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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판 붙자 본문
한 판 붙자
知識 ,知慧 ,生活/쉼터
2008-12-30 12:34:12
풍류·여유 잃은 현대인 볼거리 많은 요즘 국회
유머러스 세계사 - 한 판 붙자
박철규 · 언론인
지난 날 영웅들은 싸움을 한 판 벌리고 싶었을 때 어떻게 했던가? 미리 욕설을 해댄다 던가, 야반에 몰래 기습공격을 한다던 가와 같은 몰상식한 짓을 하지 않았다. '우리 한 판 붙어보자'는 도전장을 먼저 상대 측에 보냈다. 도전장이라고 그 내용이 '몇 월 몇 일 어디서, 한 번 싸움을 해 보자'는 직선적이거나, 야멸찬 것이 아니었다. 참으로 풍류스러웠고, 여유가 있었다. 무엇을 뜻하는가? 요즘 사람들의 심성(心性)이 각박해져 왔다는 그 말이다. 옛 영웅들은 죽을 때 죽고, 살 때 살더라도 점잖은 편지로 도전장을 상대 측에 보냈다. 그 내용도 참으로 스케일이 컸다. 또 감동적이기도 했다.
우리들에게는 을지문덕(乙支文德)장군이 있었다. 물론, 장군은 싸움도 잘 했겠지만, 인간미까지 넘쳤다. 장군은 수(隋) 나라의 우중문과 더불어 압록강 가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우중문이 군대를 움직일 생각을 하지를 않고 있었다. 을지문덕 장군이 겁이 났던 게다. '그렇다면 좋다'고 을지문덕 장군은 생각하고는, 그에게 편지를 한 통 보냈다. 그 편지는 편지가 아니었다. 한 편의 시였다. 또 천하의 명문이었다. '그대의 신묘(神妙)한 전략 천문(天文)을 꿰 뚫었고, 묘산(妙算)은 지리(地理)를 통달하였네. 전승(戰勝)한 공이 이미 높았으니 돌아감이 어떨꼬' 우중문은 그 시를 읽고는, '이 놈이 내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나를 놀리고 있구나. 그렇다면 좋다. 어디 맛을 한 번 보아라' 한 판 크게 붙었다. 우리가 역사에서 보듯, 우중문은 대패(大敗)하고 말았다.
또, 조조는 누가 뭐래도 영웅이었다. 그 유명한 적벽대전의 전단(戰端)을 편지로 열었다. 그것도 손권(孫權)한테 보낸 딱 한 줄이었다. '지금 수군 80만을 이끌고 장군과 더불어 회렵(會獵)이나 한 번 해 볼까 하오' 회렵이란 '어울려 함께 사냥을 한다'는 뜻이다. 그 편지를 받고 손권이 '회렵'이란 말을 몰라, 옥편을 뒤지지도 않았다. 손권한테도 그 만한 풍월이 있었다. '그렇다면 조조, 이 놈, 어디 뜨거운 맛을 한 번 봐라'며, 도전에 흔쾌히 응했다. 역시 조조는 그 한 판 싸움에서 손권의 말대로 역시 뜨거운 맛을 보고 말았다. 나관중의 '삼국연의'에 나오는 이야기로,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싸움을 걸더라도 이렇게 여유가 있었다.
이와 비슷한 무렵이었다. BC 334년, 제국 페르시아 군대와 신생 마케도니아 군대가 보스프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만 있었다. 특히 마케도니아 측이 그렇게 먼 곳까지 싸우러 왔으면, 싸움을 해야 하는 데 그런 눈치도 없었다. 페르시아 측이 먼저 당황했다. 마냥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제국의 칠십 노구, 다리우스 왕이 이제 스물 세 살짜리 애송이,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왕에게 편지 한 통을 먼저 보냈다. 안부편지가 아니라, 한 판 붙어 보자는 내용이었다. '나는 늙었고 그대는 젊다. 그래서 그대는 시간을 끌고 있는가?' 그 때 다리우스 왕은 아울러 금을 가득 채운 큰 상자 하나까지 선물로 보냈다. 싸워 봐야 당연히 이길 테니, 그 때 뒤 돌려 받으면 된다는 것. 알렉산더는 답장을 보냈다. '왕이여, 다음에 또, 나한테 편지를 쓸 때, 그 때는 나를 보고, '나의 대왕이여'라고 반드시 할 걸!' 지어러의 '세계사 여명'속에 나오는 재밌는 이야기다. 물론 당장 한 판 붙었다. 결과는 손권처럼 도전을 받았던 알렉산더 측의 대승이었다. 이렇게들 피 통이 터지는 싸움을 하더라도 여유가 있었다. 옹졸한 구석이라고는 아니, 시원하기까지 했다.
자, 금수강산 삼천리라는 곳을 한 번 보자. 요즘 국회라는 곳, 관광명소 제일! 볼만하다. 사내 못 난 것은 대가리만 크고, 여편네 못난 것은 젖통만 크다더니, 그런 여당과 또, 마을 마다 후레자식이 있다 듯, 그런 야당이 한 판 붙었으니, 좋은 구경거리가 될 수 밖에. 요즘 같은 불경기 속에 국민들은 나라 일이야 이미 그렇고, 우선 그런 정치인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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