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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다낭, 호이안, 후에- 그들의 단편 [斷片] 본문

여행이야기

다낭, 호이안, 후에- 그들의 단편 [斷片]

김현관- 그루터기 2023. 1. 29. 10:50

https://youtu.be/7TfecplCQqc?si=pjmofmbJyJzah6h5

 

다낭, 호이안, 후에- 그들의 단편 [斷片]

창 밖이 검은하늘로 변하고 나서 어느 사이엔가 거먹한 구름 위와 아래로 밝게 빛나는 별들의 잔치가 벌어졌다 도시의 불빛인 줄 알았는데 베트남에 도착할 때까지 비슷한 형태들을 이루고 있는 빛인 것을 보니 별빛들이 맞나 보다. 문득 이녁 하늘에서만 보인다는 남십자성을 창가에 얼굴을 들이 대고 찾아보는데 뜬금없이 윌남전에 투입되었던 한국군들이 불렀음직한  "남쪽나라 십자성은 어머님  어~얼굴"이라는 구슬픈 "고향 만리"라는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다낭공항에서의 입국심사는 매우 간편하여 인터뷰 없이 여권으로만 심사를 마칠 수 있었다. 가이드의 얘기가 한국인은 베트남에서 별도의 인터뷰 없이 심사가 통과되는 V.I.P. 나라 중의 하나라는 설명을 듣다 보니 은근히 어깨가 올라간다.

#   한국을 비롯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일본의 여권 소지자는 일방적인 비자 면제 국가
     로  15일 동안 머무를 수 있다.

빈 폴 호이안 호텔은 아주 정갈하고 깨끗하였다. 체크 인을 하고 친구들과 가벼운 저녁을 먹으며 여행지에 대한 관심들을 나누었다. 어느새 낯 선 땅에서의 하룻밤이 지나고 아침 일찌감치 가이드의 안내로 삼일의 여정을 시작했다. 이제 서른 살! 8년 차 처녀 가이드의 인상이 좋다. 호텔을 나서자 날씨가 아침부터 훅하니 더운 기운을 선사하며 치고 들어 오는 게 다낭에서의 일정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예상과 같이 근 삼일 동안 땀을 흘리고 말리기를 반복하였지만 이국의 정취를 탐하고 낯 선 음식들을 맛보느라 힘듦은 잠시 잊고 지낼 수 있었다.

첫 일정으로 마블 마운틴의 장관을 구경하게 되었다. 도심 속에 솟아 오른 다섯 개의 야트막한 산등성이를 바라보는 기분이 묘하다. 오행산으로 불리는 이 산은 베트남인들의 민간 신앙을 대변하는 산으로 물, 나무, 금, 땅, 불을 상징하는 5개의 봉우리로 되어 있다. 산 전체가 대리석이기 때문에 마블 마운틴이라고 불린다. 물을 상징하는 투이 선(Thuy Son)이 핵심으로 산속 동굴에 불상이 모셔져 있다. 석단에는 전망대가 위치하여 논 느억(Non Nuoc) 마을과 산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오를 때는 간편하게 엘리베이터로 오르고  내려올 때는 걸어서 내려오는데 날씨가 더워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오행산에서 내려와 마사지를 받으며 잠시 피로를 풀었는데 처음 받아 보는 마사지가 몸에 잘 맞는지 피곤이 풀리며 몸의 상태가 매우 편해졌다.

식사를 한 뒤  한때 경제의 중심지 노릇을 하며 은성했던 옛 도시 호이안으로 이동하였다. 그곳 호이안에서 도심을 흐르는 투본강 뱃놀이를 하는데 강 위로 비치는 은회색 하늘빛을 바라보면서 기원후 1세기경 동남아 최대의 항구도시였던 호이안의 위세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부두에 정박한 보트를 뒤로 하고 광자회관앞에서 모인 일행들은 시가지내에서 씨클로를 타고 구도심을 한 바퀴 돌았는데 도심전체에서 수 백년 전의 오래 된 흑색의 건물에 현대의 화려함을 조화롭게 배치한 어우러짐이 세련된 느낌으로 다가 온다. 낮은 시클로의 좌석에 앉아 눈앞으로 스쳐 지나가는 점포와 등불 그리고 붉은 구겐베리아(부겐베리아가 아님) 꽃잎들과  타인들을 바라 보자, 나 역시 이 곳에서는 타인이라는 사실이 그대로 느껴진다. 다낭공항 입국심사대의 외국인표지판앞에 서면서 스스로 타인임을 자각하였는데, 호이안 구도심에 넘쳐 나는 이국적인 풍경들과 관광객들의 행렬을 바라 보면서 두 번째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었다. 

쇠퇴와 번성을 품고 과거와 오늘을 보듬은 호이안이라는 이 도시가 정말 마음에 든다. 다음에 혹시라도 베트남에 다시 올 기회가 생긴다면 주마간산 격으로 둘러보지 않고 넉넉하게 걸어 다니면서 도시 곳곳의 풍경들을 세세히 살펴보고 싶은 곳이다. 세월은 호이안의 건물 외벽의 색들을 조금씩 번지게 만들고  건물 사이의 조그만 골목들은 신포동의 비좁은 골목을 그려냈다, 낡은 건물들 사이로 흐르는 투본강은 하늘과 땅의 모든 불빛을 담아 꿈을 풀어내면서 호이안을 찾아온 객들에게 넉넉하니 시간의 추억들을 나누고 있었다.

다음날 프랑스 식민령일 당시 지배자로 군림한 프랑스인들을 위한 휴양지였던 산 위의 도시를 구경하러 떠났다. 바나 힐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출발지와 도착지의 고도차 1,400여 미터의 산을 장장 5,8 킬로미터로 연결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다. 베트남의 더위를 잊기 위해 산 위에 이렇게 휴양지를 만들어 쉬면서 남의 나라를 지배한 프랑스의 지배세력들을 떠 올리며 새삼스레 일제강점기의 포악함을 되새겨 보게 된다. 기실 우리도 월남전쟁의 가해자 입장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다낭박물관에서 어느 미국인 사진의 모자에 쓰여 있던 "War Is Hell" 이 잊히지 않는다. 그래도 근대와 현대전에서 미국과 중국 프랑스 등 열강들을 전쟁으로 물리 친 나라는 전 세계에서 베트남 뿐임을 내세우며 자긍심으로 가득 찬 베트남인들에게 기꺼이 찬사를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물들은 프랑스 건축양식을 그대로 본떠 만들어 웅장함과 세심한 조각들의 어울림이 아름다운 건축미를 조성하였다. 곳곳에 카페와 식당으로 넘쳐 나고 놀이공원도 한몫을 하며 한편에 마련된 레일바이크를 타려는 관광객들이 끝없는 줄을 만들어 꼬불꼬불 이어가고 있어 두 시간의 자유시간 안으로 도저히 이용할 수 없음을 알고 아쉽지만 레일바이크 이용을 포기하였다. 

바나 산을 다녀오면서 세계 10대 비경 중의 하나라는 하이반 고개의 경치를 둘러보는데 그냥 아름답구나 하는 정도이지 우리나라의 미시령 고개나 한계령 등 여느 곳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는데 세계의 10대 비경 중 하나라는 게 믿기질 않는다, 하지만  하이반 고개를 다 내려올 즈음 랑꼬 비치를 지나며 바익마국립공원 준령들의 봉우리마다 쏟아지듯 걸쳐 있는 운해의 너울거림을 보면서 여직 세상을 다니며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구름의 잔치를 보는 행운을 만끽하였다. 광진이는 이런 구름을 사진으로만 보았지 실제로는 처음 본다면서 매우 경이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베트남의 경주라 일컫는 후에로 이동을 하여 카이딘 왕릉과 후에성을 관람하였다. 응우옌 왕조는 과거에 있었던 같은 왕조의 후손인 응우옌 푹 아인이 1802년에 떠이 썬 왕국을 멸망시키고, 나라를 세운 후 스스로 지아롱(Gia Long) 황제라고 칭하면서 개국된 나라이며 그 이후 12대 왕으로 즉위한 사람이 바로 카이딘 황제이다. 카이딘 황제는 1916년에 즉위하여 1925년까지 응우옌 왕국을 다스리다가, 1925년에 폐결핵으로 사망했는데, 죽을 무렵에는 심한 아편중독자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카이딘은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무덤을 만든 것으로 한동안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하였는데  지금에 와서는 관광지로서의 역할로 국민들의 주머니를 채워 주고 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다.

다음 날  후에성으로 이동하였는데 후에 황성은 1802년부터 1945년에 이르기까지 약 143년간 응우옌 왕조의 궁궐 역할을 했던 곳이다. 베트남 최고의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후에는 유적 전체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베트남 전쟁 당시 파괴된 유적들의 복원, 보존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자금성을 본떠 똑같이 만들었다는 황궁은 외성에는 해자가 둘러있고 황궁 앞에는 좌우로 대포 진 지가 있고 멀리 잔디광장에 베트남의 국기가 펄럭인다. 규모는 대단하지만 성안으로 들어가면 몇 개의 건물을 제외하고는 전쟁으로 인해 거의 다 허물어진 빈 성터로 현재 복원 작업 중이며, 남은 잔해의 모습으로 보아 엄청난 규모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규모로 인해  걸어서 다니기에는 무리가 있어 일면으로는 걷고 중간 지부터는 전동카를 타고 이동하며 관람을 하였다.

이후에 다낭 대성당(베드로) 성당을 들렀다. 이 성당은 1923년 프랑스 식민 통치 시기 건축된 성당으로 풍향계가 돌아가는 독특한 지붕으로 인해 현지인들은 닭 성당이라는 의미인 찐 또아 꽁 가(Chinh Toa Con Ga)라고 부른다. 분홍색 외벽이 인상적이며 내부는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종교는 하나라는 근본 이념에 따라 천안 뒤로 예수, 마호메트, 부처, 공자가 함께 서 있는 그림이 걸려 있는 까오다이교 사원을 둘러보고 , 와우 쇼를 관람하기 전에 유명 휴양지 미케 비치를 잠시 들렀는데 해변에서 찍은 아내의 점프 사진이 기가 막히다.

정신없이 스케줄 따라 다낭과 호이안 후에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관광을 하다 보니 어느새 귀로에 오르게 되었다. 비록 시간에 쫓기며 일정을 소화해 내고, 땀을 흠뻑 흘리는 여행을 하였지만 틈새마다 얻은 소중한 생각들을 기억하면서 이국의 역사에서 보이는 반전의 아이러니를 교훈 삼아 다가오는 시간들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자 다짐을 한다. 여행은 길 위에서 내면의 사유(思惟)를 알아 가고 비움과 채움을 아우르는 공간적 이어짐을 찾아내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2018.3.그루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