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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우리나라에서 왕의 음식을 최초로 판매한 음식점은 어디일까? 본문
우리나라에서 왕의 음식을 최초로 판매한 음식점은 어디일까?
서양에서 최초의 레스토랑이 '왕이 먹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왕과 귀족이 받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면 우리나라에서 왕이 먹던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최초의 음식점은 어디였을까요?
조선 순종 때 전선사(司) 장선을 지낸 안순환이 차린 명월관明月館)입니다. 전선사는 궁중 음식과 잔치를 책임지는 궁내부산하 관서이고, 장선은 그곳의 총책임자였습니다. 안순환이 궁중을 나와 명월관을 차린 시기에 대해서는 1903년 설, 1906년 설, 1909년 설로 분분한데요. 중요한 것은 정확한 연도가 언제였든 명월관이 개관할 당시에 서양식 레스토랑이나 일본 음식점은 있어도 전통적이고 전문적인 조선 요리 음식점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술과 기생이 주이고 조선 요리가 안주인 술집은 많았습니다. 하기는 조선 말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집에서 해먹을 수 있는 음식을 돈 주고 사먹는 것은 낭비로 여겼지요. 그래서 외식을 할 경우엔 집밥 같은 밥은 절대로 사먹지 않고 집에서 먹기 힘든 중국 요리를 사먹곤 했습니다. 그렇다면 명월관에서는 어떤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했을까요?
저희 관은 개점 이후로 고객의 사랑을 받아 날로 번창하오니 감사함을 무엇이라 말할 길이 없습니다. 특히 날씨가 날로 더워지는 때를 맞이하여 좌석을 매우 청결하게 정리하고 위생을 갖추었으며 국내외의 각종 술과 엄선한 국내외 각종 요리를 새롭게 준비하고 주야로 손님을 맞으려 합니다. 각 단체의 회식이나 시내외 관광, 회갑연과 관혼례 등에 필요한 음식을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람을 보내어 음식을 배달하기도 하는데 진찬합(眞盒)과 건찬합(乾盒), 그리고 음식(飮食)을 화려하고 정교하게 마련해 두었습니다. 필요한 분량을 요청하면 가깝고 먼 곳을 가리지 않고 특별히 싼 가격으로 모시겠습니다.
명월관이 일간지에 게재했던 광고입니다. 명월관 이전에 어느 누구도, 어디에서도 교자음식, 즉 잔치음식을 만들어 팔고 배달까지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명월관에서 제공하는 교자음식은 12첩 반상이었습니다. 반찬의 가짓수가 열두 가지를 넘어가면 수라상이라고 하는데 임금에게 차린다는 바로 그 상차림이지요. 오늘날에야 한정식집에 가면 12첩이 아니라 21 첩도 나오는 것 같지만 당시로서는 왕은 커녕 왕의 발치에도 가본 적 없는 사람이 수라상을 받는다는 것은 천지개벽할 일이었을 것입니다.
안순환은 또 서울에서 처음으로 냉면을 팔았습니다. 냉면의 기원인 메밀국수는 원래 평안도와 경상도의 산간지방에 살던 서민들이 먹던 구황식품이었습니다. 그러다 18세기 후반 선주후면(先酒後麵)이라는 말을 낳으며 고급음식이 됩니다. 고기와 술, 냉면을 같이 먹으려면 지금도 음식 값이 꽤 나오는 편인데 옛날에 고기와 술, 냉면을 같이 먹을 수 있는 곳은 고급 요릿집밖에 없었으니까요. 더구나 안순환이 명월관에서 선보인 냉면은 고종이 즐겨 먹던 냉면이었습니다. 이 냉면의 등장으로 한동안 서울에서 냉면이 유행이었다고 하지요.
안순환은 명월관이 궁중의 음식과 잔치를 책임졌던 최고책임자가 차린 음식점이라는 점을 한껏 홍보에 사용했을 것입니다. 돈푼깨나 있다는 사람들은 '그래, 어디 한번 나도 왕처럼 먹어보자'는 호기를 부렸겠지요. 게다가 손님이 편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시중드는 사람이 웨이터가 아니라 기생들이었다고 하니 안순환의 상술이 놀랍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명월관은 장안의 인사들과 부호들이 드나드는 사교장, 서울의 명물이 됐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레스토랑이 등장한 시기처럼 왕정이 무너진것도 아니고, 버젓이 경복궁에 왕이 생존한 상태에서 돈만 내면 아무에게나 수라상을 파는 음식점이 등장했다는 사실에 씁쓸하고 찜찜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1918년에 명월관이 화재로 소실되자 안순환은 매국 대신들의 모의처였던 이완용의 집을 사들여 명월관의 분관격인 태화관을 열었습니다. 3.1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바로 그곳입니다.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곳이 왜 하필이면 대다수의 백성들은 언감생심 꿈도 꾸기 힘든 고급음식점이었는지, 역시나 찜찜하기는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독립선언서를 읽은 33인의 대표 중에 변절자가그렇게나 많았던 모양입니다.
이병우 : <마더> O.S.T.에서 <춤 Pr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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