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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손님이 오지 않는 집은 천사도 오지 않는다 본문
엊저녁 구워 놓은 고구마로 요기를 하며 오래된 잡지를 뒤적이는데 이 문재 시인이 쓴 '손님이 사라졌다'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시인의 말하는 집과 같이 별난 경우가 아니라서 우리 집에서는 낯선 손님은 한 번도 맞이해 본 적이 없었고 주로 가까운 친척분들과 술 취한 지인들을 맞이했었다, 숙박시설이 변변찮아 단칸방에서 손님을 맞이하던 옛날에는 불편함이 외려 다정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는데, 환경이 많이 변하여 손님맞이가 수월한 지금은 풍요로움으로도 집에서의 손님맞이가 드물게 되었다. 아들 내외마저 방문하였다가 제집으로 달아나기 바쁜데, 더구나 지금같은 어수선한 세월에 낯 선 손님맞이야 오죽할까?
이런 저런 가정들이야 차치하고서라도 ‘손님이 오지 않는 집은 천사도 오지 않는다’는 아랍 속담이 은근이 뼈를 때리는 듯하다. 새삼 제 집을 활짝 열어 두고 이웃을 맞이하는 배다리 창영당 여주인의 선하고 환한 미소가 떠오르며 그녀의 개방된 공간으로 찾아오는 손님들과 천사들의 날갯짓이 눈에 환하다. 그루터기
손님이 오지 않는 집
글 이문재
자동차 안에서 라디오를 듣다가 귀가 번쩍할 때가 있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식구들과 강변북로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진행자의 한 마디가 선명했다. “손님이 오지 않는 집은 천사도 오지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 속담이라는 것이었다. 마침 아내가 운전을 하고 있었다. 나는 스마트폰에 얼른 메모를 했다. 아무렴, 그렇고말고. 손님이 오지 않는 집에 천사가 찾아오겠어? 하지만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보니 뭔가 허전했다.
돌아보니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집을 찾아온 손님이 거의 없었다. 명절 때 찾아오는 가까운 친척을 빼고는. 그것도 두어 시간 앉았다 가는 것이니까 손님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아이들 친구가 두어 번 다녀간 적은 있다. 큰 딸아이가 대학 다닐 때 친구 서넛을 몰고 한밤중에 쳐들어온 적이 있고,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내미 친구 하나가 며칠 묵고 간 일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 친구 역시 손님이라고 할 수 없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손님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때인 1960년대 중반에는 손님이 더 많았다. 어머니는 한여름에 먼 데서 손님이 오시면 “여름 손님은 도둑보다 무섭다”라고 자주 중얼거렸다. 어려서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1980년대 중반 결혼하고 나서야 알았다. 신혼 초, 여름 손님은 정말 무서웠다. 우선 옷차림에 신경을 써야 했다. 그때만 해도 어른에게는 반바지가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말씨는 물론 몸가짐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요즘이야 전화 한 통화로 해결되지만 냉장고가 없던 시절, 음식을 장만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전화가 없던 시절, 손님은 그냥 ‘들이닥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나 아버지는 일절 내색하지 않았다. 오로지 극진할 뿐이었다.
어려운 손님이 찾아오면 집안이 확 달라졌다. 평소 오르지 않던 반찬은 물론이고 그릇이나 수저, 밥상에도 윤기가 돌았다. 요와 이불, 베개도 평소에 쓰던 것이 아니었다. 손님이 다녀가면 어린 나도 조금 변해 있었다. 손님이 들고 온 선물 꾸러미 때문만은 아니었다. 새로운 자극을 받았다는 느낌으로 표정이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내 또래 서울 아이가 며칠 묵고 가던 겨울방학 때면, 시골에서 산다는 열등감이 도시에 대한 동경심과 겹쳐져 잠을 못 이루었다. 손님이 낯설수록 문화충격이 컸다.
‘손님이 오지 않는 집은 천사도 오지 않는다’라는 이슬람 속담은 의미심장하다. 저 속담에는 이슬람뿐만 아니라 오래된 토착문화가 전승해 온 환대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근대, 혹은 비근대 사회에서 여행자를 무조건 반갑게 맞이하는 보편적 관습은 미덕이라기보다는 지혜였다. 숙박시설이 없던 시절, 나그네를 환영하는 문화가 고루 퍼져 있지 않다면 먼 길을 떠나는 일은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나그네를 잘 접대해야, 나 또한 나그네가 되어 환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나그네를 외면했다간 바깥소식에 깜깜할 수밖에 없었다. 어제와 오늘, 내일이 다를 바 없는 오래된 정착사회에서 이방인의 출현은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뉴스였다. 이슬람 사회에서는 이방인을 ‘미래에서 온 손님’으로 추대하기까지 했다. 손님과 천사는 거의 동격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은 가난했지만, 집이 있었고 마을이 있었다. 집과 마을이 나를 키웠다. 손님이 작은 마을에 갇혀 있던 내게 먼 곳을 꿈꾸게 했다. 그로부터 40여 년, 세상은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어린 아들이 대도시에서 아버지가 되는 동안, 집이 없어지고 마을이 사라졌다. 결혼하고 나서 방학이 시작되면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고향집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큰 아이가 채 두 살이 되기 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고, 둘째 아이가 걷기 전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뜨셨다. 방할 때만이라도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뛰놀던 흙을 밟게 하겠다는 꿈은 일찌감치 사라지고 말았다.
자연을 직접 접하지는 못하더라도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자는 각오도 거의 지키지 못했다. 이사를 너무 자주한 것이다. 올해로 결혼한 지 27년 째. 그 사이 12번 넘게 이사를 했다. 평균 2년에 한 번 꼴로 주소지를 옮겼다. 아이들이 정 붙일 만한 마을(도시에 마을이 있을 리 만무하기도 하지만)이나 집이 없었던 것이다. 이사를 자주 다니고, 학교를 옮겨 다니는 사이, 친구들은 많이 생겼을지 모르지만, 집에서 손님을 맞이한 경험 또한 없다. 부모가 어려워하는 손님 앞에 다소곳이 앉아 옛날이야기나 먼 데 소식을 듣던 그 설레던 밤들은 이제 내 기억 속에서만 생생하다.
물론 요즘 아이들에게도 손님은 있다. 하지만 요즘 손님은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는다. 21세기 손님은 미디어를 통해 방문한다. 인터넷과 텔레비전을 통해 수시로 찾아온다. 하지만 누구나 손님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흥미롭지 않으면, 새롭지 않으면, 낯설거나 신기하지 않으면, 충격을 주거나 빠르지 않으면 0.1초 사이에 추방당한다. 아이들에게 손님은 더 이상 손님이 아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정보나 지식, 이미지, 상품일 따름이다.
우리는 천사는커녕 손님조차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손님이 없다는 것은 나도 누군가에게 손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문제의 한복판에 집이 있다. ‘집의 부재’가 있다. 집이 없어졌기 때문에 손님이 없어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집은 무엇인가. 지난 세기 후반, 서양의 한 사회학자가 말했듯이 집은 이제 ‘짐 보관소’로 전락했다. 집은 더 이상 가족이 가정을 꾸려가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장소가 아니다. 1인가구가 400만을 넘어섰으며, 혼인 연령이 계속 늦춰지고 있다, 이혼율과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급격하게 도래하고 있다는 통계청 발표를 동원할 필요조차 없다.
가족은 있는데 가정은 없다. 가장은 있는데 아버지는 없다. 월급쟁이는 있는데 가장은 없다. 어머니와 아내는 있는데 ‘현모양처’는 찾아보기 힘들다. 키 크고 잘생긴 아들딸들은 있는데 당당하게 제 갈 길을 열어나가는 청춘은 드물다. ‘엄친아’, ‘엄친딸’만 있다. 집은 없고 아파트만 있다. 집은 없고 부동산만 있다. 집은 없고 집의 가격만 있다. 가정이 있는 집이 없으니 이웃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이웃이 없으니 마을이 없고, 마을이 없으니 행정구역만 있다.
얼마 전, 교육방송에서 ‘카모메 식당’이란 일본 영화를 보았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를 배경으로 한 깔끔하면서도 감동 있는 이야기였다. 일본에서 이주한 한 여성이 헬싱키에 일본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작은 식당을 냈다. 현지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식당 여주인은 개의치 않는다. 영화 전반부를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은 주인공과 일본에서 온 두 여성 여행자다. 두 여성 모두 아주 사소한 이유로 핀란드를 찾는다. 한 여성은 눈을 감은 채 세계지도에서 한 곳을 선택했고, 다른 한 여성은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본 ‘에어 기타’ 연주 때문에 가방을 쌌다. 에어 기타란 기타 없이 기타를 연주하는 핀란드 고유의 놀이다. 카모메(갈매기) 식당은 ‘집’이고 ‘음식’이었다. 무작정 고향땅을 떠난 일본 여성들에게 카모메 식당은 고향집이자 어머니의 음식이었다. 이후 카모메 식당은 일본 만화에 빠진 핀란드 청년, 남편을 잃은 핀란드 여성뿐만 아니라, 커피 볶는 기계를 훔치려던 남자, 그동안 냉소만 하던 헬싱키 시민들에게도 ‘환대의 장소’로 바뀐다. 손님들은 주먹밥을 함께 먹으며 더없이 행복해한다..
‘카모메 식당’은 지난해 가을에 본 또 다른 일본 영화를 떠오르게 했다. ‘해피 해피 브레드’. 도쿄에 살던 젊은 부부가 홋카이도의 한 호숫가에 숙박을 할 수 있는 작은 카페를 낸다. 근처에 사는 단골손님도 몇 있지만, 여기에도 낯선 손님이 찾아든다. 동료들에게는 열대의 섬으로 휴가를 간다고 말하고 온 도쿄의 아가씨, 평생 목욕탕을 하던 노부부,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아가는 어린 여학생… 빵과 커피를 정성스럽게 내놓은 카페 역시 이들에게 환대의 장소였다. 카페를 찾는 사람들은 빵을 먹으며 자기 자신과 만난다. 헬싱키에서 주먹밥을 베어 물며 저마다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었듯이.
더 나은 인간, 지금과는 다른 미래는 집에 대한 재발견에서 출발해야 한다. 내가 먼저 집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집과 마을을 다시 만들어내야 한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가정과 이웃, 지역 공동체를 건설해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집, 우리 마을이 누군가에게 환대의 장소가 될 수 있다. 그래야 우리 집과 마을에 손님이 오고 천사가 찾아올 것이다. 그래야 우리의 아이들 또한 누군가에게 반가운 손님과 천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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