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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도산 본문
도산 / 피 천득의 인연 中
스피노자의 전기를 어떤 세속적인 학자가 썼다고 하여 이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런 비난은 옹졸한 것이다. 마리아는 창녀의 기도를 측은히 여기고, 충무공은 소인들의 참배를 허용하시리니 내 감히 도산을 스승이라 추모할 수 있을까 한다. 나에게 지식을 가르쳐 주신 분은 많다. 그리고 그 중에는 나에게 반사적 광영을 갖게 하는 이름들도 있다. 그러나 높은 인격을 나에게 보여 주신 분은 도산 선생이시다.
내가 상해로 유학을 간 동기의 하나는 그분을 뵐 수 있으리라는 기대였었다. 가졌던 큰 기대에 대하여 환멸을 느끼지 않은 경험이 내게 두 번 있다. 한 번은 금강산을 처음 바라보았을 때요, 또 한번은 도산을 처음 만나 뵌 순간이었다. 용모 풍채 · 음성 이 모든 것이 고아하였다. 그는 학문을 많이 하신 분은 아니었지만, 예리한 관찰력과 명철한 판단력을 가지고 계셨다.
그는 숭고하다기에는 너무나 친근감을 주고 근엄하기에는 너무 인자하였다. 그의 인격은 위엄으로 나를 억압하지 아니하고 정성으로 나를 품안에 안아 버렸다.
연단에 서신 우아한 그의 풍채, 우렁차면서 날카롭지 않고 청아하면서 부드러운 그 음성, 거기에 자연스러운 몸가짐, 선생은 타고난 웅변이었다. 미국 사람들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목소리를 예찬하나, 선생의 목소리만은 못하다고 생각한다.
도산은 혁명가요 민족적 지도자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높은 존재이었다. 그는 위대하다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상스러운 데가 하나도 없었다. 거짓말이나 권모술수를 쓰지 않았다. 만약에 그런 것들이 정치에 꼭 필요하다면 그분은 전혀 정치할 자격이 없는 분이었다.
한번은 거짓말에 대한 나의 질문에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거짓말이 허락되는 경우가 있다면 그렇게 아니하면 동지들에게 큰 해가 돌아오게 될 때뿐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때에도 침묵으로 대답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고 하셨다. 그는 진실의 화신이었다.
그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수백을 헤아릴 텐데 한 사람 한사람이 다같이 자기만을 대하여 주시는 것같이 느꼈다. 그리고 그는 어린아이들을 끔찍이 사랑하셨다.
그는 가난한 생활을 하였으나 청초하였다. 그는 세밀한 분으로 꽃나무하나 사시는 데도 검토를 하셨다. 큰일을 하는 분은 대범하다는 말은 둔한 머리의 소유자가 뱃심으로 해 나간다는 말이다. 지도자일수록 과학적 정확성과 예술적 정서를 가져야 한다.
그의 침실 벽에는 장검이 걸려 있었다. 이는 그의 호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용기의 상징으로서 방을 장식하기 위한 것이었다.
1932년 6월, 그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국으로 압송된 후에도 그의 작은 화단에는 그가 가꾸던 여름꽃들이 주인의 비운도 모르고 피어 있었다.
내가 병이 나서 누웠을 때 선생은 나를 실어다 상해 요양원에 입원시키고, 겨울 아침 일찍이 문병을 오시고는 했다. 그런데 나는 선생님 장례에도 참례치 못하였다. 일경의 감시가 무서웠던 것이다. 예수를 모른다고 한 베드로보다도 부끄러운 일이다.
새해에 들어서 나의 영원한 스승 김 이홍 선생님이 생각나고 선생님의 스승이신 도산 선생님이 연이어 그려지는 날이다. 도산 선생님의 제자라 하는 피 천득선생의 글에서 도산선생님이 떠 오르기도 하였다. 눈이 펄렁이는 날이다. 202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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