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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Tom Waits / Mule Variations (Epitaph) 본문
사막에 피는 꽃처럼 그곳에는 한없는 기다림이
모하비 사막, 라스베이거스
서부 개척 시대에 만들어졌지만 이제는 유령만이 살고 있다는 흉가 마을을 지나면, 라스베이거스까지 가는 내내 갈색 바다의 심연처럼 보이는 사막이 펼쳐진다. 모하비 사막이다. 실제로 모하비 사막은 원래 바다였고, 지금도 모래와 자갈 속에서 바다 생물들의 화석이 종종 발견된다고 한다
에어컨이 잘 나오는 차 안에서는 저 사막이 어떤 곳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대도시 외곽으로 달린 지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요기도 할 겸 잠시 쉴 곳을 찾아 차 문을 열자 뜨겁고 건조한 사막의 바람조차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는지 차 안으로 훅 밀려 들어온다. 모하비 사막은 그런 곳이다. 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사막을 지나 네 시간 정도 달리면 저 멀리 네온사인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막 가운데 있는 마을에 잠시 내리니, 톰 웨이츠Tom Waits의 〈기다려요 Hold On> 비디오 클립에서 본 듯한 정경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편의점 앞에 서 있던 백발노인 한 명이 뜨거운 오후 햇살에 얼굴을 찌푸리며 땀을 닦고, 레스토랑 입구에는 잔뜩 멋을 냈지만 어딘가 어색하고 촌스러운 젊은 커플이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 일행을 힐끗 한 번 보더니, 다시 속삭이느라 정신이 없다.
레스토랑 안에는 저니Journey가 부른 노래 〈믿는 걸 멈추지 마세요Don't Stop Believin〉가 흐르고 있었는데, 노랫말을 따라 창가 밖 커플을 다시 보니 영락없이 영화 「록 오브 에이지」에나 나올 것 같은 아이들이다. 설마 디트로이트 남쪽을 떠나 여기까지 흘러온 청춘들일까. 아니면 일확천금을 꿈꾸며 라스베이거스까지 가다가 이곳에 주저앉은 건 아닐까. 요기를 하며 그들을 흘끔흘끔 쳐다보는 동안 온갖 잡다한 상념이 떠오른다.
남자는 여자에게 싸구려 시계와 숟가락으로 만든 철제 반지를 주었죠
누구나 다 비난할 누군가를 찾고 있어요
당신이 내 침대를 함께 쓸 때, 당신은 내 성도 함께 쓰지요
어쨌든 계속 해보고 경찰도 불러요
커피숍에서 멋진 여자들을 만나지 마세요
내게 말하길 '자기, 난 아직 당신을 사랑해요'
한때는 아무것도 할 게 남아 있지 않았는데
그렇지만 당신은 기다려야 해요
그리고 내 손을 잡아요, 난 바로 여기에 있다고요
당신은 기다려야 해요
나는 톰 웨이츠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모하비 사막이 생각난다. 그의 노래를 듣기에 가장 어울리는 곳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모하비 사막을 선택할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톰 웨이츠의 노래 중에 미니애폴리스나 세인트루이스, 어쩌다가 뉴올리언스가 등장한 적은 있어도, 모하비 사막에 관한 노래는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걸쭉하다 못해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한 그의 목소리에서 모하비 사막의 정경을 발견한다.
모래로 가득한 언덕이나 지평선만 보이는 아프리카 어느 사막이 아니라, 자갈과 황무지로 뒤덮인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도로만 뻗어 있는 모하비 사막 특유의 정경, 사막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 옆으로 주유소와 편의점, 허름한 레스토랑이 나란히 있는 쓸쓸한 풍경.
그곳에는 항상 톰 웨이츠의 노래들이 흘러나올 것 같다. 그곳 주크박스에 톰 웨이츠의 노래가 있다면, 이기 팝Iggy Pop의 노래는 결코 없을 것이다. 물론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Antonio Carlos Jobim 의 노래처럼 모하비 Mojave라는 제목으로 공개된 노래들과 연주곡들도 있다. 하지만 정작 조빙의 음악을 들으면 모하비는 고사하고 브라질 어딘가에 있을 해변이나 아마존 열대우림이 연상될 뿐이다.
모하비는 텅 빈 곳이다. 로스앤젤레스와 라스베이거스라는 커다란 도시 사이에 놓여 있는 공허함과 적막함의 상징일 뿐이다. 이곳은 라스베이거스가 아니다. 라스베이거스를 흉내 낸 이 작은 마을의 네온사인은 어딘가 모르게 좀 얄팍하고 촌스럽기까지 하다. 참을성 없는 사람들이 이 마을에 내려서는 라스베이거스에서 탕진할 돈을 일찌감치 다 잃고 정작 라스베이거스에는 가지도 못한다는데, 그렇다 보니 마을 전체가 흉흉해서 이곳에서 내릴 경우 누구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단다.
도박과 향락이라는 그런 류의 유혹은 라스베이거스가 아니라도 세상 어디에나 다 존재한다. 천만 이상의 인구가 바글바글한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든, 온갖 환락이 가득한 네바다 라스베이거스든, 이 대도시들은 톰 웨이츠의 노래로 치자면 <유혹 Temptation〉이나 <독약 한 방울Little Drop of Poison>의 이미지를 머금은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톰 웨이츠의 노래들이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나 고층 빌딩 숲에만 어울리는 건 아니다.
그의 음악을 제대로 듣고 느끼려면, 오히려 대도시 외곽에 있는 허름한 바 같은 곳을 찾아가야 할 것만 같다. 도시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걸쭉한 목소리를 들어야 할 것 같고, 반대로 도시에서 벗어날수록 <저지 걸Jersey Girl>이나 <Ol' 55> 같은 노래들이 귀에 감길 것 같다. 물론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모하비 사막 한가운데에 있다면, <기다려요>만큼 잘 어울리는 노래는 없을 것이다!.
Tom Waits / Mule Variations (Epitaph)
톰 웨이츠는 아일랜드 레이블을 떠나 새로운 독립 레이블 에피타프에서 1999년에 《뮬 베리에이션》을 공개했다. 톰 웨이츠에게는 음울하고 그로테스크한 뮤지션이라는 평이 따라붙는데, 그를 수식하는 어떤 단어들은 앨범 속의 보석을 발견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지 모른다. <기다려요>처럼 빛나는 곡들이 그의 음반마다 한 곡씩 숨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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