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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야기

달무리 지는 밤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8. 11:29

달무리 지는 밤

한 여름 복중에 더운 게 당연하거늘 반복되는 폭염과 장마의 습한 기운에 괜스레 짜증만 늘어 간다. 밴댕이 속알딱지도 못한 성품이라 스스로 더위를 다스리지 못함인가 싶다가도 투덜대는 짓거리에 엉뚱하니 밴댕이를 주워섬기는가 싶어 생각을 그친다. 기실 밴댕이란 녀석이야 청청한 바닷속에서 제 마음대로 노닐다 재수 없이 그물에 잡혀 죽게 되었으니 기왕 먹혀 버릴 몸뚱이 수틀린 심사대로 죽어 자빠지는 걸 어찌하누? 싱싱한 놈 못 먹게 되니 공연한 심술로 어깃장을 놓는다는 게 엄한 밴댕이 속 가지고 트집 잡는 것이 인간들의 됨됨인 것을..

이 장마가 가고 나면 염천이다. 세상이 불덩이 속이니 가만있어도 염병 앓듯 땀이 삐질삐질 온 땀구멍으로 솟아 나올 터이다. 이런 염천은 그저 피하는 것이 상수지만 여름 나기가 만만찮다. 낮이면 불가마 속이요 밤이면 열대야가 기승이다. 원전 비리로 인해 은행도 대형마트도 절전을 하는 바람에 도심에서 어디 더위 피할 곳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에어컨을 틀자니 그 돈이면 어디 물 좋고 경계 좋은 시원한 곳으로 달아나는 것이 외려 나을 지경이라 쉽게 리모컨에 손도 안 간다.

그런데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도 없던 시절의 옛사람들은 이 더위를 어찌 보냈을까? 옛 선조들은 유두절에 탁족을 하며 풍월을 읊고, 시원한 우물에 참외나 수박 한 덩이를 띄워 둘러앉아 나눠 먹는 것이 좋은 피서법이었다. 다산은 생선회 내기 바둑으로 구경꾼과 함께 나눠 먹으며 배불리 먹고 농지거리하며 시간을 보내면서 더위를 잊으라는 피서법을 "청점혁기"라는 시로 남기는 여유를 보이기도 하였다.

세종은 신하들에게 독서휴가를 주어 책을 읽도록 하였고 " 허 균"은 "한정록"에서 "독서로 피서하는 것이 정말 좋은 방법의 하나인데 술까지 있으니 어떻겠는가!" 하면서 독서와 술의 조화를 얘기하였으며, 정조는 "일득록"에서 "더위를 물리 치는 데는 독서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독서하면 몸이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고 마음에 주재(主宰)가 생겨 외기(外氣)가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렇게 왕과 재상들은 독서로 마음을 가다듬으며 피서를 하는 것을 권장하였는데 특이하게 허 균은 독서와 술을 함께 즐긴 것으로 보인다. 더위와 술은 상극인데 후한 말 유 송이 원소의 자제들과 삼복 더위중에 매일 술자리로 더위를 잊었다 하여 "하삭음(河朔飮)"이라는 음주 피서법을 만들었다는 말이 전해지고, 위나라의 정각도 삼복 무렵 연잎에 술을 담아 비녀로 잎을 찔러 줄기의 구멍을 통해 마시는 "벽통음"이라는 음주 피서법을 만들었다는 얘기도 전해지지만 중국의 피서법이 비록 내게 미소를 짓게 하고 운치는 있을지언정 권할만한 피서법은 아닌 듯싶다.

이런저런 옛 피서법을 살펴보니 우리 선조들은 피서가 아닌 망서 즉 더위를 피하지 않고, 잊는 것으로 여름을 보내는 지혜를 보이고 중국의 옛사람들은 이열치열의 방법으로 더위를 피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물론 내가 찾아본 것이 옛 선조들이 사용하던 모든 방법이라 할 수 없지만, 물과 바람 그리고 음식과 정담으로 더위를 피하며 몸을 보하는 방법이 대부분의 피서법이라 보면 틀림없겠다.

우리 가족은 내일 가까운 바닷가에서 하룻밤을 지내고자 정하였다. 역시 물과 바람을 찾고 가족과 함께 준비한 음식을 먹는 피서법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평범한 나들이지만 그동안 서로 바쁘게 생활하며 만나지 못하던 가족들과의 만남이라 기대가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내일은 복더위의 짜증마저도 바다에 훌훌 흩뿌리며 장마가 지나면 다가 올 염서 속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겠다. 지금 하늘에는 달무리가 보인다. 달무리 지면 다음 날 비 온다는데...

201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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