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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벚꽃 산책 본문

가족이야기

벚꽃 산책

김현관- 그루터기 2022. 12. 11. 21:27

 벚꽃 산책

소란시런 세상일도
이래 당신 손잡고 걸으이
도란한 산책이다.
너무 늦게 잡아 주어 미안타.

세상 풍파 속에 분투하고 있는 남편의 묵직한 정감이 담겨 있는 글이다, 우리들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일 수도, 그림을 그린이의 마음일 수도 있는 글 일테다. 아무렴 어떤가! 지금 이렇게 나와 같이 공감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것으로 저 시화는 충분히 제 역할을 하였다.

축제를 며칠 앞둔 시점에 동무하나 꼬드겨 원미산을 찾던 날, 붉게 물든 진달래꽃의 향연을 만끽하고 내려오던 길가에는 채 피기 전인 벚나무에 제목 없는 시화가 한점 걸려 있었다. 시화의 글귀를 보며 불현듯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께서 하늘로 돌아 가신지 벌써 이십 년, 정감을 표현함이 서툴던 내 아버지 세대에도 아내 손을 잡고 저리 속마음을 내 보이던 분이 계셨을 터인데 가족에게만큼은 별스레 무뚝뚝하시던 내 아버지께서도 나 모르게 혹여 어머니에게 다정한 말을 해 주신 날이 있었을까? 언제고 아버지께 한 번 여쭤 보리라.

뜨락 한편에 지난 몇 년간 생각의 고리를 이어 주던 벚꽃 한 그루가 오늘에서야 팝콘처럼 꽃잎을 피어 내며 흰색 자태를 뽐내고 있다. 달밤에 나 혼자 바라보는 벚꽃에서 늦은 듯 다가 온 봄의 정기를 한 숨 받아들인다.

지난해에는 꽃이 피기 무섭게 까부라지며 병치레를 하던 벚나무가 올해에 저렇듯 건강하게 환히 미소를 짓고 있어 정말 다행이다. 저 아이의 미소를 바라보며 원미산의 시화가 생각났으니 이 봄에도 내 생각의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녀석이 고마울 뿐이다.

아내는 처녀 적에 내가 백설공주라 부르며 놀릴 정도로 뽀얀 피부가 매력적이었지만, 수 십 년 나와 부대끼며 살다 보니 조금씩 바래가는 모습을 당연시하며 지내 왔는데 요즘  별안간 벚꽃처럼 하얗게 예뻐졌다. 그러나 그냥 예뻐졌으면 농이라도 내 덕분이라며 이리저리 자랑이라도 할 터인데 애쓴 것 없이 살이 빠져 그리 보이는 것뿐이라 속으로 한 걱정이다. 평안히 잠자는 아내의 얼굴을 보듬으며 지금이 지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그래도 잠시 도드라지게 예뻐진 얼굴인데 불출이 가 되는 한이 있어도 시화 속의 부부처럼 아내의 손을 잡고 수봉공원으로 대공원으로 벚꽃 산책이라도 다니며 다정한 냥 보이기라도 해야지, 적어도 너무 늦어 미안하다 소리는 하지 않으려면,

오늘 비 오는 야심한 밤! 벚꽃의 흰빛은 왜 저리 찬란하누.

2015.4  - 그루터기 -

도란한:도란도란에서 차용한 듯 본래의 뜻인 커다란 파도로 읽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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