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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중구를 사랑하는 사람들
- fork. male vocal. 75 bpm.piano. cello. lyrical. lively.
- piano
- 양파즙#도리지배즙#배도라지청#의약용파스#완정역#호경형
- male base vocal
- lost in love "잃어버린 사랑" - 에어서플라이 (air supply)#신포동#ai가사
- blues&jazz
- 1mm 치과
- new trot. male vocal. 60bpm. piano. cello. orchestra. lyrical. languid.
- 동인천역 가새표#남수#보코#친구들
- 익숙해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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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바#상윤네집#진열이#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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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le vo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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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tem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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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의 깊이가 다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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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도화동 성가대의 추억 본문
도화동 성가대의 추억
청년시절! 오랜 지병으로 고생하다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남기신 유지를 받들고자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다. 신규자 교리를 배우던 중 매년 개최하던 "Y.C.S." 주관의 "마돈나 율리제"에서 뛰어난 가창력을 보인 한 여학생에 반해 남학생의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성가대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불과 4년여 밖에 활동하지는 않았으나, 삼십 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 곳으로 그곳에서 만난 여러 선배들 그리고 친구들과 지금까지 교우하고 있다.
성가대 생활은 그간 살아오며 느껴오던 희로애락의 많은 부분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남으로서의 책무와 살아오는 동안의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을, 신앙의 힘과 선배들과의 형제애로 아우르며 해결해 나가는 지대한 역할을 해 주었다.
어느 본당이든 대동소이하겠지만, 도화동은 선 후배 간의 자리매김이 참으로 끈끈하며 엄격했다. Y.C.S. 시절! 바로 한 해위의 선배 또래가 유난히 많았고, 규율 잡기에 매우 엄격하여, 그런 부분이 싫었던 나는 기수를 염두에 두지 않던 성가대로 가입한 덕에 지금의 Y.C.S. 에서는 내 존재를 모르는 후배들이 대부분이다. 이제와 생각하니 관계의 소중함을 내친 나의 우매함이 후회된다. 나이가 같지만 한 해 선배라며 지금까지도 못난 내게 형님이라 깍듯이 대하는 장 정석 군에게 이 글을 빌어 진심 어린 고마움을 전한다.
돌아보니 그 시절을 반추할 만한 추억거리가 많기도 하다. 70년대 후반 부천 계수리의 "샤르트르 성 바오로 수도원"에 피정을 다녀왔다. 특유의 고즈넉함과 어우러진 수도원 건물들과 주변의 풍치들은 그대로 마음의 평정을 얻는데 더 이상의 장소가 없을듯한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다. 늦은 밤 자유시간을 맞아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흐드러진 밤하늘 별들의 잔치를 보며, 박카스병에 몰래 싸가지고 온 진달래주 한 잔씩에 서로의 뜻을 함께하던 일탈의 향유가 새삼 그립다.
그해 겨울 "도창리 저수지"에서의 동계캠핑 역시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늦게 합류할 수 밖에 없던 사정으로 "신천리" 에서부터 "도창리 저수지"까지 두 시간여 동안 눈으로 뒤덮인 신작로를 걸으며 새삼 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며 함께 노래하던 곰 선배와 나의 점점이 찍힌 발자국들.. 술에 취해 난로 연통을 부둥켜 안아 시뻘겋게 얼굴울 데어 아침에 머쓱해하던 L군의 모습! 얼어붙은 저수지 위에서 카운트를 세며 새해를 맞이하던 단원들의 상기된 표정과, 넓은 도창리 저수지에 불어 치던 날카로운 겨울바람의 울림을 가슴에 보듬고 벅찬 감동을 노래 부르던 아름다운 청춘의 모습들이 그리워진다.
발표회의 연습과 송별식을 핑계 삼아 소래의 을씨년스럽고 황량한 폐 염전터로 몰려가 밤새도록 술 마시며 미사곡과 발표곡들을 목청이 터져라 불러제낄제, 한 구석에서는 며칠 뒤 군에 입대하는 친구의 벌겋게 충혈된 눈자위를 연민의 가슴으로 바라보던 그 시절! 또 하나 청춘의 그림자가 숨어있다.
석바위 수도사 주변으로부터 시청에 이르는 길에는 수많은 과수원들이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에는 혼배미사를 바치고 나면, 성가대에 몇 푼씩 손에 쥐어주었다. 보통 점심을 먹지만 제 철 과일이 나오는 시기에는 석바위로 향하는 발길이 분주해진다. 호구포 방면으로 향하는 시내버스 안에서 서로 간의 재치 넘치는 말솜씨로 버스 안은 그칠 줄 모르는 웃음의 전주곡이 펼쳐진다.
이윽고 과수원에 도착해 좌판 벌이고 앉아 시작하던 "가라사대" 게임으로, 동석형은 내 살아온 생에서 가장 유쾌하게 웃는 순간들을 마련해 주었다. 신의 경지에 이른듯한 형의 기지에 찬 놀라운 언어의 구사는 그 이후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이제 그 멋진 언어의 유희를 들을 수 없음이 너무나도 안타까울 뿐이다.
도화동 본당 출신 인사들의 술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지금이야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마시는 사람들이 거의 없겠지만, 몇몇 선배들의 술자리에서의 기담은 들으면 재미있고, 진면목을 확인하고 나면 악 소리 나게 무서워지는 면이 있다. 예전에는 매년 여름이면 인천 앞바다의 "이작도"로 캠핑을 다녀왔다. 보통 이삼십 명이 3박 4일 예정으로 떠나니 장비도 만만찮은데, 트럭 적재함의 3분의 1이 장비라면, 나머지 빈 공간이 전부 술로 채워지니 캠핑의 즐거움을 위한 술이 아니라, 술 마시기를 빙자한 캠핑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나마도 마지막 날 밤이 되면 그 많던 술마저 떨어지고, 결국 막내인 내가 배터에 있는 가게로 술을 사러 홀로 왕복 10리 길 부아산 산고개를 넘는 개고생을 감수해야만 한다.
술 얘기에는 "대지기 주점"을 빼놓을 수 없다. 본당에서 제물포 뒷 역으로 내려가는 길 중간쯤 자리 잡고 있던 "대지기 주점"은 단원들의 포근한 쉼터이며, 젊음을 읊조릴 수 있는 성가대의 사랑방이었다. 삐걱이는 미닫이문 손잡이에 그 시절 사람들의 삶이 묻어있고, 좁고 기다란 널빤지 의자의 딱딱함까지도 젊음의 응어리를 감싸 안는 곳이다. 두부김치찌개와 막걸리를 앞에 놓고 선배들의 따끔한 충고와 함께 호탕한 즐거움을 마시던 곳! 그곳의 체취는 아직도 내 삶의 한 구석에서 꿈틀대며 살아있다.
"도화동 성가대"는 별명을 가진 분이 꽤 많은 편이다. 나와 교우가 이루어진 선배 중 최연장자인 "명수" 형님은 테너의 고전으로 "제비"를 아주 유려하게 부르곤 했다. 오랜 지휘자 생활을 하셨고 얼굴이 길고 하관이 날렵하다고 "말"선배라 불렸다, "국진" 형님은 드라마틱 테너의 전형으로 "황태자의 첫사랑"중에서 "드링크 송"을 정말 맛깔스럽게 부른다. 평소 소담스러운 식성으로 인해 "꿀꿀이"라는 별명을 차지했다.
돌아가신 "동석" 형은 베이스가 잘 어울리는 목소리에다 얼굴에 점이 있어 "얼룩송아지"라고 불렀으며, 비슷하게 "점바기"라 불리던 호경형은 기름진 목소리가 너무도 매력적인 테너이다. 창우형은 우람한 체격과 검붉은 얼굴로 인해 선배들에게 "곰통"이라 불리지만 나는 후배 된 처지라 남우세스럽기도 해서 그냥 "곰 선배"나 형이라 부른다. 항용 미련한 게 곰이라 하지만, "곰 선배"는 그런 통념을 훌쩍 뛰어넘는 아주 많은 자질과 넉넉한 심성을 지니고 있다.
곱슬머리의 석현 형님은 매우 칼칼한 해병대 출신으로 머리 모양을 빗대어 "쌀밥"이라 하고, 그 여동생 "희영" 누나는 똑 떨어지는 성격으로 인해 " 얌체"라는 별로 안 좋은 별명을 갖고 있다. 그래서 별로 불리지는 않는 별명인데, 석현 형 또래들이 간혹 놀리느라 부르곤 한다.
학창 시절과 항공사 재직 시절! 엘리트로 지내며 멋쟁이의 진면목을 보이고 지금까지도 신사로서의 품위를 지닌 별명이 없는 동구형은 동석형의 뒤를 이은 나의 멘토이다 늘 웃음을 주며 성가대 살림살이를 맡아하느라 어쩔 수 없이 말을 많이 하게 되어 억울하게 " 수다 "라는 별명이 붙어 버린 영란 누나는 지금도 쾌활하게 어디선가 수다를 떨고 있을게다.
어느 날 삼박자 게임에서 땅 밑에 사는 동물 이름을 잘 못 불러 그대로 별명이 되어버린 " 배추 꼬랑지" 경자 누님! 입술을 썰어 놓으면, 한 접시는 족히 될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권채 형님의 별명은 " 한사라" 누군지 참으로 절묘하게 같다 붙인 "졸려"라는 별명을 획득한 승복 형님의 눈을 보고 있으면 나도 하품이 난다. 남다른 음악적 재능으로 가장 근사한 별명을 차지한 "오짜르트" 상태 선배는 2회 정기 발표회에서 나와 함께 " If I dld'nt have a dime"이란 팝송 듀엣으로 멋진 화음을 맞춰 본 적이 있다.
소프라노로써 비브라토 높낮이의 폭이 매우 크던 이 루시아 수녀님과 바티칸에 계신 함 수녀님! 별명이 없어 그냥 영세명으로 부르던 오 마리아 누님은 육십을 바라보는 지금도 단아한 자태를 고고가 유지하고 있다. 반주자로서 항상 자애로운 미소를 짓던 우리의 호프 종애 누나와 , 처녀시절 대단한 미모를 자랑하던 은남 누나! 그리고 꽃 속에 파묻혀 중년의 후반부를 아름답게 보내고 있는 안나 누나와 수선화를 부르던 율리안나! 정말 친동기 같은 현신 누나! 미사곡 "천상의 양식"을 천상의 목소리로 울려주던 윤애 누님 와, 엄청난 파워를 자랑하던 소프라노 정인 누님!
인형 같은 아름다움의 정애 누님! , 성가 연습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동반자이던 정모니카와, 겨울방학 때 패널 장사할 수 있게 장소를 쾌히 내주던 순옥 누나! 루시아 수녀님의 의동생 정아 누나! 결혼 후 한 번도 못 본 유일한 여자 친구 지 선희! 그리고 한 살 밑의 예쁜 여동생 혜주와 서글서글한 순호는 언제까지나 내 동생들이다. 이 들 모두 모두가 만나면 옛이야기 한 자락씩 함께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좋은 삶의 동반자들이다.
이제 짧지만은 않은 내 인생에서 추억의 많은 부분을 함께한 선배님들이 인천을 떠나 타지에 생활기반을 잡은 터라,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는 못하고 그저 경조사 때나 잠깐씩 만나 회포를 풀고 돌아서는 아쉬움이 점점 더하다. 한해 한해 지날수록 영롱한 총기와 하늘을 울리던 맑은 목소리들은 세월이 녹아들어 연륜을 자랑할지는 몰라도 서서히 그 빛을 잃고 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그래서 더욱 젊은 시절 성가의 울림을 함께 공유하셨던 영원한 우리의 지휘자이신 "강 충희"-빌리보 선생님과 나의 정신적 지주였던 유 동석- 바오로" 형님의 빈자리가 새삼 그리워지고 애닯다. 사람은 언제 가는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것을 알면서도 함께 할 공간의 자리가 뜨악할수록 그리움도 옅어지는 지금의 처지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돌아오는 토요일은 온양에서 민정누나의 따님 혼인식이 있다. 이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만큼은 또 다른 추억을 찾으러 온양으로 향하고자 하는 내 마음속 한 자락에 벌써부터 환한 그리움이 가득 차 있다. 도화동에서 맺어진 인연의 수레바퀴가 남기는 긴 여운이다. 밤부터 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2009 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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