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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동물원 - 혜화동 본문

음악이야기/한국음악

동물원 - 혜화동

김현관- 그루터기 2023. 3. 3. 10:18

https://youtu.be/iRnUrdHxTyo

 

우리의 지난날은 정말 아름다웠을까

동물원 / 혜화동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동물원' 시절의 노래 <혜화동>이 나왔습니다. 인기 드라마의 힘은 정말 크더군요. 죽어가던 고목에서 꽃이 만발하게 하는 마법을 부릴 만큼 말입니다. 1988년에 나온 많은 곡 가운데 <혜화동>을 고른 PD가 정말 고마웠지만, 고맙단 말을 전하지는 못했습니다. 가까워지면 또 제 곡을 써줘야 할 것 같은 부담을 줄 것 같고, 어색하기도 해서요. 하지만 <혜화동> 덕분에 아이들은 아빠가 한때 꽤 잘 나가던 가수였다는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됐고, 친구들에게도 자랑깨나 했던 모양입니다.

<혜화동>은 1988년에 발표한 '동물원' 2집에 실린 노래입니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만큼은 아니지만,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노랫말과 서정성 짙은 멜로디로 잔잔히 사랑을 받았던, 말하자면 엉거주춤한 히트곡입니다. 당시 주로 공연 오프닝 곡으로 불렀는데, 전주가 시작되면 객석에서 '아~' 하는 호흡음과 함께 박수가 터지곤 했습니다. 추억이 소환될 때 나올 법한 반응이지요. 그러나 노래가 계속되면 관객의 호응도는 급속히 떨어지곤 했습니다. 가창력 없는 가수가 부르는 흘러간 가사 감사용' 노래에 대한 전형적인 반응이랄까요. 공연에서는 노랫말이 좋은 곡보다 가창력이 돋보이는 곡에 호응이 큽니다. 제법 알려졌지만 반응이 뜨겁진 않아서, <혜화동>은 점차 공연에선 부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서울 혜화동 언덕배기 방 두 칸짜리 작은 한옥에서 자랐습니다. 1960~1970년대 서울의 어느 마을에나 있던 방범초소는 친구들과 저의 '본부'였고, 콘크리트로 찍어낸 공동 쓰레기통은 우리의 '아폴로 11호'였습니다. 그 쓰레기통 위에 앉아 코를 훌쩍거리며 국민교육헌장을 외웠고, 그 위에서 폼나게 뛰어내리며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도약!"이라고 외치곤 했죠.

골목에서 구슬치기 딱지치기를 하다 배가 고프면, 담벼락너머로 삐져나온 대추나무나 감나무에 고무신을 던져 군것질거리를 마련했습니다. 공책 살 돈으로 번데기를 사 먹고,저금통에서 몰래 뺀 동전으로 눈깔사탕을 사 먹기도 했죠. 한 입씩 빨고 다음 아이에게 줘야 했지만, 제 차례가 되면 사탕을 입에 문 채 냅다 뛰며 도망치곤 했습니다. (친구들아, 미안하다.)

어머니께서 퇴근하실 무렵이면, 저는 형과 동생과 함께 언덕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계단에 앉아 어머니를 기다렸습니다. 우리는 어머니의 모습이 빨리 나타나기를 빌며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형은 재미있는 노래들을 많이 알았고, 노래도 참 잘했습니다. 해가 저물면 이웃집에서 밥 짓는 냄새가 퍼져 나오고 두부 파는 아저씨는 종을 딸랑거리셨습니다. 그날들 때문일까요. 저는 아직도 외로움 혹은 그리움과 허기짐을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혜화동>은 1988년 봄, 밴드 '동물원'이 한창 인기를 누릴 때 만들었습니다. 대학로에서 공연하던 어느 날, 오랜만에 고향 같은 혜화동의 '우리 동네'를 찾아갔습니다.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골목길은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이었더군요. 그 골목에 서니 어릴 적 친구들이 떠올랐습니다. 담장을 넘어간 축구공을 찾으려고 "공 좀 꺼내주세요” 하고 외치던 친구, 동네 형들에게 얻어맞고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던 친구, 그 형들이 보여준 '빨간책'을 두고 진지하게 토론하며 함께 자란 녀석들… 모두 그리웠습니다. 전화를 걸어 동네 골목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전철을 타고 친구를 만나러 가는 상상을 했습니다.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노래는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기억은 때로 왜곡되어 저장됩니다. 더 우세한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덜 중요한 정보는 작아지거나 잊힐 수도 있죠. 가끔은 정서적 안정을 위해 변형되기도 합니다. 회상할 때 기억은 여러 번 달라집니다. 신경증적인 망각과 왜곡이 끼어들기도 하죠.

지난 아름다운 시간은 정말 아름다운 시간이었을까요? 해맑았던 유년 시절, 보람찼던 입시생 시절, 열광했던 '군대스리가' 나 뜨거웠던 사랑이라고 말하는 기억은 사실 많은 부분 왜곡됐을 수 있습니다.

개구쟁이 아이였을 때를 떠올리면, 퇴근하시는 어머니 얼굴은 웃는 천사 같았고, 혜화동 골목길은 넓은 축구장 같았습니다.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상쾌해집니다. 사실과 달라도 말입니다. 고달픈 제 삶의 소울푸드 soul food인 지난날들에 대한 기억이 왜곡됐다면 고마운 왜곡이지요. 팍팍한 삶에 그보다 큰 위로는 없으니까요. 여러분의 추억은 어떠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