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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인제] 친구들과 겨울바다를 - 매바위와 자작나무숲 -둘째날 본문
매바위와 자작나무숲 -둘째날
욕조에 물 받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창밖으로는 밤에 도착한 탓에 보이지 않던 거대한 울산바위의 위용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엊저녁 과음을 하여 일출을 보자던 계획은 슬그머니 취소되었다. 환기를 시키려고 베란다 문을 열자 차가운 바람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들어와 깜짝 놀라 이내 닫았다. 어제보다 날이 차갑고 바람이 꽤 세게 부는 모양새가 힘든 여정을 예고한다. 아침은 호텔아래 있는 두열이 단골집에서 손두부와 황탯국으로 조촐하게 먹고 미시령 너머 아내의 친구가 운영하는 황태덕장에 가기로 하였다.
작년 여름 꼬불꼬불한 미사령옛길에서 맞닥뜨린 울산바위의 장쾌한 절경에 기함을 지르던 기억이 떠올라 옛길로 방향을 잡았건만 아쉽게도 폭설로 인한 통행제한 바리케이드가 놓여 터널로 돌아섰다. 핸들을 돌리는 순간"오십대는 포기도 빠르네" 라는 순정씨의 말에 깔깔 웃음이 차 안에 퍼졌는데, 포기도 빠르면 무엇인가 빠른 게 더 있다는 말인데 그게 무엇일까?
이런저런 너스레를 떠는 중에 황태덕장으로 유명한 용대리에 도착했다. 매바위뒤편에 자리 잡은 바람도리에서 아내의 친구가 반갑게 일행을 맞는다. 바람도리는 황태전문식당과 황태제조를 하며 숙박업과 조랑말까지 사육하는 넓지막한 농장형태로 운영되고 있는데 뒷산에 표고버섯까지 재배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황태와 취나물을 구입하며 난롯가에서 잘 말린 황태의 솜 같은 속살의 맛을 음미하고 구운 황태와 황태껍데기강정의 고소함을 맛보았다. 술안주로 이만한 귀물이 없을 듯하다.
매바위 인공폭포는 용대리의 상징으로 여름에는 낙차 큰 폭포로 유명하고, 겨울에는 전국최대규모의 인공빙벽으로 많은 클라이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우리가 도착할 무렵에도 7-8명의 클라이머들이 정상을 향해 빙벽을 타는 멋진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곳은 황태를 말리는 천혜적인 날씨를 가진 탓에 무척이나 공기가 차갑다. 경선 씨의 말에 의하면 겨울 날씨가 서울보다 기본적으로 평균 5도가 낮다고 하는데 기념촬영을 하러 바람도리의 포토존에 서자 엄청 난 찬 바람이 일행을 덮치며 그 실체를 실감하게 하였다.
용대리를 떠나 여행의 종착지인 인제 원대리의 자작나무숲에 들렀다. 이 숲은 74년부터 경제림조성단지로 특별히 관리된 곳으로 수령 3-4십 년 된 자작나무가 쭉뻗은 각선미를 뽐내고 있는 곳이다. 일명"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이라는데 설경과 어우러진 하얀 껍질이 시린 아름다움을 내보이고 있다. 어느새 눈과 동화된 아내들이 동심으로 돌아간 듯 눈을 집어 흩뿌리기도 하고 눈싸움을 즐기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산을 오르는 모습들이 정겹다.
눈 덮인 설경을 보자니 영화 러브스토리의 눈싸움 장면이 생각난다. 올리버와 제니퍼의 명대사"사랑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야"라는 말도.. 하지만 누구는"러브레터"의"오겡끼 데스까"를 외치는 장면을 떠 올릴 것이며 누구는"겨울왕국의"의"렛 잇고"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세대별로 눈을 보며 느끼는 감성도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본질적으로 설경을 보는 따스한 마음과 정서만은 모든 세대를 아우를 것이라 생각한다. 별안간 세찬 바람이 분다. 일행은 벌써 저 멀리 앞서 갔다. 바닷가를 들러 휑하니 돌아 올 요량으로 구두를 신고 온 아내가 눈길을 걷기 힘든 모습을 보여 정상까지 걷기를 단념하고 먼저 내려오며 사진을 찍는 손이 순식간에 곱아 든다. 이런 느낌 참 오랜만이다.
자작나무숲을 빠져나온 일행은 숲입구의 멋진 38 대교를 배경으로 마무리 사진촬영을 하고 귀로에 올랐다. 홍천을 지나 양평의 두물머리 다리 위를 지난다. 저 앞에 보이는 용마산 등성이에 해는 지고 석양빛에 물든 얼어붙은 남한강 위에 주황색 빛이 서서히 늘어지고 있다. 친구들도 아내들도 여독에 지친 듯 눈을 감고 조용하다. 차창을 부딪는 바람소리만 나직한 떨림으로 자꾸 멀어진다. 우리들의 짧은 여행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기억 혹은 추억이 되기까지 그 순간이 주는 소중함을 지나치며 살고 있다. 이렇게 매 순간의 이야기들을 추억이라는 창고에 저장해 놓는 이유는 마음은 청춘이라도 기억력은 차츰 쇠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소중함을 잊지 않고자 하는 연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새 2014년이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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