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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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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사는이야기

자치기

김현관- 그루터기 2024. 1. 14. 01:07

 

자치기

어린 시절은 모든 것이 결여되고 부족하였다. 장난감도 읽을거리도 무턱대고 없었다. 없으면 만들어내는 것이 사람의 재주이다. 그래서 만들어낸 것이 무조건 맴을 돌아 세상이 돌아가게 만들고 어지럼 끝에 누워버리는 것이다. 혹은 두다리를 벌리고 서서 허리를 굽혀 가랑이 사이로 담 모퉁이의 백일홍이나 낮에 나온 반달을 바라보는 것이다. 조금은 달라 보이고 그럴싸해 보인다. 

심술궂은 장난도 많다. 어린 시절 겨울이면 흔히 손등이 얼고 텄다. 두 손등을 맞대고 한참 부비고 나서 냄새를 맡으면 닭의똥 냄새가 난다. 그 냄새를 동급생 코에 갖다 대고 미소짓는 심술궂은 장난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마련해 본 낯설게 하기 놀이나 짓궂은 장난은 이내 싫증이 나고 쉽게 탕진된다. 

그래서 이웃의 또래를 만나 함께 노는 것이다. 가장 비근한 것이 제기차기이다. 6·25 전만 하더라도 시골의 웬만한 집에는 몰락한 왕조 시대의 엽전이 몇 개씩 남아 있었다. 가운데가 뻥 뚫린 엽전에 종이를 끼워 넣어서 제기를 만들기는 어렵지 않다. 제기차기는 승부가 처음부터 정해져 있어 조금 하면 역시 싫증이 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기대보는 것은 '자치기'이다. 자치기는 또래가 많을수록 더 재미있다. 야구처럼 공격팀과 수비팀을 나누어 짜서 가위바위보로 결정한다. 대개 조금은 넓은 동네 마당이나 가을걷이가 끝난 뒤의 마른 논바닥이 놀이터가 된다. 우리말큰사전』에는 자치기가 이렇게 풀이되어 있다. 

"한 뼘 정도의 짤막한 나무토막을 다른 긴 막대기로 쳐서 그 거리의 멀고 가까움을 자질하여 이기고 짐을 겨루는 아이들 놀이의 한 가지." 

이것만 보면 자치기는 한 가지뿐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우리 어려서 한 자치기는 3단계가 있다. 길쭉하게 구멍을 파놓고 거기에 짤막한 나무토막을 열십자형으로 올려놓고 공격수가 두 손으로 밀어 올려 멀리 가게 한다. 이때 날아온 나무토막을 흩어져 포진하고 있는 수비팀이 받게 되면 공격수는 아웃이 된다. 이것이 1단계이다. 아웃이 안 되면 사전에 풀이되어 있듯이 짤막한 나무토막을 긴 막대기로 쳐서 멀리 가게 한다. 역시 수비팀이 받게 되면 아웃인데 이것이 2단계다. 그다음 3단계는 길쭉한 구멍에 작은 나무토막을 치기 좋게 비껴 눕혀놓고 그 끝을 쳐서 올린 뒤에 다시 쳐서 멀리 가게 한다. 축구선수가 볼 컨트롤로 차기 좋게 해놓고 힘껏 차는 것과 비슷한데 가장 기술이 요구되는 것이 이 3단계이다. 이 역시 수비팀이 나무토막을 받게 되면 아웃인데 여기까지 무사히 마치면 야구에서와 마찬가지로 1점 득점이 된다. 

이러한 자치기 놀이가 우리 고향 쪽에서의 고유 관행인지 아니면 대처에서도 그랬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고 보면 초등학교 수준에서 많이들 하였던 이 놀이는 야구 경기의 규칙을 도입해서 그나마 3단계로 마련한 것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초등학교를 마친 뒤에는 폐품이 된 연식정구공 속에 솜을 집어넣은 대용품을 사용해서 야구 놀이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축구, 탁구, 배드민턴이 보급되고 온라인 게임이 널리 퍼진 오늘 이러한 놀이가 사라진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민속놀이로 보존할 정도로 소중한 것도 아니니 자치기가 옛말이 되는 것도 먼 훗날의 일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