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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우리, 포크 세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본문
우리, 포크 세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한국 대중가요사로 세상 이야기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겠습니다만, 아라비안 나이트도 아니고 무한정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이 책의 화두로 삼았던 세대 이야기를 몇 마디 더 할까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가장 불행한 세대라고 말합니다. 묻지 마라 갑자생도 불쌍하고, 6·25 전쟁 중에 태어나 젖 먹기도 힘들었던 1950년생, 입시를 볼 때마다 입시제도가 바뀐 오팔년 개띠도 불쌍합니다(이 세대는 박정희 대통령의 고명 아들이 오팔년 개띠이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만 물증은 없습니다). 저도 중고생 시절을 오롯이 유신시대의 풍파 속에서 보낸 세대이니 불행하다고 우길 만합니다. 한글전용 세대, 졸업정원제 세대, 이해찬 세대 등 모두 자신들이 가장 불쌍하다고 말합니다.
앞서 설명한 세 세대 중 어느 세대가 가장 불행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못먹고 못 입고 고생한 걸로 치자면 식민지 세대가 최고겠지만, 물질적으로 풍요롭던 1990년대 신세대가 더 행복했다고 감히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1900년대 신세대야말로 치열해진 대학입시 관문을 뚫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대학 졸업할 즈음에 졸지에 외환위기 시대가 되어 취직도 안 되고, 백수로 헤매다가 겨우 취직해서 자리 잡을 만하니 다시 금융위기가 터져서 30대에 정리 해고된 세대 아닙니까.
이 책에서 포크 세대, 바로 제 세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으니 마무리도 그렇게 지으렵니다.
최근의 세시봉 열풍이 노인층의 세대 교체와 관련이 있다는 말씀은 드렸습니다. 또한 이전의 식민지 세대와 다른 정체성을 가진 전후세대가 드디어 노인이 되기 시작한 엄연한 현실을 말해준다고 이야기한 바 있고요.
포크 세대는 위로는 1940년대 말과 1950년대 초에 태어난 세대부터 아래로는 1960년대 후반에 태어난 세대들까지 이어집니다. 그 경계에 있는 사람들은 식민지 세대와 자신을 동일시하기도 하고, 또 서태지 세대와 자신을 동일시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 한가운데 위치한 나이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포크 세대의 한복판이 바로 베이비붐 세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베이비붐 세대는 대개 1955년부터 1964년생까지로 칩니다. 즉 전쟁이 끝난 후 마구 아이를 낳기 시작했을 때 태어난 아이들이 이들입니다. 저는 이들 베이비붐 세대 중에서도 한가운데 위치해 있습니다.
이들(이제 솔직하게 우리 세대라고 말하겠습니다)은 20세기 후반, 한국 현대사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숫자가 많기 때문에 우리 세대의 움직임은 매우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우리 세대가 움직이면 그것이 역사가 됐습니다. 우리가 중고생 시절이었을 때 입시지옥의 몸살이 시작되었고, 우리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학생운동이 뜨겁고 치열해졌습니다. 우리가 대학을 졸업하고 노동운동을 해야겠다고 공장으로 들어가자 노동현장이 들끓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몇 년 지난 후, 6월 시민항쟁 때 넥타이부대가 되어 명동거리를 누비자 그토록 엄청나게 보이던 전두환 정권이 백기를 들고 물러났습니다. 우리가 교사가 되었을 때 전국교직원노조가 생겼고, 사무직과 전문직이 되었을 때에 사무전문직 운동이 생겼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육아 조합이 결성되었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학부모운동도 시작되었습니다. 학교를 바꾸다가 한계를 느낀 이들은 급기야 대안학교를 만들고 홈 스쿨링 붐까지도 일으켰습니다. 하여튼 정말로 시끄러운 세대입니다.
저는 10년 전부터 이런 이야기를 종종 했습니다. 우리 세대가 노인이 되면 분명 '노인운동'이 생길 거라고요. 피켓 들고 노인복지 정책을 요구하는 모습이 그리 낯설지 않게 될 겁니다. 지금처럼 노인들이 성조기 흔드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풍경일 거예요. 그때도 정부가 시위 주동자 노인들을 구속할지, 저는 아주 궁금합니다.
우리 앞 세대는 우리 세대가 참 지긋지긋할 겁니다. 자신들 뒤를 따라오면서 판판이 비판만 해대는 골치 아프고 시끄러운 놈들이지 않습니까. 1990년대 신세대들도 평생 우리가 불편할 겁니다. 너희는 왜 열심히 우리 뒤를 따라오지 않느냐고, 너희는 왜 짱돌을 들지 않느냐고 평생 야단만 맞으며 살았으니까요.
포크 세대 자랑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바로 이런 세대이므로 정말 자숙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포크 세대는 다수이며, 따라서 다수의횡포를 저지르기 가장 좋은 세대입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기만 위해 살게 될 때 우리 세대가 보여준 나쁜 모습들을 우리는 충분히 보아왔습니다. 포크 세대 특유의 절제와 윤리성, 공동체적 가치를 지키는 한편으로, 이들은 자기 자녀들에게만은 이기적이었고 그것이 지금의 끔찍한 교육 현실을 만든 주범이기도 합니다. 평생 입시를 치르며 살아온 이들은 일류대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아이들보다도 빠삭하게 파악했고, 그 결과 특목고 전형, 대학입시는 물론이거니와 취직시험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의 모든 시험을 관할하는 총사령관처럼 움직이며 문제를 심화시켜온 세대였습니다. 이들 중 일부가 대안교육 등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기도 했으나, 그럼에도 태반은 자식 문제에 대해서만은 이타적이기 힘들었을 테니 이런 결과가 나왔을 겁니다.
앞으로도 이런 부작용이 없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나이 들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가 사라진다면, 포크 세대는 아래 세대에게 정말 폭력적일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게 가장 두렵습니다.
우리 세대가 모든 세대들, 특히 우리 아래 세대들을 위해서 사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태지 세대, H.O.T. 세대들이 해내지 못하는 측면들을 보완해주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제까지 많이 그래 오기는 했습니다. 신세대문화의 담론 형성과 조직화에는 늘 포크 세대의 막내들이 끼어 있었지요. 1990년대 신세대에게 부족한 논리인 조직성을 보완해준 것이지요. 왜 하필 우리 세대만 이래야 하냐고 항변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그게 우리 세대에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해둡시다.
2011년 이영미의 세시봉, 서태지와 트로트를 부르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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