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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북성포구로 가는 길 본문

인천이야기

북성포구로 가는 길

김현관- 그루터기 2025. 7. 7. 22:03

북성포구로 가는 길
양진채 단편소설 「패루 위의 고래」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다'에 기대어 꼭 하고 싶은 얘기, 이곳을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은 데가 있다. 북성포구가 그곳이다. 이번 경우는 소설이 먼저가 아니라 지명인 북성포구가 이 소설을 끌어왔다고 해야 하겠다. 북성포구 얘기를 하고 싶은데 아무리 찾아봐도 적당한 소설을 찾기 어려워 내가 쓴 「패루 위의 고래'를 읽을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을 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려 한다.

* 『푸른 유리 심장』(문학과지성사, 2012)에 실린 패루 위의 고래를 대상 텍스트로 삼았다.

북성포구는 개발 논의로 뜨겁다.** 해양수산부가 북성포구를 7만 평가량 매립하겠다는 안을 내놓으면서부터다. 해수부는 북성포구 주변의 악취, 오폐수 등에 따른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주민 청원을 명분으로 매립 사업을 발표했다. 하지만 북성포구를 매립한다고 해서 주민의 숙원인 악취나 오폐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주민의 숙원은 해결하지 못한 채 개발을 앞세워 우선 매립하고 보자는 계획이니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북성포구는 개항기 문물이 드나들던 곳이었다. 현덕의 단편 소설 「남생이」의 첫 줄에 나오는 "호두형으로 조그만 항구 한 끝을 향해 머리를 들고 앉은" 포구가 있었던 곳이 바로 북성포구 주변이다.

그동안 인천은 '매립의 역사'를 써왔다. 갯벌 위에 빌딩과 아파트를 지었고, 공장을 지었고, 인구 300만 경축포를 쏘아 올렸다. 그러는 사이, 항구 도시 인천은 점점 사라져 도심 근처에서 바닷물을 만져볼 수 있는 곳이 거의 남지 않았다.

인천은 작년부터 올해까지 역점 사업으로 인천가치재창조를 걸고 인천의 역사 및 문화유산, 인천의 자연환경 분야 등 인천만의 고유한 가치를 찾겠다고 한다. 하지만 인천시 관계자부터

**이 글이 인터넷 신문 "인천in』에 연재된 시기는 2017년 1월이다. 당시 북성포구 7만 평을 매립하려는 해수부 등에 맞서 북성포구 살리기 시민모임이 꾸려져 북성포구 매립을 막아보려 했으나 현재는 횟집 있는 쪽만 제외하고 매립이 거의 끝난 상태이다..

북성포구의 역사는 물론, 북성포구의 존재조차 모르는 실정이다. 나 역시 북성포구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인천에 이런 곳이 숨어 있었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놀랐다. 그 경이로움은 포구를 찾아들어가는 길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패루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인천-인용자)역 뒷길로 접어들었다. 녹슨 철길이 여러 갈래로 길게 엉켜 있었다. 억센 풀들이 그악스럽게 침목 사이로 뿌리를 뻗었다. 그 옆 고가 위로 드물게 차가 달렸다. 고가 아래로는 곡물이나 사료 포대를 실은 대형 화물 트럭들이 수십 대 서 있었다. 녹색 방수 천막으로 짐을 덮어 놓은 차량 옆에 고딕체로 쓰인 '곡물 수송'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비둘기들이 옥수수 알갱이가 떨어진 포도에 부리를 박았다. 비닐 천막 끝을 쪼기도 했다. 어디선가 구워구워 비둘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화물 트럭들은 길 가득 정차되어 있었다. 왼쪽으로는 대부분 사료 공장들이었다. 밀가루 공장도 보였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흙먼지가 날렸다. 공장 입구에는 하나같이 '방문객 경비실 경유'라는 팻말이 달려 있었다. (221쪽)

길이 좁아지고 낮은 슬레이트집이 몇 채 보였다. 유리문의 색 바랜 선팅지에는 바지락칼국수니 주꾸미볶음이니 하는 메뉴가 간판 대신 붙어 있었다. 어두운 가게 한 귀퉁이에 포개 놓인 둥근 플라스틱 의자에는 먼지가 소복했다. 골목 입구, 게와 새우, 조개 등을 함지박에 담아 파는 곳에 몇 사람이 기웃거렸다. 바람이 불었고 바다 냄새가 났다. 그래도 포구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 가게를 왼쪽에 끼고 울타리와 높은 담장이 쳐진 골목 안으로 하나둘 사라졌다. 

그가 성큼 골목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왼쪽은 공장 시설물을 막기 위한 마름모꼴 철망이, 오른쪽엔 회백색 담이 있었다. 둘이 걷기에도 좁은 골목이라 그가 앞서 걸었다. 두 차례 꺾어 들자 막다른 골목 끝에 난데없이 포구가 드러났다. 포구가 있긴 있었다. 작은 포구였다. 생선을 파는 열 평 남짓한 횟집이 여남은 개 늘어선 왼편과 달리 오른편은 바로 바다 곁이었다. 포구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작은 곳이었다. (222~223쪽)

이 소설을 발표하던 때로부터 10년이 더 지났다. 오른편 바다였던 곳에도 한쪽 다리는 난간에, 한쪽 다리는 갯벌 깊숙이 박은 무허가 횟집들이 들어선 지 오래다. 골목으로 접어들고 난데없이 드러나던 포구는 대부분 매립되고 포구의 흔적은 얼마 남지 않았다. 내년쯤이면 난데없이 포구를 만나는 게 아니라 주차장이나 회센터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가는 길도 지금은 더 쉬워져, 차로도 대한제분 공장 담을 따라 북성포구를 찾아들 수 있다. 북성포구가 7만 평이 매립되긴해도 십자수로에서 배를 대는 곳까지는 남아 있다. 매립된 곳으로 인해 경치가 많이 바뀌긴 하겠지만. 어느 길로 가든 이왕이면 인터넷으로 물때를 미리 확인하고 가면 좋다. 물이 가득 차는 만조 시간에서 서너 시간 앞당겨 가면 북성포구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 펼쳐진다.

배가 들어온다! 누군가 외쳤다. 배가 들어오다니. 이제 겨우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어디로 배가 들어온단 말이지? 그런데 놀랍게도 왼편 끝에서 목선 앞머리가 보였다. 배는 흘러드는 물길을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떠 있기도 어려울 것 같아 보이는 바닷물 길을 따라 배는 천천히 헤엄치듯 포구를 향해 다가왔다. 몇 척의 배가 뒤따라 들어왔다. 배를 따라 한 떼의 갈매기들이 포구 주변을 어지럽게 맴돌았다. 배가 석축 앞으로 다가와 보폭 넓이의 널빤지를 석축에 갖다 댔다. 따로 배를 대는 시설이 있는 게 아니라 물이 끝나는 석축 앞에 배를 대고, 널빤지로 배와 석축 사이를 이었다. 사람들이 널빤지를 밟고 걸어가 배에 내려섰다. 물이 가득 찬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만 보았던 나는 개흙 사이의 좁은 골을 따라 배가 들어오는 광경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배가 들어오는 작은 물길을 골씨라고 부른다고 알려주었다. (223~224쪽)

포구로 들어온 배는 일곱 척이었다. 꽃게, 갑오징어, 병어, 젓갈용 멸치 등을 갑판 한가운데 펼쳐놓고 그 자리에서 팔았다. 그를 따라 흔들리는 널빤지를 밟고 올라섰다. 난데없이 나타난 포구이기는 했지만 골씨를 따라 배가 들어오는 광경, 싱싱한 생물을 배에서 바로 흥정해서 사는 모습 등을 구경하는 동안 못마땅한 마음이 사라졌다. 



 싱싱한 갑오징어나 꽃게, 낙지 등은 산 채로 함지박 안에 담겨 있었다. 배가 나란히 붙어 있어 건너다니며 구경할 수도 있었다. 값도 그날 들어온 배와 사러 온 사람들의 수에 따라 결 정되고, 배가 막 들어왔을 때와 시간이 지난 후의 값이 또 다르다고 했다. 이 배 저 배를 건너 다니며 물건을 보고 값을 묻던 사람들이 하나둘 검은 비닐봉지에 무언가를 사 들고 뱃전을 나섰다. 병어를 잔뜩 사던 아주머니가 50년 가까이 이 도시에 살았지만 여긴 처음 와본다고 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포구이긴 한 모양이었다. 문득 똥바다요? 하던 아저씨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이 동네의 바다가 똥바다로 불렸다는 걸 아는 사람 정도는 돼야 이 포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224~225쪽)

이 광경을 보기 전까지 모든 배는 출렁이는 바다 위로만 다니는 줄 알았다. 개흙 사이의 좁은 골, 그러니까 골씨를 따라 들어오는 물 위로 배가 들어오는 걸 직접 보지 않으면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배가 들어오면 들어온 배들끼리 서로 옆구리를 맞댄다. 선상 파시라고 배 위에서 갓 잡아 온 싱싱한 해산물을 사고팔 수 있는 장이 펼쳐지는 것이다. 배가 들어와 포구에 자리를 잡으면 사람들은 그 배에 올라가 배를 건너다니며 그때그때 잡아 온 생선이나 생새우, 꽃게 등을 살 수 있다. 우리나라 어디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북성포구의 두 번째 묘미가 여기에 있다.

북성포구의 오폐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화 시설을 만들고, 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냄새를 규제한 다음, 선상 파시를 적극적으로 살려내고 홍보한다면 새로운 곳을 찾아 언제든지 달려올 준비가 된 수많은 사람들의 감탄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주차장이나 회센터, 혹은 둘레길을 만들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특색 없는 공간으로 조성하지 말고, 갯벌을 살리고, 주변 환경을 개선하고, 배가 들어오고 사람이 찾아들 환경을 만든다면 그것이야말로 북성포구를 살리고 제대로 개발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북성포구를 발견한 뒤로 여러 번 그곳을 찾았다. 일부러 물 배를 확인하고 나서는 경우가 많다. 생새우를, 꽃게를, 병어를 샀다. 운 좋게 사진작가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북성포구의 노을 을 볼 수도 있었다. 사진작가들은 일몰의 붉은 해를 배경으로 갯벌과 물길과 공장의 연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이런 풍경을 어디서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이 바다가 똥바다로 불렸다는 걸 이는 정도는 돼야 이 풍경을 볼 자격이 있지 않을까.

소설 속에는 한때 치열하게 세상의 변혁을 꿈꿨으나 지금은 간이식을 받고 포구를 찾아든 선배와 그를 따라온 '나'가 있다. 그들 앞에 펼쳐진 북성포구의 골씨를 따라 들어온 배, 그 배에서 포구의 난간으로 옮겨진 고래 한 마리가 있다. 고래는 청춘과 함께한 시대가 지나갔으나, 그래도 누군가의 가슴에 아직 살아 있는 꿈의 자취처럼 보인다.

나는 배가 들어왔던 골씨, 아직 물이 빠지지 않아 그 길을 드러내지 않은 물길을 바라보았다. 석축 난간 위 안개에 둘러싸여 있는 고래가 그물에 걸려 죽은 뒤 배에 실린 채 이 작은 골씨를 따라 들어온 게 아니라 고래가 골씨를 따라 헤엄쳐 이름 없는 포구를 찾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준설선이 메워지는 골씨의 개흙을 퍼내고 그 길을 따라 고래가 들어온다. 고래도 이 포구로 들어오는 골목 어귀쯤에서 '똥바다' 암호를 댔을지도 모른다.(240쪽)

그래서 고래가 그물에 걸려 북성포구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니라, 골씨를 따라 헤엄쳐 온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와 나는 얽힌 선로와 사료나 곡물을 실은 트럭 사이를 걸어 역으로 왔다. 그러고 보니 포구에서 멀지 않은 곳인데 역 근처에는 안개가 끼어 있지 않았다. 그의 머리에 하얗게 안개비가 얹혀 있었다. 포구를 다녀온 징표 같아 보였다. 물기를 털어주었다. 내 머리도 쓸었다.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었다. (242쪽)

나는 우리가 찾아들던 골목이 어디쯤인지 가늠해보았다. 그 너머의 작은 포구와 그 포구 난간에서 안개비를 맞고 있을 고래도 떠 올렸다. 바닷물이 들기 시작하면 골씨를 따라 힘겹게 헤엄쳐 오는 고래가 보일 것도 같았다. (243쪽)

울적한 심사가 될 때, 붉은 노을보다 더 짙은 울음을 삼키고 싶을 때, 지치고 힘들어 어딘가에 말없이 기대고 싶을 때, 북 성포구는 쓸쓸하고 황량한 모습을 한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준다. 그렇게 북성포구는 골씨를 따라 배가 들어오듯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다.

들어오는 배는 많지 않아도 넉넉히 자리를 잡고 그물을 깃는 어부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멀리 보이는 목재 공장이 북성포구임을 증거한다.

 

2015.3월의 북성포구 / 그루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