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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시간, 생명, 자유(베르그송)/Bergson 본문

철학,배움,지혜

시간, 생명, 자유(베르그송)/Bergson

김현관- 그루터기 2023. 7. 13. 08:57

시간, 생명, 자유(베르그송)/Bergson

知識 ,知慧 ,生活/배움-문학,철학사

Henri Bergson (18591941)

 

시간, 생명, 자유(베르그송)/Bergson

19세기말 근대사회의 모습이 뚜렷하게 형성이 되는데 서구의 근대문화를 되돌아 보고, 근대성 자체를 음미하고 검토하게 된다. 탈근대적인 사상들이 도래하게 된다. 자본주의 과학기술문명, 주체의 철학으로부터 다른 길을 모색한다. 근대성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을 한 것은 1970년이다. 베르그송은 과학기술을 비판하였다. 베르그송은 고중세적인 형이상학이나 근대과학은 근본성격을 같이 한다고 보았다. 베르그송 철학의 화두는 시간이다.

*결정론-고중세적인 형이상학이나 근대과학은 기본적으로 결정론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결정론은 이 세계의 변화나 운동이 사실상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과연 어떤가, 인간도 자연과학적으로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다. 천문학적 현상이 결정되어 있듯이 생명이나 정신 조차도 결정되어 있다고 19세기말에 결정론이 확대된다. 심리학이 등장하는데 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조차도 자연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Husserl(훗설:화두는 의미) 역시 인간의 정신적인 것을 물리적인 것으로 환원하는 것을 거부했다.

James William(제임스)심리학을 비판한다. ’의식의 흐름’-의식은 흐름이기 때문에 잘라서 분석하고 그래프로 그리는 것엔 한계가 있다.

*니시다 기따로(일본) 인간의 깊은 내면은 과학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훗설, 제임스, 니시다의 문제의식은 비슷했다. 모든 것이 계량화, 수식화, 그래프화 되는 시대에 인간의 영혼, 마음. 의식은 그렇게 될 수가 없다고 보았다. 베르그송은 그 생각을 좀 더 확장했다.

*베르그송-미래가 어떨지는 미리 정해져 있다는 것이 결정론이다. 서구 학문의 대전제는 처음부터 모든 것이 주어져있으며 다만 인간이 그것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다.’ 부채가 펼쳐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시간의 역할은 그 순서를 정해주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베르그송은 시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 시간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뭔가 새로운 것들을 배태하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 속에서 새로운 것이 배태가 되고 이 우주에서 시간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정론에서는 시간을 제거해 버린다. 그래서 베르그송은 진화론을 중시하게 된다. 진화의 과정은 누구도 모르지만 이미 진행된 다음에 추후적으로 그것을 짐작하는 것이다. 삶의 매 순간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창조의 연속이다. 베르그송이 결정론을 비판하는 핵심적인 연결고리는 시간이다.

과학적, 분석적 ,합리적 사고는 시간을 공간화해서 본다. 시간은 물과 같아서 자를 수가 없는 것이다. 시간은 흐름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과학적으로 다룰 수 있으려면 공간화해야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은 시계이다. 과학적사유. 분석적사유, 합리적사유는 분석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인데 분석하려면 시간을 나누어 보는 것이다. 나누어 보려면 공간화 하는 것이다. 과학적 사고에서 즐겨 사용하는 것이 그래프이다. 19세기말 20세기 초에 팽배하던 과학주의에 대해서 시간에 초점을 맞추어 비판을 했고 영향을 끼쳤다. 과학 자체가 20세기에 들어서 성격이 바뀌게 된다. 베르그송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사조는 인상파이다. 인상파의 작업 장소는 야외였으며 그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의 변화를 보고 그린 것이다. 음악에서는 드뷔시(교향곡:바다)이다. 문학에서는 프로스트의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들 수 있다.

베르그송 [Bergson, Henri, 1859.10.18~1941.1.4]

18591018일 파리에서 출생하였다.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앙제와 파리의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1900년부터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가 되었다. 그는 프랑스 유심론(唯心論)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C.R.다윈·H.스펜서 등의 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생명의 창조적 진화를 주장하였는데, 이와 같은 그의 학설은 철학·문학·예술 영역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의 학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생물의 진화는 동물과 식물의 2대 방향으로 진화되어 나아가는데 지성적 인간은 전자의 정점(頂點)에 서 있다. 이 진화는 기계론적(機械論的)도 아니고 목적론적(目的論的)도 아니다. 이 진화는 동적(動的)이며 예견(豫見) 불가능한 내적(內的) 충동력인 엘랑비탈, 즉 생명의 비약에 의하여 행하여지는 창조적 진화이다. 인간의 지성(知性), 정적(靜的)이며 고정화(固定化)된 것을 다루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동적인 흐름을 파악할 때는, 지성은 이를 정적 요소의 한 연속으로 환원시켜 버린다(지성의 영화촬영적 방법’).

지성은, 예를 들면 시간을 표준단위에 의하여 측정할 수 있는, 평면상의 등질적(等質的) 직선과 같은 존재로 파악한다. 그러나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시간은 이질적(異質的)인 과정의 구체적이며 불가분(不可分)한 것의 연속이다. 또 지성은, 어떤 사물(事物)이 출현하면, 여러 기존요소를 재구성하여 이를 설명하려고 하지만, 그러한 방법으로는 완전히 새로운 것의 진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할 수 없다. 있는 그대로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직관(直觀)에 의존해야 한다. 지성은 행동을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만, 직관은 그와 같은 목적과 이해(利害)를 갖지 않으며, 다만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능력이다. 지성이 대상의 외면(外面)만을 보고 방황하면서 관점에 따라 다른 상대성을 면하지 못하는 지식을 제공하는 데 그치는 것과는 달리, 직관은 대상의 내면(內面)에 깊이 파고들어 절대적인 지식을 우리에게 준다.

지성의 산물인 자연과학은 지성의 모든 한계를 지니고 있으므로, 직관에 기초를 둔 형이상학(形而上學)이 지속·생성(生成진화를 파악하여 그것으로써 과학을 보완해야 한다. 한편, 사회에는 폐쇄된 사회와 개방된 사회 2가지가 있다. 전자는 지성의 산물이기 때문에 정적(靜的)인 것에 지배되며, 사람들은 공동체의 규약을 엄수해야 하므로 자발성과 자유는 최소한도로 억제된다. 우리는 이와 같은 폐쇄된 사회에서 벗어나, 개방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이 사회는, 사랑이며 또한 사랑의 대상이기도 한 하느님을 신비적 직관으로 체험하고 있는 신비가(神家)들의 존재에 의하여 직관된다. 개방된 사회는 정적인 것 대신에 동적·진보적인 것을, 획일성(畵一性) 대신에 개인간의 최대한의 다양성과 자유를 소유하며, 또 이 사회에서는 지성이 고안한 유형적(類型的) 도그마는 직관과 계시(啓示)로 대체되는 것이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시간과 자유의지:의식의 직접소여에 관한 이론(1889), 물질과 기억(1896), 창조적 진화(1907),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1932), 사상과 움직이는 것(1934) 등이 있다. 1918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었으며, 1927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