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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음악―유통 기한 무한대의 음악, 보사노바 / 황윤기 본문
브라질 음악―유통 기한 무한대의 음악, 보사노바 / 황윤기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넓은 땅을 가진 나라 브라질은 ‘문화의 용광로’로 불리는 곳이다. 이 땅을 식민지로 삼았던 포르투 길을 비롯한 유럽으로부터의 이주민들과 식민지 시절 아프리카에 서 건너온 흑인들, 그리고 토착 원주민들의 문화가 융합되어 있는 나라. ‘음악의 용광로’라 해도 좋을 만큼 다양한 모습의 음악이 발전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 카니발, 축구 등과 함께 삼바, 보사노바, MPB 또한 브라질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리 잡고 있다. 브라질의 대중음악은 새로운 것에 대한 뛰어난 수용력과 그것을 자신들의 음악으로 재창조해 내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 주어 왔다. 그래서 세계의 많은 음악팬들은 “브라질의 음악에는 에너지 넘치는 특별한 개성이 있다”라고 입을 모은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아프리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답게 아프리카의 음악적인 요소들이 짙게 드러나는 한편, 포르투갈의 음악이나 미국의 재즈를 비롯한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브라질적인 것으로 변화시켜 자신들만의 음악으로 발전시켜 온 것이다. 그중에서도 브라질 음악인들 특유의 ‘창조적인 수용력’이 가장 잘 발휘된 음악이 바로 보사노바(Bossa Nova) 일 것이다. 다양한 스타일의 브라질 음악 가운데 가장 미묘하고도 친근한 매력을 지닌 보사노바는 재즈와 팝 등 많은 장르의 음악에 접목되면서 가장 친근한 브라질 음악 중의 하나로 보편화되어 있는 음악이기도 하다.
보사노바의 탄생과 선구자들
브라질 음악의 대명사인 삼바는 빈민촌에 거주하던 아프리카 흑인들에 의해 탄생해 카니발의 꽃이 된 음악이다. 그러나 삼바 는 브라질 문화의 중산층에게까지 수용되지는 못했다. 이어 삼바 리듬을 완화시키고 노래를 덧붙여 삼바 캉성(Samba Canção), 즉 노래하는 삼바라는 형태가 생겨났다. 보사노바는 이 삼바 캉성에 새로운 감각이 더해진 음악이라 할 수 있다. 보사노바는 삼바가 가지지 못했던 선율적인 우아함과 시적인 노랫말까지 겸비하고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지식층까지 흡수했던 음악이었다. 리우데자네이루 빈민층의 축제음악이었던 삼바와는 달리 보사노바는 너무나 세련된 음악이었으며, 시적인 분위기까지 지닌 참신한 음악이었다. 노래뿐만 아니라 악기에 있어서도 기타와 피아노 등이 주를 이루는 확실히 새로운 음악이었다. ‘월드 뮤직’이라는 단어가 생기기 이전 일부 재즈팬들을 비롯한 많은 음악팬들이 보사노바를 재즈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던 때가 있었다. 백인 테너 색소폰 주자 스탄 게츠(Stan Getz)를 비롯한 미국 재즈 뮤지션들은 보사노바 리듬을 사용하여 놀라운 히트를 기록했고, ‘보사노바 재즈’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보사노바는 재즈 뮤지션들에 의해 세계 음악팬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스탄 게츠는 보사노바의 전도사라 할 만큼 커다란 역할을 했다. 또한 그 열풍의 중심에 있었던 스탄 게츠의 앨범 『게츠/지우베르투』(Getz/Gilberto)에는 보사노바의 또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는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과 주엉 지우베르투라 는 두 거목이 찬조출연의 모양새로 가담하고 있었으니, 충분히 오해할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미국 재즈의 영향을 받은 것이 확실하지만, 보사노바는 분명 브라질 음악의 용광로 속에서 탄생하였다. 새로운 매력으로 모양을 갖추기까지는 선구자로 불릴만한 인물들의 노력이 있었다.
주엉 지우베르투(João Gilberto)
보사노바라는 새로운 감각의 리듬을 만들어 낸 사람은 ‘보사노바의 신(神)’으로 불리는 주엉 지우베르투라는 인물이다. 1950 년대 후반 무명의 신인 뮤지션이던 그가 음악에 대한 독특한 감각과 고집으로 완성해 낸 리듬 패턴이 바로 보사노바의 시작이었 다. 그리고 보사노바의 선구자로 불리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조빙이 그의 곁에 있었다. 주엉 지우베르투는 극단적인 개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가 보사노바 리듬을 완성해 낼 때 며칠동안 욕실에 틀어박혀서 기타와 씨름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으며, 고집스럽고 모난 성격은 적지 않은 일화들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음악적인 천재성을 인정하고 인내심 강하게 그를 지원했던 인물이 바로 조빙이었다. 보사노바의 매력을 너무나 아름답게 표현했던 앨범 『게츠/지우베르투』 녹음 당시, 스탄 게츠와 주엉 지우베르투는 서로 다른 견해 차이로 내내 사이가 좋지 못했다는데 이 둘 사이를 조율하면서 녹음을 이끌어 갔던 인물이 바로 조빙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어쨌든 주엉 지우베르투의 놀라운 감각은 조빙의 곡들을 정말로 매력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고, 나긋한 음성으로 중얼거리듯 노래하는 그의 스타일은 오늘날 브라질의 많은 보사노바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Antônio Carlos Jobim)
섬세한 멜로디와 하모니를 지닌 조빙의 곡들은 브라질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음악가들에 의해 수없이 레코딩되어 왔다. 그의 음악은 20세기 초반 브라질 음악계의 현대적인 음악과 클래식, 재즈 등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누가 들어도 어렵지 않게 귀를 사로잡는 멜로디와 그 뒤를 받치고 있는 탄탄한 음악적 구조는 조빙을 20세기 대중음악 최고의 작곡가 중의 한 사람으로 지목받게 했다. 보사노바의 태동기에 조빙은 주엉 지우베르투를 지원하며 수많은 보사노바 명곡들을 만들어 냈고, 두 사람 이 선보인 새로운 음악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브라질 대중음악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그의 음악적인 활약은 보사노바라는 새로운 음악이, 나아가 브라질의 음악이 세계적인 것으로 자리하는 데 튼튼한 초석이 되었다. 1994년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도 보사노바를 표방하는 어떤 장르, 어떤 아티스트의 음반을 봐도 조빙의 곡 한두 곡 이상은 반드시 들어 있을 정도로 그의 음악들은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아 오고 있다.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Vinícius de Moraes)
또 한 사람의 보사노바 선구자로서 시인이자 작사가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를 빼놓을 수 없다. 최초의 보사노바 명곡으로 알려진 「사무치는 그리움」(Chega de Saudge), 「이파네마의 소녀」(Garota de Ipanema), 「음치」(Desafinado) 등을 비롯한 조빙 의 수많은 명곡에 가사를 붙이며 보사노바에 시적인 아름다움을 부여한 인물이다. 보사노바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로 아름답고 시적인 가사를 들 수 있는데, 그의 노랫말들은 보사노바 리듬 이 가진 매력처럼 잔잔하고도 시적이었다.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던 영화 『흑인 오르페』의 원작 희곡을 썼던 인물이기도 한 그는 조빙과 단짝을 이루어 수많은 보사노바 명곡들을 탄생시켰으며, 이후에도 브라질의 중요한 인물들과의 공동 작업을 통해 브라질 대중음악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조앙 지우베르투의 리듬과 조빙의 멜로디, 여기에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의 노랫말이 더해져 보사노바 음악은 꽃을 피우기 시 작했다. 이들 3인방이 처음으로 함께 했던 1958년 앨범(Canção do Amor Demais)은 엘리제치 카르도주(Elizeth Cardoso)라는 삼바 캉성 가수가 노래한 것이지만, 최초의 보사노바 곡으로 기록되는 「사무치는 그리움」을 수록하며 본격적인 보사노바의 시 작을 알렸다.
보사노바의 특징들
보사노바가 폭넓게 어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그 리듬 의 미묘한 감각에 있다. 삼바 리듬을 바탕으로 독특한 악센트의 당김음(싱커페이션)이 가미되어 만들어진 보사노바 리듬은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쿨 재즈의 영향으로 삼바와는 전혀 다른 감각을 선보였다. 특히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한 서부지역에 서 절정의 인기를 얻었던 웨스트 코스트 재즈(West Coast Jazz) 가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웨스트 코스트 재즈 가 지닌 백인적인 스마트함과 지적이고 모던한 분위기는 보사노 바에 우아하고 세련된 면모까지 더해 주었다. 한편, 삼바가 타악기를 중심으로 하는 춤곡이라면, 보사노바는 기타가 중심을 이룬다. 단순하면서도 미묘한 화음으로 가득 차 있는 보사노바의 매력은 기타에서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 다. 보사노바 리듬이 가진 독특한 악센트와 특유의 탄력은 기타 로 표현되기 때문에 더욱 우아한 면모를 지닐 수 있었다. 중얼거 리며 노래하듯 조용한 발걸음으로 절묘한 타이밍을 잡아가면서 기민하게 움직이는 기타와 그 속에서 나오는 특유의 탄력적인 리 듬은 보사노바의 가장 큰 매력임에 분명하다. 브라질의 음악은 그 노랫말 속에 시문학의 전통이 이어져 오 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 외에도 많은 시인들이 브라질 대중음악과 함께 해 왔다. 여기에는 포르투갈 어가 시와 잘 어울리는 언어로 인정받는 사실과, 독특한 아름다 움을 꽃피웠던 포르투갈 문학의 영향도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보사노바에 담긴 노랫말 또한 브라질 대중음악 속에 흐 르는 시문학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몇 곡을 통해 살펴보자.
이파네마의 태양에 그을린 황금빛 피부의 소녀.
그 유혹은 한 편의 시보다 더하고
내가 보았던 어떤 것보다도 아름답네.
아, 나는 왜 홀로 있을까.
아, 왜 모든 것이 이다지도 슬픈 것일까.
아, 존재하는 저 아름다움.
나만의 아름다움이 아니지만
그녀 역시 홀로 지나가네.
(「이파네마의 소녀」 중 일부)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는 리우데자네이루 해변에서 본 소녀 가 지닌 아름다움을 시적인 노랫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브 라질 음악 속에 내재되어 있는 슬픔의 정서도 함께 담고 있다. 이는 ‘그리움’, ‘숙명적인 슬픔’ 등을 정서적인 근간으로 하 는 포르투갈 파두(Fado) 음악으로부터 받은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이파네마 해변의 태양에 그을린 황금빛 피부의 소녀의 아름 다운 유혹과 함께 소녀가 지닌 아름다움의 반대편에 홀로 있는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조빙과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 콤비의 명곡 중의 하나인 「행복」(A Felicidade)의 노랫말에서도 비슷한 정서를 발견할 수 있다. 많은 보사노바 곡 들이 달콤하고 포근한 분위기 속에서 슬픔의 정서를 시적으로 표 현하고 있다. 슬
품에는 끝이 없지만
행복에는 끝이 있지.
행복은 깃털 같은 것.
바람이 공기 속으로 들어 올리면
너무나 가볍게 날아다니지.
하지만 곧 생명을 갖게 되어
멈추지 않는 바람이 필요하지.
가난한 사람의 행복은
카니발의 거대한 환상.
사람들은 한순간의 꿈을 위해
일 년 내내 일을 하지.
해적 왕이 되거나 정원을 가꾸는
환상을 만들어 가며.
하지만 수요일이면 모든 것이 저절로 사라지지.
(「행복」 중 일부)
「음치」라는 곡은 보사노바라는 새로운 음악을 알아주지 못하 는 답답함을 노래하고 있다. 가사 내용을 얼핏 보면, 음치이지만 진 실한 마음을 담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노래하고픈 마음을 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 곡은 아직 보사노바라는 새로운 음악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난하던 당시 브라질 음악계의 평론가와 기존의 삼바 가수들에게 보사노바의 특별함을 전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노래다.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의 은유적인 노랫말 속에 보사 노바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나의 사랑, 당신이 나에게 음치 가수라고 부를 때마다 그런 말들이 얼마나 나의 감정을 상하게 하 는지 알지 못하나요?”라고 시작하는 이 노래는, “당신들의 특권 과도 같은 완벽한 귀와 음감으로 나를 볼 때마다 나를 기분 나쁘게 하는군요”라며 보사노바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에게 본격적인 대화를 시도한다. 그리고 “당신들은 이것이 뭔지도 모르고 심지어는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이 음정도 맞지 않는 음악은 나의 진심을 담 고 있는 음악”이라고 말한다. 또한 중요한 것은 “음정이 맞지 않는 그 음악들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며, 그것이 바로 자연스러운 음악 보사노바라고, 그 속에 담긴 사랑은 당신이 음 악에서 찾고자 하는 그 어떤 것보다도 멋진 것”이라는 노랫말로 보사노바의 새로운 매력을 이야기한 곡이다.
보사노바의 짧은 전성기, 그 이후
‘새로운 경향’이라는 의미를 지닌 보사노바는 1958년부터 1964년 브라질 군부독재가 시작되기 전까지 황금기를 누렸고, 음 악으로서뿐만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인 유행으로 확산되었다. 모던하고 쿨한 모든 것에 보사노바라는 명칭이 붙여질 정도였다. 심지어 보사노바 대통령까지 있었다. 1954년 민주 선거로 당선된 주셀리누 쿠비체크는 좋은 시절을 이끌면서 보사노바 대통령 으로 불렸다. 또한 1958년과 1962년 스웨덴과 칠레 월드컵축구대 회에서 펠레가 활약한 브라질 대표팀이 2연패를 차지하기도 했 다. 이처럼 1950년대의 브라질에서는 중간계층이 성장하면서 낙 관과 희망의 분위기가 팽배했고, 보사노바는 그런 시기의 분위기 에 알맞은 음악이었다. 하지만 보사노바는 군부독재가 시작되면 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독재에 대한 저항이 음악으로도 표출되었 고, 노랫말이나 분위기가 현실생활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보사노 바는 그 시대적인 가치관과 공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군부정권의 혹독하고 암울한 상황에서 자라난 세대는 소위 MPB 라고 불리는 브라질 대중음악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게 된다. MPB는 ‘Musica Populeira Brasileira’의 약자로 ‘브라질의 대중음악’이라는 뜻이지만, 세계 각국의 대중음악들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일 정도로 브라질만의 색깔을 담고 발전해 왔다. 따라서 원래의 뜻 이상으로 세계 음악 애호가들에게 각별한 의미를 전해 준다. 보사노바의 황금기는 이미 오랜 시간 속으로 묻혀 갔 지만, MPB로 불리는 브라질만의 특별한 대중음악 속 많은 곳에 그 흔적들을 남기고 있다. 또한 가장 브라질다운 음악의 중요한 자양분임에 분명한 보사노바의 리듬은 재즈와 팝, 또 우리나라의 가요 속에서도 끊임없이 등장하며 그야말로 ‘유통 기한 무한대 의 음악’으로 사랑받고 있다. 황윤기 - 국악방송 <황윤기의 세계음악 여행> 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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