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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死의 찬미 / 윤심덕 본문

음악이야기/한국음악

死의 찬미 / 윤심덕

김현관- 그루터기 2023. 3. 1. 00:58

https://youtu.be/lG4LolklcbQ

 

광막한 황야에 달리는 인생아!
死의 찬미...윤심덕


당신은 무엇을 찾으려고 왔습니까? 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선뜻 명확한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화두하나 던집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 무엇을 찾으려고 왔습니까?

파도 소리만 싸늘하게 생멸하는 밤바다에 섰습니다. 사위가 칠흑입니다. 가보지 못한 현해탄이라는 바다를 떠올립니다. 이름 그대로 깊고 검푸르지만(玄) 급한 물살과 위험한 (灘) 바다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가수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이 뛰어들었다는 애환의 바다, 현해탄(玄海灘)을 말입니다. 황홀하게 바라보았을 바다, 당신 영혼의 주체를 깃들게 했던 바다를 말입니다. 오직의 바다를 말입니다.

검은 빛이 그윽했을 그 바다에 세상 시비 던져두고 떨어지는 꽃잎이 되어 80여 년이 지난 지금, 당신은 행복하냐고 그 무엇을 찾았느냐고 나는 묻습니다. 나의 감수성은 당신을 다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무딥니다. 무딘 영혼입니다.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최초의 여가수

세인들은 최초의 여가수라는 말에 무한한 재능을 부여합니다. 그리고 덧붙여 미모의 신여성이라는 남부러울 것 없었던 당신의 프로필에 많은 포커스를 맞추지요. 하지만 나는 당신의 재능보다 비극적인 죽음을 더 기억합니다. 1926년이라는 시대 상황의 암울했던 염세주의에 매력을 느껴서입니다. 자신들의 정체성 확립에 실패한 남녀의 한계에 대해서 죽음이라는 극단에 대해서 그 절실함에 대해서 많이 아프기 때문입니다. 파도가 긴 혀를 쓰윽 내밀었다 갑니다.

(멀리서 집어등을 밝힌 고깃배가 태종대 자살바위 밑으로 정박하려하나 봅니다. 칠흑의 이미지와 겹쳐지는 순간입니다.)

인생은 고해라 했던가요. 영혼 어딘가에 금이 가고 있을 것 같은 단어 고해, 살아 있는 자체가 그만큼 고통스럽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검은 조류 속으로 정사(情死)라는 멋진 포즈를 취했나요?

돌아보면 행복했던 기억보다 고통스러운 기억이 더 선명한 게 사람입니다. 마음이 몸을 지배한다고 하지만 실은 몸이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지요. 몸의 고통에서 마음이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겁니다. 몸과 마음이 나를 구성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지만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라 해도 결국 몸이 마음을 굴복시키는 겁니다.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싫어 죽음을 찬미했나요? 높은 곡조의 소프라노가 파도로 밀려와 포말로 부서지며 밤바다를 헤맵니다.

내 눈과 목에서 울컥 눈물이 쏟아집니다.

1926년이라는 그 시절로 들어가 봅니다. 전통적인 가부장 제도가 여성에게 요구하고 부여하는 가치체제에서 발버둥치다가 차라리 죽음을 선택한 당신은 어쨌든 피해자지요. 그 피해증후군 가운데 하나가 정사였나요?

우리나라 근대 여명기에 음악과 연극에서 빛나던 당신, 세상이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데 대한 분노가 그렇게 지극했나요? 고통보다도 자신의 자리가 없는 사람들은 살아 있어도 죽어 있는 것인가요.

죽음 앞에선 당신, 하루에도 수없이 죽음을 채우고 비웠던 당신, 마지막으로 유언처럼 남기고 간 <사의 찬미>가 내 생(生)의 진정한 가치를 묻고 있습니다. 지금 순간에 죽음에 직면해 있다면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는 당신의 노랫말처럼 정말 사는 것은 부질없는 것인가요.

억압할수록 더 간절해졌던 것, 그것이 사랑

<사의 찬미> 멜로디는 루마니아 군악대장 출신 이비노비치의 <다뉴브 강의 잔물결> 도입부만 가지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굉장히 처량하고 우울하게 들립니다. 어느새 나는 당신이 됩니다. 슬픈 곡조의 반복으로 나도 한껏 우울해집니다. 당신은 우리나라의 최초의 여성소프라노로 〈사의 찬미〉를 불렀고 1897년 생으로 1926년 자신보다 한 살 연하이고 가장 사랑하는 연인 김우진과 그해 8월4일 현해탄을 건너던 중에 동반자살한 20세기 우리나라에서 강렬하고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신여성입니다. 당신은 유언을 남깁니다.

廣寬한 荒野를 달니는 人生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냐 

쓸쓸한 세상 - 險惡한 苦海에

너는 무엇을 차즈러 가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이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 <사의 찬미> 가사 중 일부

당시 동아일보에 실린 <사의 찬미> 1절의 가사입니다. 그녀는 현해탄 바다에서 사랑하는 연인과의 죽음을 앞에 두고 목이 부을 때까지 부르고 또 불렀을 것입니다.

1920년대 일제 강점기 시절 그녀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자유분방함과 넘치는 매력을 가진 신여성으로 시선이 곱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 주장이 강하고 자존심이 강한 그녀는 우연히 유학생들이 결성한 극예술협회의 중심인물인 김우진과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되고 당신은 유일한 여성 참가자가 됩니다. 고향에 아내와 딸을 둔 유부남인 줄 알면서도 불같이 뜨겁고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져들게 된 것이지요. 와세다 대학에서 연극을 공부한 극작가이며 섬세한 성격의 김우진도 그녀의 카리스마적인 성격과 외적인 매력에 첫눈에 반하지 않았을까요.

봉건적인 가치관이 지배하던 당시 자유연애 풍조에 대한 반감이 극심하던 시대. 아내가 있는 사내를 사랑한다는 것도 그녀의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겠지만 억압할수록 더 간절해지는 것이 사랑이라 다른 사람들에 비해 특별한 부와 명예를 갖고 있던 김우진에게도 가책과 제도가 억제될수록 더욱 간절한 고통이었으리라고 봅니다.

살수록 괴롭고 갈수록 험하니 

한갓 바람은 평화의 죽음

내가 세상에 이 몸을 감출 때 

괴로움도 쓰림도 사라져 버린다

- <사의 찬미> 가사 중

그들을 갈라놓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었지요. 그들의 만남에서 죽음은 비롯되었고, 사랑의 간절함에서 죽음은 구체화되었지요. 그 둘 두 사람 사이에 있어서 사랑의 영원함이란 곧 죽음 그 자체였으므로 죽음을 피한 사랑의 영원이란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겠지요. 그러므로 인간의 영원한 관심사가 뜨거운 사랑이 아닐는지요. 사랑의 죽음에 이르는 길, 죽음 이전에 그들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고 그것은 사랑을 위한 밀월여행이었지요.

<사의 찬미> 레코드 취입료는 죽음행 열차와 배표를 사는 요금이 되었고 “이 돈은 부산행 배표나 열차표가 아니라 우리가 저 세상으로 떠나는 데 필요한 여행경비에요"라고 주저없이 말하는 영화 속 그녀, 그들은 죽음으로 세상 경계를 넘고 맙니다.

윤심덕과 김우진의 나이 30세, 그들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지요. 정말 자살했는지, 자살을 가장하고 다른 곳으로 도피했는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나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그 시대를 살면서 자기 정체성의 확립에 실패한 당신의 한계가 더 절박하게 허공을 무너뜨립니다. 넘쳐나는 젊음을 다 써버리지 못하고 갈등했을 당신이 더 안쓰럽습니다.

누구에게나 인연이라는 것은 돌발적인 것

인연이라는 것은 하나의 덫이라서 초대받지 않은 만남에서 초대받지 않은 자리에서 누구나 그 덫에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한 번 빠지면 죽음으로도 빠져나올 수 없는 덫, 알면서도 세상 사람들은 이 덫을 피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네의 삶은 어쩌면 덫을 기다리며 사는지도 모릅니다. 이 덫이 열쇠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이 덫에 걸리고 싶어 하는 것은 참 아이러니컬하다고 해야 할까요.

윤심덕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비 여학생이었고 최초의 여류 성악가였으며, 최초의 대중 가수, 당대 최고의 음반 판매량 보유 가수, 방송국 사회자이며 그 시대 최초의 패션모델이라는 수식어에다 하나를 더 장식한다면 죽음을 초월한 사랑을 겪은 실제 주인공으로서 훗날 영화로 제작되었지요. 1991년 대종상에서 우수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녹음상, 의상상을 수상하였으며 청룡영화제에서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할 만큼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더 극적이라는 것이라고 후대는 말하지요.

대중의 관심 속에 있었던 당신, 세상의 모든 기억을 밀어내며 조선과 일본의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당신, 지금 밤바다의 물결은 무한하게도 검습니다. 당신이 뛰어들었던 바다보다도 더 검푸릅니다. 수심을 알 수 없기에 아픔입니다.

음악이 파도를 휘감고 흐릅니다. 덧입니다. 이 지독한 현실에 이미 당신과 다른 현재에 존재하면서 몇 개의 단어와이미지로 당신을 기록합니다. 기록하는 순간순간 절창이 무엇인가를 느낍니다. 삶의 절창까지도….

사실 <사의 찬미>의 모든 것의 가치는 최초에 있는 것이 아니겠지요. 죽음의 극한까지 끌어올린 비극의 사실에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최초이든 아니든, 예술가곡이든 유행가이든, 저 깊이 숨어 있던 죽음을 향한 동경의 노랫말은 처절합니다.

1920년대 조선 사회를 뒤흔들었던 처자가 있는 지식인과 신여성의 정사 사건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이었을 자유연애,성악가를 기생쯤으로 여기던 그 시절, 신세대의 인권에 대한 구세대의 살인이라고 비난했던 당시의 신문들에 한 표를 던집니다.

여러분 발밑을 경계하십시오

 

출처 치유의 음악 / 권 정일

 

<사의 찬미> 영화 포스터.
1991년 대종상에서 우수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녹음상, 의상상을 수상.
청룡영화제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