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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부고에서 도리를 깨닫다 본문
부고에서 도리를 깨닫다
얼마 전, 졸업 후 단 한 번의 연락도 없던 동창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면서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 달라는데 난감하기 그지없다. 본시 부고라는 것이 호상이 직접 하여야 하고 여의치 않을 경우에 상주나 가족이 하는 것인데 말이 동창이지 졸업한 지 40년이 다 되어가는 마당에 쓴 소주 자리 한 번 없다가 이제야 내가 동창 입네 하며 서슴없이 격에 없는 부고 얘기를 하는 품새가 영 마뜩잖은 까닭이다.
나야 연락을 맡고 있는 사람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졸업 후 한 번 보지 못한 친구도 많을 텐데 당사자가 직접 선별해 연락해야 옳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안 그래도 달포 전 동창모임에서 필요한 시기에 잠깐 나왔다 사라진 몇몇 친구들의 얘기가 화두에 올랐던 터라 은근히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 친구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동창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잃은 행동임을 알 수 있겠다. 사실 오가다 인사치레로 내밀었던 명함으로 청첩도 보내고 부고도 하는 황당한 사람들도 있으니, 이 친구만을 나무랄 형편도 아니다.
어찌 되었건 학창 시절을 함께 지냈던 동창으로 맺어진 인연인 것을 어찌할까, 당사자로서는 친구들보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효도를 도리로 판단하였으니 다소의 결례쯤은 친구들이 이해해 줄 것으로 생각하였으리라. 다만 이전에도 자기 필요에 의해 동창회를 이용한 친구가 있어서, 몇몇 친구들이 또다시 그런 일이 생길까 우려하는데, 그로 인해 친구 간에 불신의 골이 형성될까 그 점이 염려될 따름이다. 결국 내키지는 않아도 친구들에게 연락을 취해 주었지만 장례식장에 참석한 친구들은 몇 명 안 되었고, 그 점이 서운했는지, 바빠서 안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부탁 전화 이후로는 내 전화를 전혀 받지 않고 있다. 우려가 기우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이 친구 덕분에 새삼스레 세상을 살아가는 도리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도리는 한자어로 길을 다스린다라는 말인데 그 길이 어떤 길인가? 바로 사람이 가는 길을 뜻함이니, 사람이 자기의 길을 가려면 성정과 필요에 의해 스스로 그 길을 닦아야 한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먼 곳을 가기 위해 평평하고 잘 다져진 길을 원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노력과 애씀이 필요할 것이고, 소롯길로 만족을 한다면 적당한 노력으로도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터이다. 그게 살아가는 법이고 인지상정인데 간혹 남이 애쓰며 닦아놓은 길에 무상 안주하여 마치 제 길인 양 내 달리는, 도리에 먹칠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누구를 칭하기에 앞서 스스로 되돌아보며 반성할 부분을 찾아가며 살아가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
품앗이와 두레나 계가 저절로 생긴 것은 아니다. 다 같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자구적인 필요에 의해 하나씩 생겨난 규범들인 것이다. 농경사회에서 이루어진 규범인만큼 단순하지만 단순함이 외려 커다란 역할을 했고 그 정신만큼은 면면히 흘러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현재의 사회적인 관계는 그 사람의 개성과 역량이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넓이와 폭을 기준하는 정답은 없겠지만 관계의 역할을 짊어질 최소한의 예와 정성과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산다는 것은 곧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행태는 모두 다 틀릴 수밖에 없을 것이나, 미리부터 죽음을 준비하고 있던 사람과 예기치 않게 맞닥뜨리는 사람은 확연한 차이를 보일 것이다. 사회는 점점 각박해져 가고 이제 모임의 단위는 최소한으로 작아졌는데, 이에 대비를 하지 않다 보면, 필연코 친구와 같은 처지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워지는 사람이 되지 말자.. 내가 알던이의 수첩에 있던 다짐처럼 내 이름이 지워지는 사회생활을 하면 안 될 것이고, 친하다고 생각하던 사람의 기억에서 잊히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잊히거나 지워지는 사람이 되다 보면 언젠가는 이 사회에서 자기 자신의 존재가치마저 잊게 될 것이다. 지워지기보다는 지우며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2012.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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