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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야기

40 년만의 해후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1. 29. 19:06

40 년만의 해후

잔잔히 내리던 봄비가 잦아들며 옅은 안개가 수봉산 자락을 포옹하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보내준 "아버지의 눈물"을 읽으며 동년배 소설가의 가슴으로 표현한 아버지상을 아우르는 감정을 느껴본다. 주인공 홍기와 아들과의 연결고리가 나와 내 아들과의 현실과 너무 비슷한 코드로 엮여 있음이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다. 막 책을 덮을 무렵 낯 선 번호의 전화가 왔다.

" 나 중균이다!...."
" 아~ 그래 중균이...."

60년대 살던 답십리에 대해 올려놓은 블로그의 내 글을 보고 코흘리개 시절의 골목 친구가 기나 긴 40년 세월의 공간을 건너뛴 채 연락을 해 왔다. 황망한 기분에 우선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한참을 옛 생각에 잠겨본다.

" 가을바람에 흔들려 눈부시게 빛나는 천변가의 빨래 행렬들 "
" 골목 담벼락의 햇빛 쪼가리"
" 장마철의 청계천에 떠 내려오던 늙은 소의 눈망울 "
" 반짝이는 레일 위에 침 뱉어 올려놓은 녹슨 대못 "
" 김치 국물에 물든 국정 교과서 "
" 전매청 창고 밑의 사기 구슬 꾸러미"
" 세계 소년소녀 문학전집 - 계몽사 전질 50 권, 빨간색 겉표지 "
" 앉은뱅이책상" 그리고 " 어린 나 ".......

어느새 약속 장소인 잠실역 1번 출구 앞에 서서 전화를 거니 저 앞에서 낯 선 중년의 신사가 나를 보며 반갑게 웃는다. 전혀 알아볼 수 없게 변한 모습이지만 가까운 대폿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미 철거되어 없어진 우리들만이 기억하고 있는 답십리의 옛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동안 잃어버리며 살고 있던 추억에 대한 동질감으로, 쉼 없는 긍정의 끄덕임이 반복된다.

술잔이 거듭될수록 40년의 공간은 서서히 스러지고 답십리 동네 꼬마들로 되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추억의 얘기가 아닌 자신이 지나온 세월을 파노라마처럼 얘기하는 친구의 모습에서 문득 마음 한편을 스치는 어색함이 보인다. 이게 추억이 현실이 되어 부딪게 되는 괴리인가 싶지만, 그 또한 서로 다른 생각과 환경에서 지내온 두 친구의 차이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걸 어쩌랴!

수 십 년 떨어져 지내온 서로의 이야기들과 옛 추억을 말하기에 시간은 너무 짧아서 다시 만나길 약속하며 마지막 전철을 타고 돌아오며 세월이 바뀐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으로 두 사람이 연결되어 대도시의 한 자락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경이를 느낀 순간이다.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켜자 방명록에 또 다른 놀라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민 일식 “우연히 네이버에서 내 이름에.. 중략.. 나는 네가 사실 가물가물한데 워낙 오랜 세월이고... 하지만 늘 그리운 시절이라 무작정 반가운 마음에 소식을 묻는다. 답장 가능하면 해주라. 누군지도 궁금하기도 하고.. 하 창용까지 기억하는 걸 보니 아마 같은 반 친구였던 것 같은데. 여기는 대전이다.

공교롭게도 40여 년 만에 국민학교 시절, 고모에게 과외를 받던 얼굴 하얀 시민의원 원장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세상에 이런 일이 겹쳐 일어 수 있다니 …

2010 ‒03 ‒ 03 

중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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