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형과니의 삶

안경에 대하여 본문

내이야기

안경에 대하여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3. 19:30

안경에 대하여

며칠 전 무료한 날! "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박 태원)을 보게 되었다. 외출을 하던 구보 씨의 발길 중 "화신 백화점" 안의 소경을 묘사한 부분이 나오는데, 그로 인해 바로 길 하나 마주 보며 있던 "신신 백화점"이 자연스레 기억에 떠 올랐다. 지금은 둘 다 사라지고 없지만 내게 "신신 백화점" 은 첫 번째 안경을 맞추고, 학생 제복까지 구입을 한 이후부터는 지금까지도 아주 친근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꽤 시력이 좋은 편이었다. 시력검사를 할라치면 약간의 과장을 더해 시력표의 제일 아래 부분의 제조회사 명칭이 보일 정도였으니 짐작을 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 파지직..."
빨갛게 달궈진 쇳가루들이 불꽃놀이 하듯 화악 퍼지다 하얀 재로 스러진다. 순간 새하얀 섬광이 바늘처럼 눈알을 자극하면서, 온몸에 묘한 쾌감이 퍼진다.

"얘~용접하는 걸 계속 보면 눈 버린다. 빨리 집에 가거라.."
초등학교 6학년 시절! 하굣길 가의 골목에 있던 작은 철공소에서 매일 벌어지던 풍경이었다. 어른 말씀을 안 듣고 그저 잠깐의 작은 쾌감에 빠졌다가 결국 눈에서 진물이 흐르고 엄청난 고통을 겪고 난 뒤에야 그 기행이 종료되었다.

그날 이후 한참을 지나 어느 날부터 달력 글씨가 뿌옇게 보이고, 친구들의 얼굴이 둘로 겹쳐 보이는 게 어린 마음에 영락없이 소경이 되어 가는 듯 해 덜컥 겁을 먹고 어머니께 내 눈이 이상하다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깜짝 놀란 어머니께서는 염천에 나를 앞세우고 답십리에서 종로까지 걸어서 “신신 백화점”에 있는 안경점을 찾아 가는데 온 몸에 염장(鹽藏) 질을 하며 걸을라 치니 정신이 혼미한 것은 둘째로 쳐도, 불편한 안경을 쓰고 평생을 살 생각을 하니 참으로 막막했다. 게다가 당시 동네에는 아무도 안경을 쓴 아이들이 없어 나 혼자 안경을 쓰게 되면 온 동네방네 놀림감이 될 걱정에 그저 발이 안 떨어지고, 집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만 굴뚝같았다.

결국 근시로 처방받고 본새 안나는 검은색 학생용 뿔테 안경이 나의 첫 번째 안경으로 내 시력을 보필하게 되었지만, 놀림을 받기 싫어 졸업할 때까지는 집에서만 사용하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몇몇 급우들의 안경을 쓴 모습을 보고서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쓰고 있다.

사람들은 평상시 자기 신체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다 슬쩍 베인 손가락 하나 제대로 쓰질 못하면 생활이 엄청 불편해짐을 누구든 다 알고 있다. 나는 몸 중에서도 아주 소중한 눈의 기능이 완전하지 못하여 안경을 쓰고 있다. 잠시의 아찔한 쾌감을 얻는 아둔함으로 인해 평생을 불편하게 살고 있는 중이다. 어린 시절의 잘못으로 평생 고생하는 게 억울한 측면도 있지만 이제와 스스로 따질 수도 없는 일이고 이미 세월에 죗값을 치렀으니 그러려니 하며 지낸다.

죗값은 치렀으되 안경 착용으로 인한 불편함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 겨울 버스를 탈 때도, 구수한 찌개를 먹을라 쳐도, 대중탕엘 가도, 눈앞을 덮치는 수증기의 마수, 여름철 렌즈에 떨어지는 땀방울, 수영장이나 해수욕장엘 가서는 쓰자니 잃어버리고 안 쓰자니 위험하고 아쉬운(?) 불편, 선글라스 만해도 남들은 길거리에서도 얼굴형에 맞으면 간단히 쓸 수 있지만 꼭 안경점에서 맞춰 써야 하는 불편서부터, 축구나 농구와 같은 운동은 하고 싶어도 거의 할 수 없고, 느긋하게 텔레비전을 보다 잠이 들어도 안경으로 인한 통증을 감수해야 하는 등, 거의 모든 일상생활 전반에서 겪는 불편함은 당사자 아니면 모를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조물주께서 귀와 코를 만들어 주신 것이다. 물론 듣고 냄새 맡는 기본 기능 외에 미적 요소도 구비되어 있으니 가타부타 [可타否타] 얘기할 것은 없고, 이현령 비현령 (⽿懸鈴鼻懸鈴) 이란 말도 있으니 당연히 안경 쓴 이들만을 위한 귀와 코가 아님은 알지만 그래도 다행으로 알고 지내는 염치와 느긋함이라도 있어야 불편함 속에서도 세상 편하게 지낼 것이다.

안경은 13세기 말경 베니스의 유리공들이 만들고 14세기 초에 이탈리아에 안경이 보급되기 시작했으며, 1611년 독일의 "케플러"에 의해 근시 현상의 이론체계가 정립되어, 1623년 스페인에서 근대적인 안경이 보급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안경이 처음 등장한 것은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로 추정되고 자료들이 부족하여 중국을 통해 조금씩 전래되다 1600년 초 경주에서 우리의 독자적인 안경이 제작된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이제 안경이 만들어지고 8세기가 지난 지금 생명공학은 하루가 다르게 진보하여, 인체의 여러 부분을 기존의 부분과 교체할 수 있는 기적 같은 날이 곧 다가올 테니, 인간의 수정체도 간단히 교체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것도 욕심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기적과 같은 날이 도래해도 "신체발부 수지부모[⾝體髮膚受之⽗⺟] "를 지키려는 유교사상이 투철한 어르신들과, 엄중한 교리로 인하여 수혈을 못하여 사랑하는 이를 거리낌 없이 하느님께 보내는 종교인들은 수술은커녕 지금과 같이 계속 불편한 안경을 착용한다 할 테니 아무리 가정 [假定]이라지만 지켜보기에 안타까운 일이라 하겠다. 부디 더 나은 과학으로 그들까지 함께 동참할 수 있는 놀라운 기적까지 바란다면 너무 심한 욕심일까!

나는 내일이면 아내가 큰 맘먹고 맞춰 준 새 안경을 쓰게 되었다. 앞으로 몇 개의 안경을 더 맞추려는지...

2011 - 01 - 19 

'내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구와 고양이  (0) 2022.12.03
눈(雪)을 보는 마음  (0) 2022.12.03
새해 소망  (0) 2022.12.03
한 해를 보내며  (0) 2022.12.03
경춘선[춘천]에 또 하나의 추억을 새기다  (0) 2022.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