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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니의 삶
나폴레옹 저금통과 아버지 본문
나폴레옹 저금통과 아버지
오래간만에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그림을 보았다. 화가 "다비드"의 "알프스를 넘어가는 나폴레옹"의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나폴레옹은 붉은 비로드의 망토를 걸치고 백마 위에 앉아 오른손으로 위를 가리키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말의 앞발 밑에 놓여 있는 바위에는 그의 이름과 고대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과 중세의 "샤를 마뉴" 대제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국민학교 4학년때인가, 선생님께서 여름방학 과제물로 저금통을 만들어 오라 하였다. 방학 내내 질펀하게 놀다 어느덧 개학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손재주는 없고 고민 고민하다 잔 꾀를 내어 아버지에게 새 학기부터 저금을 하려니 저금통 하나 만들어 주십사 하였다. 방학 과제인 줄 생각 안하셨던 아버지께서는 어떤 모습의 저금통으로 재료는 무엇으로 할지를 내게 물어본 바, 당시 고모에게 선물 받은 "소년세계사"를 열독 하며 나폴레옹의 영웅주의에 푹 빠져 있던 터라 책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알프스를 넘어가는 나폴레옹"의 사진을 턱 하니 아버지께 내놓으며 나무 저금통을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아버지께서 아무리 손재주가 좋으셔도 말갈기와 붉은 망토의 주름을 표현하기에 부담스런 너무도 정교한 그림이기에 어떻게 만드실까 싶었지만, 나는 아버지의 솜씨를 믿었고, 그 믿음에 걸맞게 이틀이나 걸친 작업으로 색상까지 완벽하게 칠하고 니스까지 덧발라 반짝이는 나무 저금통을 만들어 내게 건네시던 아버지의 흡족한 표정은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있다. 그러나 개학하고 며칠 뒤 앞마당에서 놀던 나를 불러 세우신 아버지께서 "얘야 ~ 방학숙제는 스스로 하는 게 좋은 습관이 될 테니 다음부터는 네가 만들어라" 라시며 부끄러움을 일깨워 주시던 일이 생각났다.
올해도 변함없이 한가위가 돌아왔다. 어린 시절 밉살맞은 행동을 나무라시던 아버지의 실체는 이미 오래전 떠나시고 안방 장지문 위에서 문을 나다니는 일상의 나를 내려다보실 뿐이다.
추석날! 아이들을 앞세우고 집사람과 함께 아버지가 계신 검단마전리의 공원묘지에 들렸다. 아버지의 눈에는 항상 어리고 서툴기만 한 아들도 벌써 머리에 흰 눈이 내려 아주 오래 전의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다. 두 아들의 대견하게 자란 지난 시간에 대하여 뿌듯함을 느끼듯 아버지도 역시 그런 눈으로 나를 보셨을 것을 생각하며 약주 한 잔을 권해드렸다..
이렇게 올 한가위는" 알프스를 넘어가는 나폴레옹"의 그림 덕에 잊고 지내던 아버지와 유년시절의 아릿한 추억의 한자리를 되새길 수 있어 모처럼 마음의 즐거움을 얻게 되었고, 더불어 아버지의 정을 그려보며 마음 풍성한 한 가위를 지내게 됨이 너무나 감사하다. 새삼 오래된 것에 대한 추억의 엮음이 즐겁다 2009.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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