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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통도사 소나무를 위해서 쇠북 한 번 치거라 본문

철학,배움,지혜

통도사 소나무를 위해서 쇠북 한 번 치거라

김현관- 그루터기 2023. 7. 11. 09:33

 

통도사 소나무를 위해서 쇠북 한 번 치거라

 

경봉 스님이 통도사 주지를 할 때의 일이다. 양산 경찰 서장이 관내의 유지들을 불러모았다. 스님은 그곳에 참석하고 돌아와서 시자를 불렀다.

", 산내 암자에 사발통문을 돌려야 되겠다."

읍내에 나갔다 온 경봉 스님이 그렇게 말하자 시자가 되물었다.“어떤 내용으로요. 스님?"

"내용은 산 내 각 암자에 있는 운반하기 쉬운 종이나 쇠북을 빨리떼어내서 감추라고 해라."

"종과 쇠북을 떼어내서 감추라니요? 그럼 기도나 법회 때는 어떻게 합니까?"

목탁을 쳐야지. 빼앗기는 것보다 그것 없이 기도하는 것이 더 낫느니라."

시자는 경봉의 돌연한 말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경봉에게 그 사연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 때문에 종과 쇠북을 감춰야 합니까?"

일본 아이들이 전쟁을 더 크게 벌이는 모양인데, 예부터 난리가일어나면 쟁기와 보습을 녹여 창과 칼을 만드는 법. 나중에 절에도그것이 미칠 것이다."

그날 저녁 경봉 스님은 시자를 데리고 극락암으로 올라가서 그곳에 있는 대밭을 파고 쇠북을 묻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대동아전쟁이 터지고 일본인들에게서 공출령이 내려왔다. 그 공출령은 곡식은 물론 쇠붙이, 솜까지 모두 거두어 가는 무서운 것이었다.

절에도 그 바람이 불어 닥쳤다. 일본 순사들이 산 내 암자를 돌아다니면서 공출물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통도사 암자에는 쇠붙이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 스님. 어떻게 이 암자에는 종이 하나도 없습니까?"

워낙 가난해서 그렇소. 전에는 쇠북이 하나 있었는데 몇 년 전에누가 엿으로 바꿔 먹은 모양이요."

"그럼, 놋쇠 밥그릇이나 내놓으세요."

"어허, 우리 암자에는 나무로 깎은 발우를 쓰고 있어 놋쇠그릇도없소.”

일제의 수탈은 갈수록 더 거세졌다. 마침내 통도사 입구에 있는 솔밭에도 일이 벌어졌다. 그 소나무 숲은 지금도 있는 것으로써, 양산 통도사 입구에 개울을 따라 아름드리 늘어선 소나무 숲이 바로 그것이다. 수백 년도 더 내려온 소나무를 일본 사람들이 공출이라는 이름으로 베어 가려고 작정을 한 것이다.

군수와 경찰 서장은 소나무 숲을 베기 위해서 경찰과 인부를 동원해 작업을 벌였다. 그러자 경봉이 뛰어 내려가 그것을 제지했다.

군수와 서장은 정신이 있소 없소?"

"아니, 스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절 앞에 있는 낙락장송을 베면 절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소. 대중들이 난리를 칠 것이요.”

하지만 스님, 어쩔 수 없습니다. 위에서 공출하라고 명령이 계속 내려오니 저희도 방법이 없습니다."

그럼 머리를 써야지."

안 그래도 통도사의 반대를 걱정하던 군수와 서장은 경봉 스님이 방법이 있다는 듯이 말을 하자 귀가 솔깃해졌다.

어떤 방법이 있습니까?"

나 같으면 절 가까운데 있는 소나무를 베어서 대중들이 들고 일어나 주위가 시끄러워지는 것보다는 저기 영축산에 있는 소나무들을 베어내겠소."

영축산은 통도사 뒤편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영축산은 산림이 우거져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가득 차 있었다. 절 앞의 소나무는 몇 천 그루 밖에 안 되었지만 영축산 소나무는 그 양도대단했다. 멀리서 보아도 산빛이 짙푸른 것이 대단히 많아 보였다.

"아니 그럼 스님. 영축산 소나무를 베어내도 된다는 말입니까?"

, 대중들이 절 앞에 나무가 서 있지 않으면 무어라 하겠소? 하지만 영축산은 온 천지가 소나무 숲이니 좀 베어낸다고 해도 표시나지 않을 것 아니요?"

경봉 스님의 말을 들은 군수와 서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통도사 앞에 나무를 베어낸다고 하자 지역 민심이 술렁이던 참이라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위에 보고를 하고 영축산 나무를 베기 위해 작업을 벌였다. 그런데 그것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우선 통도사는 절까지 길이라도 있었지만 영축산은 그 당시 깊은산중이나 다름없었다. 우선 나무를 베어내려면 그것을 실어 낼 길부터 만들어야 했다. 그 길을 만드는 사이에 일본은 항복을 하고 말았다.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이 절에 들려오자 경봉 스님은 시자에게 대나무 밭에 묻어 두었던 쇠북을 꺼내 치도록 했다. 쇠북이 걸리자스님의 일성이 터졌다.

"조선이 해방되었다고 부처님에게 알려라!"

""

오랫동안 땅 속에 묻혀 있던 쇠북이었지만 그 청정한 소리는 묻혀있지 않았던 것이다. 시자가 두드리는 맑은 쇠북소리가 극락암 주위로 퍼져나갔다. 그 소리를 들은 경봉스님이 한마디 더 일렀다.

통도사 소나무도 살았으니 한 번 더 쳐라.”

쇠북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지며 저 멀리 영축산까지 가 닿은 것 같았다. 경봉 스님이 한 번 더 쇠북을 치도록 입을 열었다.

영축산 소나무들도 모두 살아났으니 쇠북 한 번 더 들려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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