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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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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초열대야의 밤, 수건을 얼리다

김현관- 그루터기 2025. 7. 12. 01:07

초열대야의 밤, 수건을 얼리다

여름이 되면 우리는 더위를 각자의 방식으로 견뎌낸다. 어떤 이는 시원한 카페에 머무르고, 어떤 이는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가 산책을 나선다. 에어컨 아래서 밤을 지새우거나, 냉장고에서 시원한 수박을 꺼내 먹으며 잠시나마 더위를 잊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 여름밤은 늘 고된 계절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지만, 올해의 여름, 그리고 바로 어제의 밤은 조금 달랐다. 아니, 어쩌면 너무나도 달랐다.

요즘 날씨를 열대야라 부르기엔 부족한 감이 있다. 기온이 밤새 25도를 넘는 열대야는 이제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그런데 30. 자정에도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밤을 겪으며 알게 되었다. 이런 날을 초열대야라고 부른단다. 인천의 경우, 2018년 그 유명했던 폭염의 해에 자정 기온이 30.0도였다고 한다. 그 기록이 전설처럼 남아 있는 줄 알았는데, 바로 오늘, 내 피부가 그것을 직접 증명하고 말았다.

이 무더위를 더욱 괴롭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어제 우리 집의 에어컨이 고장 나 버린 것이다. 당장 수리를 부를까도 했지만, 비용이 너무 만만치 않다 하여 차라리 새로 구입하기로 했다. 문제는 설치까지 며칠이 걸린다는 것. 다음 주 월요일, 그 전까지는 버텨야 한다. 오늘이 금요일이니 앞으로 최소한 삼일 밤을 이 뜨거운 공기 속에서 보내야 하는 셈이다.

저녁 무렵, 친구들과 함께 천냥집에 들렀다. 땀이 줄줄 흐르는 무더위 속에서 대청도에서 공수해 온 매운 우럭탕 한 그릇을 나눠먹으며 더위를 더위로 이겨보자는 웃지 못할 농담도 오갔다. 그래도 함께 밥을 먹는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그나마도 웃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헤어진 시간이 밤 아홉 시쯤 되었는데, 밖을 나서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무심코 휴대전화의 날씨 앱을 보니, 기온이 무려 33. 9시에 33도라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 숫자였다.

그리고 지금. 자정을 넘긴 이 시각. 우리 동네의 기온이 여전히 30도에 머물러 있다. 방 안은 찜통 같고, 선풍기에서 나오는 바람은 더운 공기를 이리저리 휘젓기만 할 뿐이다. 순간순간 땀이 흐르고, 샤워를 해도 몸은 금세 끈적거린다. 창문을 활짝 열어도, 바람 한 점 없다. 마치 고요한 사막 한가운데, 거대한 유리 상자 속에 갇힌 기분이다. , 이건 정말이지 악랄한 날씨다.

끙끙 앓듯 더위에 시달리다 문득 떠오른 궁여지책이 하나 있었다. 물에 적신 수건을 비닐에 싸 냉동실에 넣었다. 완전히 얼려서 아내에게 건네니, “어우, 시원하다며 연신 웃는다. 나도  목덜미에  얹어보니 차가운 기운이 몸을 타고 퍼지며, 이 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고작 수건 한 장이 주는 위안이라니, 참 별것 아닌 것에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여름밤이다.

이럴 때면 생각한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지구는 언제부터 이렇게 달아올랐을까. 기후 변화, 지구 온난화, 북극의 빙하, 미세먼지, 폭우와 가뭄뉴스에서 자주 듣는 말이지만, 오늘처럼 숨이 턱 막히는 더위 속에서는 그 모든 단어들이 현실로 와 닿는다. 지구가 앓고 있는 병을, 우리 모두가 함께 앓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집만의 일이 아니란 걸 알기에, 안쓰러운 마음도 든다. 에어컨이 없는 집, 창문도 열지 못하는 반지하, 냉방비 걱정에 선풍기 하나로 버텨야 하는 이들. 그들의 더위는 얼마나 더 절실할까. 그리고 그것이 단지 불편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과 생존의 문제라는 사실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이런 여름이 계속된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방식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자연을 대하는 태도부터, 일상의 작은 습관 하나하나까지도 말이다. 에어컨을 틀기 전 창문을 먼저 열어 보고, 불필요한 조명을 끄며, 시원한 물 한 컵으로 갈증을 달래는 그런 작은 실천들. 물론, 그 모든 것들이 지금 이 더위를 식혀주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은 내일을 위한 시작이 될 수 있다.

오늘 밤도 잠들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얼음 수건 하나 덕분에 조금은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아침이 오면,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을 낼 것이다. 이 악랄한 날씨 속에서도 나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안해낸 조그만 지혜가, 어쩌면 올여름의 기억 속에서 따뜻한 웃음이 되어 남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무더워도, 결국 계절은 지나간다. 그 더위 속에서도 우리는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걱정하며 살아간다. 그게 삶이다. 뜨거운 여름이 내게 준 깨달음은 어쩌면 그것일지도 모르겠다.  2025.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