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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t Baker - Songs For Lovers 본문

음악이야기/재즈

Chet Baker - Songs For Lovers

김현관- 그루터기 2023. 1. 12. 23:49

youtu.be/7lXsMRb5eiM

 

슬픔의 미학
Chet Baker - Songs For Lovers


억제되었기에 더욱 뜨겁게 분출되는 슬픔..
이것이 바로 쳇 베이커 음악의 미학입니다..
느릿하지만 결코 듣는 이들을 편안하게 내버려두지 않는..
누군가의 감상 표현처럼 읊조리는듯한 그의 중성적 보이스는 재즈사에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그만의 독보적인 영역이었습니다..

 

슬픔의 미학 쳇 베이커

젊은 시절 어느 누구도 누리지 못한 영광을 누리다 마약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1988년 투신자살로 굴곡 많았던 삶을 마감했던 쳇 베이커. 그의 불행했던 삶의 전편은 1989년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필름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바 있는 'Let's Get Lost'란 영화로 기록되어 있다. 이 영화는 쳇 베이커가 극단적으로 누려 온 삶과 그림자를 그대로 옮기고 있으며, 그의 음악가적 가치와 인간적 면모를 조망하고 있다.

쳇 베이커는 팝스타들의 것만으로 여겨졌던 폭발적인 환호와 열광적인 흠모를 대중들로부터 받은 아이돌스타였다. 많은 재즈 아티스트들이 누려온 사랑과 존경은 그들의 출중한 연주와 음악가로서의 가치로 향한 찬사였지만, 쳇 베이커의 경우는 확실히 달랐다. 그의 인기는 음악 외적인 요소에서 기인한 바 컸는데, 그중에서도 깔끔한 용모에서 풍겨나오는 단정한 미소년의 이미지가 그 첫 번째 요인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수려한 외모와 제임스 딘의 우수 어린 눈빛을 함께 보유한(쳇 베이커는 재즈게의 제임스 딘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의 매력은 청춘 스타로 부상하는데 충분 조건을 마련하고 있었다.

1929년 오클라호마에서 태어난 쳇 베이커는 군악대에서 재즈를 익힌 다음, 찰리 파커의 사이드 맨으로 출발하여, 웨스트코스트 재즈의 거장 제리 멀리건의 피아노리스 쿼텟에 참여하면서부터 재즈 씬의 조명을 한 몸에 받았다. 준수한 용모와 연민을 자아내는 여린 감성이 그의 음악과 결합되면서 그는 당대 최고의 스타로 부각되었다. 또한 그의 인기는 영화로 연결되어 그의 트레이드 송이 영화의 제목으로 부여된 'My Funny Valentine'이란 영화도 흥행에 성공하게 되며, 그후 그는 곧잘 영화에서도 모습을 보이고, 곧잘 비교되던 제임스 딘의 사망 이후 그의 주가는 끝없이 상승하였다.

그러나 화려했던 50년대가 저물고 거침없이 보이던 쳇의 앞날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그의 불행은 철저히 마약에서 비롯되었다. 이전부터 재즈와 마약은 떼 놓을 수 없는 무익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전도 유망한 쳇 베이커도 마약의 검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59년 이태리 공연 중 마약소지 혐의로 6개월간 투옥된 이래로, 그의 상습적인 마약 복용으로 수시로 체포, 투옥되어 그의 음악은 중단되고 만다. 이후에도 마약, 알코올, 여자에 둘러싸인 무절제한 생활 속에 쳇 베이커는 마약을 구입하기 위해 졸속한 레코딩을 남발하여, 팬들은 그에게로 향한 애정을 지워 버린다. 이제 미국에서 버림받은 쳇은 유럽으로 밀려나고, 심지어는 만취 상태에서 불량배들과 시비가 붙어 트럼페터로는 치명적인. 이빨을 몽땅 잃는 사고까지 겪게 된다. 이로 인해 그는 평생 틀니에 의존하여 트럼펫을 불고 노래를 불러야만 했다. 이렇게 스스로를 파괴하며 좌절의 세월에 허덕이며 60년대에 침묵했던 쳇 베이커의 존재는 세월의 무심함에 묻혀 버리고 어느 누구도 그 화려했던 쳇 베이커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70년대 초, 어느 노쇠한 트럼페터가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그는 지난 10년간 어둠 속에서 습기를 먹으며 연명해 온 쳇 베이커였다. 아무도 그의 재기를 예상하지 못했다. 이제 절정의 나날을 보낼 마흔의 나이였지만 그의 모습은 곧 죽음을 앞둔 노인의 모습이었고, 청아했던 얼굴에는 삶의 주름이 가득 패어 있었다. 더구나 '인생은 공허한 것'이라며 음울하게 읊조리는 보컬과 처량하게 울려 퍼지는 트럼펫은 그가 얼마나 삶에 지쳐있는가를 느끼게 했다. 많은 동료들이 그의 재기를 반기며 도움을 아끼지 않았으며, 쳇은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듯 의욕적인 앨범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이 장미빛 나날도 잠시였다. 쳇 베이커의 젊음을 깍아먹은 마약은 또 다시 악의 이름으로 그를 괴롭혔다.

1980년대 그는 다시 미국을 떠나 유럽의 각국을 전전했고, 때로는 밴드의 개런티를 가로채 마약을 구입하여 주위의 신망을 잃고, 무대에서는 가사와 멜로디를 까먹는 등 그의 음악은 극단적인 위험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렇게 불안한 시간에 버려져 있던 88년 5월 13일. 쳇 베이커는 자신의 불행한 생을 원망하며 이국땅 암스테르담 어느 호텔 옥상에서 투신 자살한다. 그의 피폐한 모습을 접한 이 사건을 부랑아의 자살로 분류하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의 주검이 가족에게 알려지는 것은 신원 조회를 통해서였다. 가장 화려한 영광을 누리다 가장 어두운 아픔을 함께 겪었던 쳇 베이커의 삶의 마침표도 이렇게 서글프게 맺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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