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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t Baker - Sings Again 본문

음악이야기/재즈

Chet Baker - Sings Again

김현관- 그루터기 2023. 2. 23.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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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제되었기에 더욱 역동적인 슬픔..


Chet Baker - Sings Again


재즈 엘레지의 여왕을 빌리 홀리데이라고 한다면.. 남성부분에 있어서 재즈 엘레지의 황제는 바로 쳇 베이커라고 저는 단언하고 싶습니다.. 제가 이렇게 단언하는 이유는 빌리 홀리데이나 쳇 베이커의 음악이 단순히 저음의 슬픈 멜로디라인으로 만들어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절망과 슬픔이라는 극단의 삶이 바로 그들 곁에 늘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 두 사람의 음악은 서서 다른 성별을 지녔으며, 서로 다른 시대의 특징을 지닌 재즈를 부르면서도.. 듣는 이들에게 그 느낌은 하나로 다가오나 봅니다.. 마치 모든 것을 체념해 버린듯한 무감각한 보이스. 중성의 보이스를 지닌 쳇 베이커의 보컬에서도 그 체념의 정서가 느껴집니다..

저널리스트들(평론가 포함)이 '쿨재즈' 트럼펫 연주자들의 이름을 열거할 때 보통 마일즈 데이비스 다음으로 쳇 베이커를 나열합니다.. 그는 스타일 또는 시대, 혹은 그의 문란했던 사생활과 상관없이 음악인들 사이에서 널리 존경받는 인물중의 한 사람이죠. 그의 솔로들은 편하게 스윙하고 있으며, 대부분 그의 연주는 부드러운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그의 음질은 부드러우며 금속성을 느낄 수 없습니다..

1960년대 그는 일시적으로 트럼펫 연주를 중단하고 한동안은 더 부드러운 사운드를 지닌 플루겔혼을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즉흥 연주자로서의 그는 적절한 몇몇의 음들만을 골라낼 수 있는 재능을 지녔으며, 각각의 음들과 프레이즈들에 특별히 효과적인 음질을 부여합니다. 그의 수작 가운데에는 어떠한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고뇌 뒤에서 무언가를 찾아 내려는 날카로운 감각을 종종 엿볼 수 있습니다.. 종종 그가 어떠한 완벽한 음을 마침내 연주했을 때, 그것은 연약함과 강렬함의 미묘한 균형을 이루는 그만의 독특한 음이었습니다.

1954년에 'Sings'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어 크게 히트한 이 앨범은 1985년에 새롭게 레코딩하여 'Sings Again'이라는 이름으로 재발매되었습니다.. 흔히 평론가들은 쳇 베이커의 음악을 '쿨 재즈'로 분류하고는 하는데, 이 앨범에서는 쿨 재즈에 늘 따라 붙는 무드음악이니, 야상곡이니 하는 꼬리표를 찾아내기 힘듭니다. 너무 억제되어 있기에 오히려 너무 역동적이고, 너무 뜨거운 느낌.. 이 앨범은 재즈를 즐기는 모든 분들께 큰 사랑을 받는 앨범이 될거라 믿습니다..

앨범전곡감상

  

1. All Of You
2. Body And Soul
3. Look For The Silver Lining
4. I Can't Get Started
5. My Funny Valentine
6. Alone Together
7. Someone To Watch Over Me
8. How Deep Is The Ocean

 

온갖 영욕과 풍파를 모두 겪은 한 음악인의 말년이 우리에게 어필하는 바는 무엇일 수 있을까? 더구나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던 음악인이었다면, 그리고 그런 그의 주름진 얼굴을 사람들이 같은 얼굴로 바라보았다면 말이다. 아마도 그런 존재의 떠남은 진정 세상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일이었을 것이며 언제고 되새김질해 즐겨질 수 있는 면모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쿨 재즈의 물결을 이끌었던 여러 연주자들 중 바로 이런 점에서 '쳇 베이커 (Chet Baker 1922~1988)'의 이름은 독특한 색채를 지니고 있다.

언제나 듣는 이들의 감성을 자극할 것처럼 여겨졌던 그는 1988년 암스테르담의 호텔에서 추락하는 의문의 죽음을 맞았고 많은 이들이 간직한 그의 옛모습 중에는 이 앨범, 1985년에 녹음된 "Sings Again"도 포함되어 있다. 쳇 베이커가 이끄는 트럼펫 쿼텟 구성에 다분히 그의 노래에 귀추를 맞춘 이 작품에 실린 작품들은 누구든 그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따라 부를 수 있는 스탠더드 곡들로 가득차 있다. 전체적인 음색의 유지가 일관성을 보이고 있으며 곡의 구성에 까지 듣는 이들의 기호를 의식한 듯한 노력이 시선을 끌게한다. 그러나 결코 지루하지 않게 이루어진 앨범 전체의 분위기는 무엇보다 말년에 나타난 그의 개성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자리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

곡마다 트럼펫 솔로를 들을 수는 있지만 앨범 타이틀이 뜻하는 것처럼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보컬 앨범의 지향을 확실히 하고 있다. 맨 마지막에 수록된 'How Deep Is The Ocean'을 제외하고는 짤막한 오프닝을 유지한 채 바로 그의 목소리가 주제를 노래한다. 물론 곡의 조(調)는 모두 쳇 베이커의 음성에 맞도록 재편되어 있고 아무런 무리수를 두지 않은 채 그의 노래는 매 악절을 편안하게 산사한다. 때로 음정의 불안함이 눈에 띄기도 하고 매번 한 코러스를 넘지 않는 그의 트럼펫 솔로가 기본적으로 주제 멜로디에 입각해 있는 등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의 연주가 듣는 이들을 거추장스럽게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도 많은 이들은 젊은 시절의 쳇 베이커를 기억할지 모른다. '제리 멀리건 (Gerry Mulligan 1927~1996)'과 함께 하며 바리톤 색소폰-츠럼펫-베이스-드럼의 피아노리스 쿼텟에서 보여준 당차고 자신감에 넘친 트럼펫 연주나 편곡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던 여러 수작들이 그의 이미지를 구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말년 연주들이 듣는 이들의 감성을 적극적으로 자극하는 것은 보다 많은 이들에게 친밀감을 안겨준 1970년대 이후 그가 무대에서 보여준 연주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젊고 의욕에 찬 대부분 연주자들의 음악 속에서 찾기 힘든 색다른 매력이 그의 1980년대와 이 세상에서의 최후를 장식한 셈이다.

다분히 기술적인 얘기가 되겠지만, 그의 노래를 기준으로 얘기했을 때 무엇보다 'Body and Soul', 'I Can't Get Started', 'Someone To Watch Over Me' 같은 곡들이 보다 안정적이다. 그러나 'All Of You'와 'My Funny Valentine'의 이미지에 좀 더 마음이 가는 이유는 쳇 베이커의 노래를 받쳐 주는 피아노 연주, Michel Graillier의 음악에 있다. 지극히 서정적이면서도 단순하기 그지없는 쳇 베이커의 노래와 연주를 한껏 제맛나도록 이끌고 있는 부분은 다름 아닌 피아노. 철저하게 절제된 피아노는 멋부리지 않고 조심스레 이어진다. 무릇 좋은 연주자는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할 것이며 그에 대한 확고한 입장 표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곡은 이내 엉망이 되고 만다. Michel Graillier를 칭찬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페달의 사용은 전형적인 쿨 재즈의 사운드를 유지하고 있지만 'All Of You'에서 피아노의 솔로 연주와 이어지는 쳇 베이커의 트럼펫에 맞물린 자세의 전환은 수준급이다. 물론 이것이 충분히 계획된 편곡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만 앨범을 통해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Michel Grallier의 피아노 연주가 여러 곳에서 버팀목 작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갈 만하다. 사실 이런 형태의 앨범에서는 종종 피아니스트의 과도한 시도와 선을 넘는 지나친 감정의 표출이 불편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그의 피아노 연주는 소규모 편성이나 보킬리스트의 반주 생활에 좀 더 치중했을 확률이 높다. 그만큼 상대방에 대한 배려의 태도가 몸에 밴 음악인이라고 할까. 그런 면에서 'All Of You'와 'My Funny Valentine'이 좀 더 완성도 높게 들릴 법하다.

쳇 베이커가 말년에 보여준 노래들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도 적지 않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음악인에게 언제나 같은 모습의 같은 음악만을 요구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생의 흐름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에 다름 아니다. 한 시대를 화려한 박수 갈채와 꽃다발로 풍미한 쳇 베이커의 화답은 그와 함께 이 세상을 보낸 많은 이들에게는 오히려 잘 어울릴 만한 모야의 그것이었다. 여러 거장들과 함께 새로운 한 시대를 열었고 나름대로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무대 위에서 아낌없이 보여준 음악인. 그가 부르는 노래들이 시대를 초월하여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할까.

재즈라는 음악이 가진 수많은 장점 중에서 쳇 베이커는 분명 한 자리를 차지하는 음악인이다. 그의 노래에서 사람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추억을 회상하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도 똑같은 현상으로 대중들의 애정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으로 오래도록 간직될 것이다. 애조 띤 음성으로 읊조리듯 이어지는 그의 노래가 그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더 아껴지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좋은 것들만 가슴에 남아 그 모습 그대로 남기고자 하는 안식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김현준 (재즈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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