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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불영사佛影寺 / 윤태림 본문

사람들의 사는이야기

불영사佛影寺 / 윤태림

김현관- 그루터기 2023. 7. 11. 00:51

불영사佛影寺 / 윤태림


불영사
佛影寺 / 윤태림(1908~1991)

경치가 아무리 좋아도 한번 가보면 그저 그런가 보다 할 뿐 다시 갈 생각이 안 나는 것이 보통인데 나에게는 예외가 하나 생겼다.

불영사佛影寺.

울진蔚珍 , 아직도 호랑이가 가끔 나온다는 첩첩산중의 울창하게 우거진 수림이 월정사의 말사末寺임을 넉넉히 증명해 주고 있다.

산언덕 험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산정까지 올라와 있는 행로에서 도리어 산 아래로 한참을 내려가 맑은 물이 힘차게 흐르는 밑을 바라보며 금문교金門橋 아닌 흔들거리는 조교를 건너 하늘도 잘 보이지 않는 숲 속을 걸어 들어가야 한다.

1300년 전 의상대사가 주지로 있었다는 곳인데 지금은 다 허물어진 무영탑無影塔 이층만이 부서진 채 남아 있을 뿐이다. 의상이 여기에다 절을 지으려고 할 때 이곳을 떠나지 않으려고 끝끝내 버티는 다섯 마리 용을 주문으로 가까스로 몰아냈는데 그중 네 마리는 바닷속으로 들어갔으나 한 마리만은 그곳에서 폭포가 되었다고 한다.

의상이 공부하던 곳인 천축과 비슷하다 하여 천축산이라 한다.

물은 산을 감싸 안고 절 속까지 들어왔다가 다시 절 밖으로 나가는 반면 산은 산대로 물을 휩싸안고 얽히고 설킨 것이 서로들 위로해 주고 있는 듯하다. 산태극 수태극山太極 水太極이란 말이 정곡일 것 같다.

절 서쪽 봉우리에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 있는데 그 모습이 부처를 조각해 낸 듯하고 밑의 돌 하나는 경건한 자세로 부처의 설법을 듣고 있는 모양과 같다.

달밤에는 용이 숨어 있었다는 큰 연못에 돌부처의 모습이 비쳐 불영사라는 이름이 여기서 나온 것 같은데 동남쪽에 솟아 있는 향로봉香爐峰 등 봉우리들이 금강산 비로봉과도 흡사하다.

교통이 좀 불편해서 그렇지 낙산사 의상대義湘臺에 비할 바가 아니다.

늦은 여름 물가에 앉아 있으면 뛰노는 은어를 맨손으로 넉넉히 잡을 수 있을 정도라니 낚시꾼들의 더러운 손때가 물들지 않은 순진한 어심魚心을 생각해 잡았던 고기를 도로 놓아 주었다.

그들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세속을 심어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상은 처음에 원효와 더불어 당나라로 떠나려다 원효는 중도에 돌아왔고 의상은 중국 화엄의 시조인 지엄에게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 해동海東화엄의 원조가 되었다 한다. 또 그가 수도하던 곳이 종남산終南山지상사至上寺였다고 한다.

종남산은 도연명陶淵明의 유명한 국화를 동리東籬아래 캐고 홀연히 바라본다는 저 남산을 말한다.

왕유王維종남별업終南別業이라는 오언시 중에, “행도수궁처 좌간운기시(行到水窮處 坐看雲起時)"라는 시상이 떠오른 곳이기도 한데 왕유 자신이 이 종남산에 별장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불영사 자연의 모습도 마음에 들거니와 그곳에서 만난 비구니를 잊을 수 없다. 나이가 올해 47 세라지만 언뜻 보기에는 30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인다.

자신의 지나간 과거를 말하지 않고 나도 남의 개인의 내력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사연이 숨어 있는 듯 그녀의 얼굴 속에서 엷은 애수를 간취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해방을 전후하여 서울 큰 은행에서 근무하다가 젊은 군인을 만나 새살림을 한 지 1년도 못돼 6·25를 맞아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신세가 되자 어쩔 줄 모르다가 한 살도 못된 갓난 어린애를 친정에 맡기고는 삭발출가削髮出家를 했다한다.

남편의 육사 동기 중에는 지금 권문權門에서 세도를 부리는 사람도 있는데 담담하기가 물과 같다.

정다산 후손이라니 역시 어딘가 모르게 귀티가 있고 보통 스님과는 다른 점이 있다. 서울 수표동서 자랐다는 이야기만은 들었으며 예쁘기보다 맑고 깨끗하다. 불문佛門에서이니 육기를 취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지만 고추,,마늘, 후추 등도 음심을 일으킬까 일체 취하지 않는다고 한다.

겉으로 본 영양은 비길 데 없이 좋다. 근대 영양학이 가르치는 동물성 단백질을 취해야만 한다는 학설에 적지 않은 의문이 간다.야채를 취하면 몸의 피가 산성이 아닌 알칼리성이 되어 건강한지도 모르겠다. 이곳 불영사에는 94세와 95세 먹은 부부 아닌 비구와 비구니가 옛적에 살아 있었다는 전설도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역시 먹는 것보다는 마음의 평안이 제일인 것 같기도 하다.

젊어서 탁발托鉢을 다닐 때는 댁처럼 어여쁜 여인이 무슨 사정이 있길래 여승이 되었느냐는 등 상당한 유혹도 받아 손목을 붙잡히기도 했으며 대문을 닫아걸고 결혼하자는 강청도 받았단다. 그러나 그 손목을 뿌리친 일도 없이 그저 웃으면서 상대를 했다니 그는 아예 태어날 때부터 불문에 들어갈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금강산은 영산靈山이라 하는데 이곳 천축산도 이름은 별로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신령한 산이다.의상이 공부하던 곳이고 용이 서식하던 곳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 나름대로의 해석이다.

새벽 세 시 고요한 적막을 깨뜨리는 종소리에 잠을 깨어 미닫이 창문을 열었다. 보이는 산사의 모습은 희미한 달빛 아래 속세 아닌 별계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내가 떠나오는 날 그는 경주 불국사로 향할 예정이라고 했다.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아침인데도 상좌를 이끌고 나와 멀리 다리 밑까지 전송해 주며 잘 가라고 합장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주지로서의 임기가 끝나 요샛말로 유임하게 될는지 영전이 될지 좌천이 될는지 모르겠단다. 그곳에 그대로 머물러 주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해 마지 않았다.

지금쯤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다. 그곳에서 다시 한번 그를 만나고 싶은 것이 속일 수 없는 심정이다. / 한국의 멋

 

윤태림(1908~1991)

철학박사, 호는 심경 서울 출생.경성대학교 철학과 및 법학과 졸업.서울대대학원에서 철학박사학위 취득. 서울사대학장, 문교부 차관(14~15), 숙명여대 총장, 연세대 교육대학원장, 경남대 총장 등을 역임.

저서로는 심리학 입문》 《한국인》 《심리학개론》《소리없이 바람 없이》 《한 번, 오직 한 번만의 사랑외 다수가 있음.

 

# 산태극 수태극山太極 水太極  
   풍수지리에서 산줄기와 물이 휘둥그스름하게 굽이져 태극문양을 이루는 형세

# 행도수궁처 좌간운기시(行到水窮處 坐看雲起時)   
   걷다가 물 다하는 곳에 이르러 하얀 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