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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현관의 당구 이야기 본문
김 현관의 당구 이야기
요즈음 당구를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 케이블 tv에서 캐럼(3쿠션, 4구)그리고 포켓-볼과 예술구 경기에 대한 중계를 전에 없이 많이 편성하여 보여주는 덕분에 마니아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거기다가 한국 당구의 산증인이며 명실공히 이론과 실전의 최고 실력을 갖춘 양 귀문 씨 같은 분이 체계적인 당구교실을 열어 후진을 양성함을 단초로 전국적으로 당구 아카데미가 활성화되면서 그동안 어려움을 겪던 수많은 중소형 당구클럽들이 기사회생하여 전국적으로 당구 동호인들의 열기가 가득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당구에 관한 경기를 텔레비전 방송으로 보는 것은 언감생심이었고 소수의 당구 동호인들만이 회원제로 운영하는 카페에서 동영상을 볼 수 있었는데 설혹 볼 수 있다 하더라도 지방 방송국에서 오래전 개최했던 방송분과 외국인들이 경기하는 녹화장면들 밖에 볼 수 없던 것에 비하면 방송의 질과 양에서 비교할 수 없는 격세지감을 느낀다.
지금처럼 세계선수권대회까지 개최하면서 유명선수들을 초청해 경기를 치루는 것을 보면 한국 당구는 비약적인 성장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캐럼 3쿠션 부문에서 김 경률 선수와 같은 세계 상위 랭커도 있고 비슷한 실력을 가진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두터운 선수층을 형성하고 프랑스 당구계의 전설 맛세이나 세계 최정상을 다투고 있는 스웨덴의 브롬달, 네덜란드의 야스퍼스나 스페인의 산체스, 터키의 세이기너와 벨기에의 쿠드롱과 같은 엄청난 선수들과 일진일퇴의 자웅을 겨루고 있으니 실로 대단하다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선수 이 상천씨를 기리며 발족한 "상리 인터내셔널 선수권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함을 계기로 한국 당구의 수준을 향상하면서 동호인들의 관심을 전폭적으로 받고 있음이 근간이 되고 있다. 이제는 세계대회의 참석뿐만 아니라 평시에도 각 시도 당구 연맹 회장기 쟁탈 대회가 수시로 전국 각지에서 개최되는 관계로 선수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3쿠션 경기뿐만이 아니라 여자 포켓볼 경기 부문에서는 세계적인 쟈넷-리 선수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검은 독거미라는 별명답게 거의 모든 대회에서 특유의 타이트한 검은 선수복을 입고 경기를 임하는데 볼 하나하나를 쏘아보는 표독스러운 눈길이 상대 선수의 기를 압도하는 기운을 품고 있다. 그러나 상금이나 랭킹과 관계없는 부담 없는 경기에서는 천진스러운 장난기로 좌중에 웃음을 주는 넉넉함과 함께 이웃집 누나와 같은 푸근한 모습까지 보여준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여자 포켓볼 대표로 뽑히며 아름답고 청순한 외모로 인해 수많은 당구 동호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혜성같이 등장한 차 유람 선수와 이미 세계를 휘어잡은 바 있는 인천 출신의 세계랭커 김 가영 선수와 함께 한국 포켓볼의 중흥을 이끌고 있다. 이들은 여자 포켓볼 부문에서 세계 최상위권에 포진해 있으니 가히 대한민국에 당구가 전래된 이래로 가장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수준에 이르고 있지 않나 싶다.
러시아정부에서 파견한 조선 탐험대의 대장이던 육군 대령 V.P. 카르네프 일행은 조선의 방방곡곡을 여행하며 자신들이 조사하고 관찰한 내용들을 상세히 기술하였으며 이후 1958년 모스크바에 있는 동방문화 출판사에서 간행한 “동방 순례 시리즈”에 게재되었다. 책에는 당구장의 존재에 관한 내용을 기술하였는데 돌아가신 조 동성 선생께서 전파한 1910년 순종 전래설보다 10여 년인 1895년에 이미 조선에 당구장이 있다고 전한다.
"카르네프" 대령은 여행중1895년 서울의 "러시아 영사관에서 머문 적이 있었는데 전임 공사인 K.I. 베베르 공사가 지은 러시아공사관의 부속건물인 '정동 구락부"에 독서실과 당구장이 있다고 묘사하였다. (별첨1:내가 본 조선,조선인) 대령은 당시 러시아 제국 공사인 "슈페이르"공사와 1896년 2월 11일 고종의 아관파천 계획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이 책의 내용의 신빙성으로 보아 우리나라에 당구가 처음 전래된 시기는 "정동 구락부"가 지어진 1895년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선인이 당구를 즐겼다는 기록은 아직 찾지 못하였으니 1910년 순종 왕 때 창덕궁에 일본인을 통해서 당구대 2대가 설치된 시점부터 국내 최초의 당구 동호인은 조선왕조의 마지막 임금인 순종을 꼽을 수 있다. 순종의 시합 대상자는 대사들보다는 주로 경찰서장 등 일본 고관들이며 외국의 유명한 당구 애호가가 내한하면 반드시 접견을 했다는 기록도 나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당구장은 서민들이 접할 기회가 전혀 없었던 1910년대 중반에(별첨2) 남대문시장 입구에 일본인 당구장인 "경성구락부"로 볼 수 있는데 당구대 5대를 설치하여 총독부 관리들의 전용구장으로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주로 귀족 등 특수계층과 부자와 일본 유학생 등 상류사회의 인사들이 주로 이용하였고 이용요금도 만만치 않아 일반인들이 즐기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나 당구 장수의 증가와 함께 이를 이용하며 즐기는 이들도 서서히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6.25 전쟁으로 잠시 주춤하던 시절이 있었고 이후부터는 내기 당구가 성행하여 자유당 말기에는 깡패들이 당구장을 장악하며 내기 당구를 종용하고 당구장 보호비 명목으로 금품을 강탈하는 일이 생겨 최근까지 당구장이 깡패들의 집합지로서의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한국 당구사의 불행한 시기가 있었다. 5.16 혁명으로 깡패들 소탕작전을 벌인 이후 깡패들의 당구장 출입은 많이 사라지고 이후부터 당구계도 자정 노력을 계속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당구는 이제 더 이상 오락이나 사행성 종목이 아닌 스포츠로서의 위상을 지니고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수많은 동호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종목이다. 하지만 아직도 다른 스포츠종목의 전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가일층 분발해야 할 점이 남아있다. 본보기로 삼아야 할 두 종목이 있는데 그 종목은 탁구와 볼링이다. 탁구를 보면 이 에리사와 정 현숙 선수의 사라예보의 승전으로 전국에 무수히 많은 탁구장이 생기고 동호인들이 넘쳐나던 시절이 있었으며, 볼링도 역시 한 순간 전국을 강타하며 많은 동호회가 생기며 춘추전국 시절의 호가호위를 누리던 시절이 있었으나 모두가 한 풀 꺾인 상태이며 지금은 선수들과 일부 동호인들만 즐기는 스포츠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서두에 기술한 바와 같이 당구가 요즈음처럼 활성화된 것은 당구인들의 지난한 노력도 있겠지만 일등공신은 방송매체라 할 수밖에 없다.방송 매체에서의 지속적인 경기 모습의 노출이 일반인들의 관심으로 이어졌으며 그동안 당구를 멀리했던 동호인들까지 다시금 당구클럽으로 발길을 돌리게 한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보아야겠다.
결국 지금과 같이 당구가 사랑을 받으려면 지속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동호인을 비롯하여 일반인들의 당구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고 당구의 질적향상을 꾀하려면 방송이 요구하는 속성을 파악하고 난이도 기술의 개발도 필요하지만 당구만의 화려한 예술적인 개인기를 발휘할 수 있는 부분과 연예인 당구대회와 같은 흥미위주의 쇼적인 요소도 개발하여 제공할 줄 아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모든 스포츠가 그럴듯이 당구 역시 사람의 가장 근본적인 심신의 안정적인 자세를 중요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실함과 미세함을 요구하면서 높은 정신력과 창의적인 두뇌를 필요로 하는 지적인 경기이기도 하다. 당구를 사랑하는 이 나라의 모든 분들은 완전한 원형의 당구공과 일직선으로 쭉 뻗은 큐의 완벽함을 일상의 지표로 삼아 흐트러짐 없는 올곧은 마음과 꿋꿋한 자세로 오늘도 당구장을 찾아 경쾌한 당구알 소리를 들으며 시원하게 하루를 마무리해보자 평범함의 즐거움이다...
2009. 8.30 - 그루터기 김 현관 -
키르네프일행이 쓴 조선실태 보고서의 번역본 가야넷출판 내가 본 조선,조선인 82P 주석 59)
# "이 건물뒤에는.. 울타리 왼편에는 독서실과 당구장이 있는 외교관클럽이 정면에 있었다."
# 주석 59 - 정동구락부를 말한다.조선후기 정동의 공관가에서 구미인들을 중심으로 한 사교모임으로서
1894년 설립되었으며 배일성향을 띠고 있었다.
키르네프일행은 1895년12월부터 1896년1월까지 러시아의 명령으로 한국을 방문하여 당시 조선의 전반적인 실태에 대한 보고서를작성하였다. 이후 보고서의 전반적인 내용이 1958년 모스크바의 출판사에서 발간한 동방순례시리즈에 게재되었다.
별첨1 - 자료출처- 한국사데이터베이스 1918,1.17조간 3면 부산일보
1918년 1월 경성구락부에서 당구경기가 열린다는 기사가 게재된 것으로 보아 이미 1917년 이전부터 경성구락부에서 당구를 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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