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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내마음에 비친 내 모습 / 유재하 본문

음악이야기/한국음악

내마음에 비친 내 모습 / 유재하

김현관- 그루터기 2023. 2. 28. 00:55

https://youtu.be/yPdUVGhmXWA

 

내마음에 비친 내 모습 / 유재하 

 

아름다운 단 한 번의 불꽃놀이

천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동경은 끝이 없다. 잔인한 것은 그 천재가 불행하면 할수록 그 천재성이 더욱 빛을 발한다는 점인데, 그렇다면 인간에게 생길 수 있는 일 중 가장 불행한 일은 무엇일까? 글쎄, 뭐니 뭐니 해도 죽는 일이 아닐까? 그래서 마흔 살 이전에 죽은 예술가들은 천수를 누린 예술가들에 비해 더욱더 대중의 뇌리에 꽂혀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 <아마데, 우스>가 <불멸의 연인>보다 훨씬 더 큰 인기를 끈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 일지 모른다. 베토벤도 나름 불행한 인생을 살았기에 영화가 나온 것이지, 그 당시의 평균 수명 이상 살다 돌아가신 음악의 아버지 바흐는 변변한 영화 한 편 나오지 않았다. 음악뿐만 아니라 미술 쪽도 마찬가지다. 정신병에 시달리다 30대에 자살한 화가 반 고흐의 그림은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신기록을 갱신 중이다. 

1987년 신문의 한구석에 조그맣게 실렸던 젊고 유망한 작곡가 유재하의 죽음은 대중에게 그다지 알려지지 못했지만, 4년 후 김현식의 죽음과 더불어 한국 가요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면 중 하나였다. 특히 대중들의 기호가 팝 음악에서 가요로 옮겨가기 시작한 1990년대 초의 시대적인 흐름을 읽어볼 때, 그가 살아 있었다면 왠지 우리 가요가 좀 더 뿌리 깊은 나무가 되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는 타고난 발라드 작곡가였다. 음악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다거나 거의 모든 악기를 다룰 줄 알았다거나 하는 중요하지 않은 특기사항들을 차치하더라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시절 발표한 록발라드 <사랑하기 때문>에 와 이문세 3집에실린 〈그대와 영원히〉, 김현식이 부른 <그대 내 품에 와> <가리워진 길>에서는 확실히 그 이전의 수많은 가요 발라드에 비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세련됨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노래들은 한국식 발라드가 가야 할 길을 보여 준 선구적인 곡들이었다. 유재하의 발라드를 듣거나 연주할 때면1960~70년대 수많은 발라드를 히트시켰던 미국의 작곡가 버트 바카락이 떠오른다. 그럴 때마다 어쩔 도리 없이 드는 생각이 있다. “아, 재하 형님이 바카락 할아버지만큼만 살았더라면 얼마나 많은 좋은 노래들을 사람들이 듣고 부를 수 있었을까?"참고로, 바카락 할배'는 80살이 넘었지만 아직도 정정하시다. 그러나 유재하는 버트 바카락보다 엘튼 존이 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전곡 작사 · 작곡 · 연주는 물론, 노래까지 소화한 데뷔 앨범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조용필의 <사랑하기 때문에〉와 이문세의 <그대와 영원히>를 작사·작곡한 유재하가 앨범을 냈다는 소식에 당장 LP를 구입했고, 친구들과 턴테이블 앞에 함께 둘러앉아한 곡 한 곡 감상했다. 싱어 송 라이터 singer song-writer<자신이 직접 작사·작곡한 곡을 직접 노래하는 가수>로서의 유재하가 좋다, 싫다. 열띤 토론을 벌이고 몇 달 뒤 그만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한 것이다. 다소 섬뜩한 느낌으로 영정사진처럼 나온 그의 흑백 앨범 사진을 보며 슬퍼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가 일군 '우리 노래 부르기 정신'은 꽃을 피우고 열매도 많이 맺어 일가를 이루었지만, 공장화 · 상품화 ·획일화에 모방과 표절 등이 대세가 되어 버린 작금의 가요계를 유재하가 봤다면 얼마나 상심했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니 오히려 단 한 번의 아름다운 불꽃놀이를 하고 총총히 가 버린 그의 고고한 뒷모습에서 선견지명마저 느껴진다. 나를 포함한 모든 후배 작곡가들은 각성할 일이다.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 앨범에는 여덟 곡의 가요와 한곡의 현악4중주, 한 곡의 건전가요가 들어 있다. 모차르트나 보케리니의 현악 4중주를 떠올리게 하는 <Minuet>는 아마도 팝 -재즈 록 클래식의 사이클 히트 hitting for the cycle<야구 경기에서 한 선수가 한 게임에서 순서에 관계없이 1루타, 2루타, 3루타, 홈런을 모두 친 경우>를 하려는 유재하의 음악적 욕심과 음대 출신이라는 그의 학력적인 한계가 함께 작용한 결과였으리라. 〈Minuet>와 건전가요를 제외한 나머지 여덟 곡에서 유재하는 모두 노래를 하고 있다. 모두가 사랑 노래 일색이라 듀엣이나 여자 보컬의 노래도 좀 넣고, 작곡가의 솔로 앨범에서 으레 그렇게 하듯이 조용필 · 이문세 · 김현식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가수들과의 친분을 살려 소위 피처링 featuring <다른 가수의 앨범 작업에 참여하여 노래나 연주를 도와주는 것>도 두어 곡 넣을 법 한데 그러지 않았다. 드럼 등 몇몇을 제외한 거의 모든 악기도 혼자 직접 연주하고 있다. 그래서 혹자들은 그가 너무 첫술에 배부르려는 무리를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첫술이 마지막 술이 된 유재하에게는 오히려 한껏 자신을 펼쳐 보인 것이 더 나은 모양새가 된 것 같기도 하다..

▶ 유재하의 노래가 금지곡이었다고?

1980년대 당시 악명이 자자하던 음반사전심의(공윤)는 가사나 메시지에만 칼을 들이댄 것이 아니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유재하의 데뷔 앨범은 음정이 불안하다'라는 이유로 여러 치레 음반이 반려돼있다고 한다. 이 웃지 못할 가요게의 해프닝 들은 심의가 폐지된 1996년까지 계속된다. 심의 예시에는 수많은 가수들과 시민단체의 노력이 있었다. 특히 '한국의 밥 딜런' 정태춘은 심의 폐지 운동의 상징이었다. 한편, 심의를 폐지하면 음악이 상업화, 지질화 될 것이라는 보수 세력의 우려는 나름 상당 부분 현실화된 것도 같다.

경쾌한 팝 두 곡<우리들의 사랑>, <지난날>, 재즈 스타일의 한 곡<우울한 편지>), 록 사운드가 가미된 팝 한 곡<텅 빈 오늘 밤>, 그리고 발라드 네 곡<사랑하기 때문에, 가리워진 길>,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대 내 품에> 등 총 여덟 곡은 가요의 스탠더드'라 불러도 좋을 만큼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후배 가수들에게도 끊임없이 다시 불리고 있다. 노래방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으로 사랑하기 때문에>를 부르는 것은 나와 내 주변 사람들만 그러는 것인지 늘 궁금하기도 하다.

좀 짓궂은 여담이지만, 유재하와 관련된 납량물이 한 가지 더 있다. 사고로 돌연 세상을 떠나는 가수들에게는 다소 갖다. 붙이기 식' 괴담 시리즈가 떠돌게 마련이다. 밴드의 절반은 죽고 절반은 살아남은 레너드 스키너Iynyrd skynyrd 가 비행기 사고 직전 발표한 마지막 앨범 타이틀이 생존자들 <street Survivors>'이었다. 든가, 빌 에반스의 마지막 앨범 타이틀이 '우리는 다시 만날 거예요 We Will Meet Aguin'이었다든가, 지미 헨드릭스가 마지막 앨범의 첫 곡 <Who Knows>에서 “모든 사람은 죽는다.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이라고 노래했던 것처럼 뮤지션들은 죽기 전에 자신들의 음악으로 일종의 암시를 한다는 괴담이 그것이다. 유재하의 앨범에서는 가리워진 길이 그의 죽음을 암시하는 곡으로 호사가들 사이에 악명을 떨쳤다. 그가 강변대로에서 가로수를 들이받고 숨진 것을 생각해 보면 그럴듯한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다. 가만, 그러고 보니 <가리워진 길>은 고 김현식도 부른 곡이지 않은가? 1997년에 나온 유재하 추모앨범에서 이 곡을 부른 가수는 지금은 해체한 유재하 가요제 출신 그룹 '일기예보'였는데, 멤버였던 H형과 K형을 만나면 꼭 이야기해 줘야겠다. 흐흐흐… 

 

글쓴이 : 권 오섭 - 작곡가 겸 프로듀서

우울한 편지와 영화 <살인의 추억>

재즈 트리오 형식의 발라드 <우울한 편지>는 봉준호 감독의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중요한 모티프로 사용되어 다시금 화제가 되었다. 우중충하지만 인상적이었던 이 영화를 보며 '우울한 편지'? 재즈? 유재하? 에이·연쇄살인범이랑은 잘 안 어울리는데 차라리 김추자나 심수봉 노래였으면……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우울한 편지>가 영화의 아우라를 더욱 그윽하게 만들어 준 것 같기도 한데 유재하 형님, 곡을 쓰면서 이 노래가 이렇게 기상천외하게 사용될 줄은 꿈에도 모르셨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