루루 루루루 루루 루루루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피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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