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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야기

엄마와 엄니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1. 29. 18:49

엄마와 엄니

나는 엄마보다 엄니라는 호칭을 쓴다. 나이도 있으니 어머니라고 불러야 하겠지만 그래도 엄마라고 부르기는 민망하여 그냥 엄니라고 부르면서 일상을 꾸려 나가고 있다. 하지만 엄마라는 말을 너무도 일찍 떼어 버렸으니 그 사연이 꽤나 어처구니없다.

예 닐 곱살 무렵의 어느 날, 한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엄마가 없다. 잠시 마실을 가신 듯했지만, 불현듯 눈앞에 항상 보이던 엄마라는 존재가 없다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 어린아이에게는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 허전함을 지나 무서움이 온몸을 지배하며 무의식적으로 문 밖으로 뛰쳐나가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그냥 달렸다. 골목을 빠져나와 신작로를 달리고 다리를 건너 엄마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엄마가 보이질 않는다.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면서 꽤 오랜 시간을 헤매다 풀이 죽어 집에 돌아와 보니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어딜 다녀오냐면서 저녁을 먹으라고 하셨다. 

웃기지도 않는 얘기지만 바로 그날 그 시간부터 어린 가슴에는 왠지 모를 허탈감과 알 수 없는 배반감을 느꼈고, 엄마라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언어를 떼어버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혹자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냐고 하실지 모르나 그 일 이후로 엄마라는 호칭 대신에 "있잖아" 나 아예 호칭을 생략한 채 본론부터 얘기를 하는 의사소통을 하게 되었고, 국민학교엘 들어가서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엄마 대신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어요 와 ~습니다 체로 대화의 끄트머리가 바뀌게 된걸 어쩌란 말이냐?

어머니라는 호칭을 부르던 시기의 우리 집 가세는 형편없었다. 호시절을 잠시 겪기도 하였지만 아버지께서 동업을 하셨다가 상대의 빚까지 떠안는 바람에 재기 불능 상태에 빠져버린 상태에다, 울화병으로 늘 술을 찾는 아버지 덕분에 쪼들리는 살림살이는 차치하더라도 늘 집안 분위기가 살벌했다. 고등학교 입학 무렵에야 자식의 입장을 생각한 아버지께서 가장의 책무를 되새긴 이후부터 다소나마 숨통을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 시기에는 다시 엄마라고 부르며 응석을 부릴 처지도 아니거니와 가정 경제를 책임진 어머니의 손과 발이 잠시도 쉬실 틈이 없어 대화를 할 시간적인 여력도 없었다. 결국 그 시기의 어려움이 스스로 성숙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제공하였고 집안에서의 생활보다는 집 밖으로의 도피가 가장 무난한 방법이었으며 그 장소를 도서관으로 잡은 것은 어린 나이에도 현명한 선택이었다. 

이제는 어머니라는 호칭은 내게 아픔과 고난을 상징하는 단어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어인지는 몰라도 잘 부르지도, 부르고 싶지도 않은 단어이다. 지금은 어머니라는 호칭보다 “엄니”라는 엄마와 어머니를 섞어서 만든 조어를 쓰고 있다. 이 말은 엄마라는 단어에서 느끼는 푸근한 사랑과 애틋함을 비슷하니 느낄 수 있고 어른이 쓰기에도 무난하여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아무래도 엄마보다는 훨씬 그 정감이 덜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엄니”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시점도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대략 아내와 혼인을 하면서 쓰기 시작한 것 같다. 

나는 처제가 셋이고 처남이 둘이다. 육 남매가 대략 두세 살 터울이니 당시에 부모님을 모시고 살던 장인어른께서 당신의 신접살림부터의 부부생활에 어려움이 있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요 당신의 어려움을 큰 자식에게 대물림하기 싫으셔서 장남인 내게 혼인의 조건으로 적어도 일 년을 밖에서 생활한 뒤 본가로 들어가서 살라고 제시하셨고 나의 부모님도 역시 동질감을 느끼셨는지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셨다.

약속대로 일 년뒤 본가로 들어가 생활하였는데 붙임성 있는 아내는 “어머님 어머님” 하는 여우짓으로 어머니의 마음을 사로잡아 집안은 늘 구순하였고 더불어 아들인 나 역시 그 분위기에 휩쓸려 차분은 하지마는 조금은 딱딱한 느낌을 주는 어머니라는 호칭에서 엄니라는 다분히 아부성 짙은 호칭을 쓰게 되었다. 우리 애들은 당연스레 나와 아내에게 엄마와 아빠라고 부른다.나 역시 아이들에게 나 자신을 호칭할 때 아빠가~ 아빠는~ 이라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한다. 아내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의 나는 자의식을 느낀 지 불과 몇 해밖에 불러보지 못한 엄마라는 호칭을 부르고 싶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체면도 따지다 보니 아예 부르지 못할 것 같아도 언젠가 한 번은 불러보고 싶다. 내 아이들이 아내에게 자연스럽게 엄마 하며 부르듯이 엄니에게 엄마라고 꼭 불러보고 싶다. 그러나 이제는 부르고 싶어도 들어줄 사람 없는 아버지라는 호칭이 가슴에 다가와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는 세상의 많은 이들도 느끼는 바이니 새삼스럴 것도 없지마는 당사자 한 사람마다의 애틋함이야 어찌 쉽게 말할 수 있을까! 더 늦기 전에 엄니에게 엄마라고 불러 봐야 만 할 가장 큰 이유다..

“ 엄 - 마 ”..

2010.01.12 11:37

90년 초 제주도에서의 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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