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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잊혀졌던 당신의 추억이 꿈틀거리는 아날로그 메모리 본문

내이야기

잊혀졌던 당신의 추억이 꿈틀거리는 아날로그 메모리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6. 00:46

잊혀졌던 당신의 추억이 꿈틀거리는 아날로그 메모리

며칠 전 다녀온 동대문구 신설동에 소재한 서울 풍물시장 입구의 포스터 문구이다. 입구부터 눈에 비친 방문객의 대부분이 궁핍했던 어려운 시절을 쉼 없이 살아오다 이제야 잊었던 젊은 시절의 추억을 돌려받고 싶은 분들로 보이고, 점포 주인들 역시 이미 인생의 깊은 맛을 음미하며 긴 시간을 지내 온 태가 역력해 보이는 분들로 보인다.. 이런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며 아날로그적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감성적인 부분을 잘 뽑아낸 훌륭한 카피라 하겠다.

중앙통로를 들어서자 빽빽이 늘어선 충전기 선과 컴퓨터 입력단자 사이에 생뚱맞은 드라큘라 가면이 눈에 확 하니 다가온다. 검은색 바탕에 빨간색의 기막힌 대비 효과이다. 이곳이 도깨비 시장이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표현해 낸 주인장의 지혜이리라.

이곳은 말 그대로 없는 것 없는 만물상이다. 수십 수백만의 물건들이 숨을 쉬며 새로운 주인을 기다린다. 골동품, 공예, 조각, 생활용품, 장식품, 서적, 음반, 신발, 의류, 건강식품, 가죽, 전자제품에 하다못해 음란물까지.. 어느 하나 쉬 지나치기 어려운 색다르고도 언젠가 한 번쯤 간직하고픈 옛 정서가 그윽한 물품들이 산더미와 같이 쌓여 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들이 있는데 우리 어린 시절에 사용도 하고 혹은 먼발치에서 보았지만 이제 기억에서 잊힌 일상적인 물건들이다. 코흘리개 시절의 향수 고동색 란도셀, 기억에서 아예 지워졌던 아리아 풍금, 빛바랜 교모,, 자기 몸통보다 큰 배터리를 고무줄로 동여맨 트랜지스터, 그리고, 김일의 박치기를 연상케 하는 미닫이 흑백텔레비전과 자석식 전화기, 교련복, 4홉들이 소주병과 정교하게 엮어 낸 삐삐선으로 만든 시장바구니, 그을음을 부엌에 가득 차게 만들던 석유곤로,, 소풍날 그 진가를 발휘하던 야외전축, 게다가 하굣길에 들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했던 땡이 만화책과, 앉은뱅이책상들... 이 모든 것들이 잊힌 우리들의 기억을 추억으로 되살리게 하는 출력 단자인 셈이다.

이층 상가로 오르는 중앙통로에는 70년대 서울의 풍경을 찍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일명 "추억의 근현대 사진전"인데 이미 작년에 전시기간이 만료되었지만, 호응이 좋은지 계속 전시를 할 모양이다. 40여 년 전의 동대문 주변과 청계천변을 찍은 사진들인데 작가가 누군지는 몰라도 어려운 시절의 풍경과 세태를 잘 그려낸 작품들이다.

어릴 적 공동수도 앞에서 물지게를 지고 순번을 기다리던 동네 형들의 모습이 기억이 나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시던 연세 지극하신 할아버지께서 무엇하러 물지게 같은 것을 찍느냐 핀잔을 주신다.. 아마도 어릴 적에 지게에 단단히 시달리셨던 모양이다. 이렇듯 같은 사진을 보아도 서로 다른 심정을 갖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이곳의 매력이자 시린 추억일 수 있겠다.

이곳에 서울 풍물시장이 자리 잡은 연유는 청계천 복원사업 때문이다. 이 명박 시장이 추진한 청계천 복원사업으로 인하여, 창졸지간 벼락을 맞게 된 황학동 도깨비 시장의 노점상들은 당초 서울 외곽으로의 이전계획에 반발을 하였고, 결국 가까운 동대문운동장을 거쳐 지금의 장소로 이전하게 되었다. 비바람을 피해 아늑한 이곳에 정착한 것은 좋을지 몰라도, 상인들은 아직도 번성한 황학동 시절을 그리워하고 그곳을 찾던 사람들 역시 활기 넘치는 기존 황학동의 정서를 잊지 못하고 있다.

이제 복원된 청계천은 많은 사람들이 호젓하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운동과 사색도 하는 공간이 되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잰걸음 걷는 사람.. 조깅하는 사람.. 사진도 찍고,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에, 노인들의 쉼터가 되기도 한다. 언감생심 일제 강점기 시절의 청계천 주변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묘사한 소설가 박 태원의 "천변풍경"까지 그려 보게 된다.

오늘 잠시 거닐었던 청계천은 물오른 버들강아지가 한들거리고, 모이를 찾는 오리의 활발한 날갯짓이 부산하다. 하지만 유유히 잉어가 노니는 도심 속의 한가로운 모습을 누릴 수 있는 이면에는 황학동 사람들의 아픔이 바탕에 깔려 있음을 언제고 기억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가슴속에 잔잔하게 피어오른다.

세상은 숨 돌릴 수 없이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타자기를 대신할 것 같았던 전동타자기나, 잠시 호응을 받았던 시티 폰도
그렇고, 전축에서 카세트로 또 C.D. 플레이어에서 MP3로 이어지다 어느새 휴대폰이 그 모든 기능을 대신하고 있는데
언제 또 다른 새로움이 우리 눈앞에 나타나 디지털 혁명을 잠재울지 모른다.

이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삶이 불편할지는 몰라도 잠시 삶을 되돌아보면서 정리하는 시간들은 꼭 필요하다. 거침없이 들판을 달리던 인디언들도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도록 잠시 쉬어 가는 여유를 갖는다는데, 우리도 숨 가쁜 세상에서 잠시 쉬어감의 지혜를 배워가며 삶을 살아가야 하겠다..

2012.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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